▲통일혁명당 재건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이동현씨
이희훈
박정민씨가 찾아냈다는 사람은 과거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에서 아버지와 함께 근무하다 보안사에 연행된 이동현씨였다. 이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뒤 충북 충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동현씨의 주소지만 알 뿐 전화번호나 다른 연락처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박정민씨와 일정을 조율해 2017년 10월 우리는 함께 충북 충주로 향했다. 충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산비탈에서 이동현씨의 집을 찾았다. 집에 들어서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나오셨다. 누구냐는 질문에 박정민씨는 예전 아버지의 회사 동료였던 이동현씨를 뵈러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반가워하면서 이동현씨는 잠시 시내에 나갔다고 했다. 우리는 알겠다고 하고는 혹시 할머니가 불안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집을 나와 마을 입구 길가에서 이동현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워낙 인가가 없는 지역이라 우리는 그 차가 이동현씨 차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상대로 차는 조금 전 우리가 들른 그 집 앞에 멈췄다. 우리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이동현씨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서자 이동현씨는 놀라는 눈빛이었다. 누구냐는 질문에 박정민씨는 박석주를 아느냐고 물었다.
"누군데 박석주를 안다는 겁니까?"
박정민씨는 자신이 박석주의 아들 박정민이라고 했다. 이동현씨는 잠시 얼음처럼 굳어 있다가 박정민씨의 손을 잡으며 '네가 박석주의 아들이냐'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동현씨는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자며 근처 식당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자리에 앉자 이동현씨가 여긴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물었고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박석주씨가 교도소에서 사망했다고 하자 그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 사건 이후로 고향 강화도에 가서 있다가 롯데제과에서 몇 개월 근무했지만 거기서도 신원조회 걸려서 잘리고, 포항제철에 입사했지만 거기서도 신원조회가 걸려서 1년도 근무 못하고 쫓겨나고, 제대로 살지를 못했어."
박정민씨는 재심을 위해 아버지가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줄 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이동현씨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 사람이 무슨 간첩이냐고. 우리는 회사에서 만들라는 기계 만든 것밖에 없어. 북한보다 더 성능 좋은 무기를 생산한다고 유탄발사기를 만들어서 대통령도 시험발사에 와서 격려까지 했는데, 나중에 우리가 그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고? 기가 차서. 그렇게 억울하게 잡혔다가 감옥에서 죽었다니 기가 막혀서 뭐라고 할 말이 없네."
그는 박정민씨가 재심을 통해 아버지의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려고 한다고 말하자 무조건 돕겠다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이동현씨에게 그동안 왜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동현씨는 자신도 지금껏 살면서 억울한 시간을 보냈으나 재심을 해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 그냥 덮어두고 살자는 생각으로 조용히 지냈다고 했다.
"어렵게 한라시멘트에 들어가서 노조 활동을 한 적이 있어. 그런데 강원도경(지금의 강원경찰청)에서 내 조회 경력을 몰래 회사에 퍼뜨린 거야. 빨갱이 새끼가 노조 활동 한다고 난리가 났지. 결국 노조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조용히 나왔지. 그렇게 살았어."
박정민씨는 더 이상 그렇게 물러서지 말자고 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숨어 지내야 하느냐고, 함께 진실을 밝혀서 떳떳하게 살아야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국가에 제발 그따위 더러운 짓 더는 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런 박정민씨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난 이동현씨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살아온 옛 동료의 아들 손을 잡았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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