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9 17:58최종 업데이트 21.07.09 17:58
커피는 우리의 일상 음료가 된 지 오래다. 커피 수입 혹은 소비 수준으로 보면 한국은 세계 5위권에 드는 나라가 되었고 우리는 커피를 애호하는 민족이 되었다. 북녘 땅에도 커피 열풍이 불고 있고, 북한 국적자가 미국에서 부여하는 커피감별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보면 정말 한반도는 커피 향기 가득한 땅이 되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독특한 카페가 경쟁하듯 등장하여 우리의 코와 입을 자극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서양음악이 BTS에 의해 K-Pop으로 진화했듯이, 서양 음료 커피가 이제는 독창적인 K-coffee로 진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커피전문점에서 지출하는 소비 수준에서는 세계 2위이고(2018년 유로모니터 자료 기준),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커피 원두 수입이 증가한 유일한 OECD 국가가 대한민국이다(ICO 국제커피기구 홈페이지, 2021자료 기준). 세계 커피박물관의 절반 가까이가 한국에 있고, 이색 카페의 종류가 세계 탑인 나라가 한국이다.

또, 미국에 본부를 둔 CQI(Coffee Quality Institute)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이 단체에서 주관하는 커피 원두감별사 자격증 중 가장 권위있는 아라비카 큐그레이더(Arabica Q-Grader) 소지자 6000명 중 무려 1000명이 한국인이다. 큐그레이더 중 북한 국적자가 3명인 것도 신기한 일이기는 하다.

이런 열풍에 힘입어 커피전문점 숫자는 10만 개에 육박한다. 한국커피협회와 민간 협회 수여한 자격증 발행량을 따진다면, 개인적으로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는 50만 명 이상이라고 추정한다. 커피에 관한 지적 호기심도 대단해서 매년 커피 관련 저서가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커피 책들이 전하는 커피 이야기는 커피 향만큼 향기로울까, 커피 맛처럼 쓸까, 아니면 커피 속 카페인처럼 신비할까? 커피! 그것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마시면 향은 진해지고, 맛은 달콤해지며, 신비함은 더해질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독자들과 공유하는 배경이다.

바리스타 자격증 교과서부터 커피과학, 커피인문학, 커피수필 등 다양한 장르의 커피 관련 단행본들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것이 커피의 기원 전설을 포함한 커피의 역사이다. 서양이 아니라 동양에서 발견 혹은 개발된 커피라는 음료가 서양인의 음료로 탄생한 과정을 설명하는 많은 이야기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커피 탄생 설화인 '염소목동 칼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버전은 여러 가지이다. 공통된 줄거리는 이렇다. 오래전 아비시니아(지금의 에티오피아)에 칼디라는 이름을 가진 염소 목동이 있었다. 어느날 자신이 돌보던 염소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흥분하며 날뛰는 것을 보고 염려가 되어 마을 수도원 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수도원 원장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염소들이 다니던 길을 따라가 보았고, 그곳에서 염소들이 체리처럼 생긴 신기한 열매를 먹는 것을 발견하였다. 수도원 원장이 열매의 효능을 알아보려고 먹어보니 맛이 없어서, 모닥불 속에 집어 던졌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신기한 향이 풍겨 나오는 것을 보고 이 체리를 볶아서 커피 음료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하였다. 이 음료를 마시면 잠을 자지 않고 밤새워 기도할 수 있어서 이 음료가 이들 이슬람 신자들에게 널리 퍼져나갔다.

이 전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로마에서 동양언어를 가르치던 안토니오 나이로니였다. 그가 1671년에 라틴어로 쓴 인류 최초의 커피논문은 1710년에 런던에서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 글을 읽어보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염소목동 칼디' 전설의 원형은 무엇이었고 이것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이 전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염소목동이 아니라 낙타목동이었다. 낙타목동을 언급하며 "어떤 사람은 염소목동이라고 주장한다"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주인공은 낙타목동이었다. 그런데 훗날 커피역사 서술에서 주인공이었던 낙타는 사라지고 대역이었던 염소만이 살아남았다. 잘 알려진 대로 기독교 성경에서 염소는 악의 상징이고, 양은 선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양 같은 자들은 자신의 오른편에, 저주받을 염소 같은 자들은 왼편에 서게 하셨다고 한다.

둘째, 이 전설을 소개하며 나이로니는 낙타목동이라는 단어 앞에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동양 사람들의 습관"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17세기 후반 들어 절정을 향해 가던 서양 문명의 흥기 속에서 동양 문화 혹은 동양인에 대한 유럽인들의 의도적 멸시 의식이 반영된 표현이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주장으로 유명한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류의 이슬람 문명 멸시 의식이 투영된 것이다. 이들에게 신문명 발견의 주인공으로 동양인보다는 동물이 나았을 것이다.

셋째, 나이로니는 커피 발견 전설을 소개하기에 앞서 몇 가지 역사적 발견 사례를 언급하였다. 커피 이야기 바로 앞 스토리는 뱀술(viper wine)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풀밭에 두었던 와인을 마시려고 하는 순간 독사가 튀어나왔다. 와인을 버리려고 하는데 길을 지나던 문둥병 환자를 만났다. "저렇게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뱀독이 든 술을 마시고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끝에 뱀술을 마시게 하였다.

그러자 문둥병이 감쪽같이 나았다. 그래서 뱀술의 효능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어진 커피의 발견 설화 또한 어떤 우수한 인간들의 지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천한 동물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 우연한 발견으로 기록하였다.

넷째, 나이로니의 기록에서 이 설화의 배경 지역으로 언급된 것은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예멘이었다. 예멘은 홍해 연안의 이슬람 왕국이었고, 유럽 기독교와 이슬람은 오랜 충돌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에티오피아는 유럽 문명과의 충돌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던 순수의 땅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훗날 유럽 기독교인들의 지적 욕망이 커피 기원 전설의 땅을 원본에 있던 이슬람 문명권인 예멘에서 에티오피아로 둔갑시킨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나이로니가 기록한 최초의 커피 탄생 설화 어디에도 시간에 대한 언급이나 어떤 힌트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설화의 배경 시기로 10세기, 8세기, 7세기를 거쳐 6세기라는 기원 시점이 마구 덧붙여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라는 음료의 역사를 길게 만들고, 커피의 역사를 신비화하려는 커피 애호가들의 욕심이 만든 과장된 역사인 것이다.

설화의 주인공이 낙타가 아니라 염소로 바뀌고, 염소 목동의 이름 칼디가 처음으로 붙여지고, 예멘이 에티오피아로 바뀌게 된 것은 1922년이었다. 미국의 커피전문가이며 영향력 있는 잡지 <커피와 차 무역저널>의 편집장이었던 윌리엄 우커스(William H. Ukers)의 <올 어바웃 커피>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커피에 관한 백과사전 급의 이 책의 커피 탄생 설화 부분에 삽화가 실렸고, 그 설명문에 염소목동과 함께 칼디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그림의 작가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커스의 명성으로 '염소목동 칼디'는 먼 옛날의 전설에서 그럴듯한 역사적 이야기로 둔갑한 것이다. 커피의 기원에서 낙타는 사라지고 염소가 주인공으로 고정된 지 내년으로 100년이 된다.

많은 커피 인문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커피라는 음료는 15세기 중후반 홍해 동쪽 항구였던 모카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문명 지역에서 처음으로 지금과 같은 각성 음료로서 출현하였다. 기록이나 유물이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역사인 것이다. 커피 열매의 효능이 그 이전에 커피 나무 자생 지역이었던 에티오피아나 예멘 지역에 이미 알려져 있었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마시는 형태의 따뜻한 음료로서의 커피가 탄생한 것은 15세기 중반 이후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염소목동 칼디가 주인공인 커피 탄생 설화는 동양 문명에 대한 서양인들의 멸시 의식이 17세기에 씨를 뿌리고, 커피 음료의 상업적 이용을 욕망하던 미국인 커피 전문가에 의해 20세기 초반에 열매를 맺은 가공의 이야기인 것이다. 서양인들이 개척하고 키워 온 커피 역사 속에 깃들어 있는 이런 오리엔탈리즘이나 상업주의적 욕망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옮겨 적는 것은 적어도 동양인인 우리가 보여야 할 태도는 아니다. 역사도 음식과 마찬가지로 만드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의 미각이나 시각이 배제된 중립적인 그 무엇일 수는 없다.

오늘도 나는 스모키한 향이 물씬 풍기는 과테말라 안티구아 SHB 드립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커피향 만큼이나 깊은 커피 역사의 맛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필자의 신간(예정) <커피세계사 한국가배사>(푸른역사)의 첫번째 스토리의 일부를 활용하여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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