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힘' 전시 전경 <우리는 서로에 의해 허물어진다>2019
공간 힘
- '공간 힘'은 수영구에 있는 시장 내에 있고, 다양한 정치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전시를 하고 있다. 공간에서 만나는 관객들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서평주: "관객에 대해 얘기하자면 크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 관객이 많이 오질 않는다. (웃음) 다만 미술계 안에서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은 찾아온다. 가끔 지역 주민들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에 대한 기억이 썩 좋진 않다. 술 먹고 찾아온다든지, 전시에 방명록에 이상한 말을 써놓고 간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인근 주민들은 아직도 우리가 미술학원을 하는 줄 안다. 근데 그 정도의 거리감이 좋다.
관객이 많이 와야 하고,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을 때, 여기서 어떤 '대중'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목표가)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직관적이고 쉬운 걸 만들어봐라'라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럼 더욱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웃음)"
김효영: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즐기거나 예술을 경험하게 하는 역할은 우리보다는 공공미술관에서 해야하는 역할인 것 같다. 예술(미술)공간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은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주는 공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성에 맞춰서 이런 저런 것들을 하다보면 오히려 그 공간의 정체성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적인 문제를 예술을 통해 보려 하는 사람들, 또는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전시의 경험을 통해 사유하려 하거나 누군가와 진지하게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을 목표로 한다. 관객의 수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공간의 관계 형성 방식도 그렇다. 작가, 기획자, 관객 중에서 사회에서의 예술의 역할이나,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 있지만 혼자서 외롭게 작업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관계를 맺게 되고, 그들이 다양한 곳에서 생각을 펼쳐나가는 것이 기분 좋다. 그들과 함께 공통의 고민들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소중하다."
- 지금 이 기사를 시리즈 연재로 다루고 있는데, 두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니 지금까지 연재 기사로 인터뷰한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일단 유명해지고 싶고, 권력과 대중성을 얻고 싶은 생각이 없다. 두 번째는 어쩌다 보니 지금의 자리에 와있다, 세 번째는 죽어라 하진 않지만 최선은 다한다. 이러한 태도가 두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서평주: "대학 졸업할 때쯤, 다양한 커뮤니티를 맛 봤을 때 그런 분위기들이 낯설었다. 뭐랄까, 일종의 강압일 수도 있고 위계가 있는 듯 없는 듯, 강한 신념을 갖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그런 분들의 태도가 부럽긴 했다. 목표가 있고, 저런 신념을 가져본 적이 단 한번도 없는데 모든 삶을 바쳐가면서 하는 사람들이 멋져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김효영: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대체 일은 언제 하는 거냐,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항상 (일은) 안 하는 것 같은데 하는 것 같고, 안 될 것 같은데 다 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평주: "일을 하다 보면, 스스로 예술노동자일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예술노동을 통해 벌 수 있는 돈이 얼마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비예술노동을 했는데 비교적 많이 벌 때도 있다. 어떨 땐 '예술'을 떼고 노동자로서 일을 할 때가 있다. 난 그저 여기서 나의 일을 하고 정당한 댓가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예술가인데, 이런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기보단, 오히려 다양한 일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작가로 일할 때와 운송노동자로 일할 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노동자로서 일할 때 말하는 톤이 달라지거나, 무례한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작가'로서 일할 때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는 또 다르다. 그런 지점들이 흥미롭다. '극한 차별'이 아니라, 일상에 잔잔하게 깔려있는 차별의 요소들이 말이다."
- 어떨 땐 불안하지 않나? 나는 사실 자주 불안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때가 있다.
서평주: "당연히 불안한 건 있다. 매달 카드값이 나올 때 '어떻게 값지?' '정 안 되면 대출받지', 뭐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물론 다른 대출도 이미 좀 있다(웃음). 근데 이런 압박은 조금 있다. 우리의 공부가 부족하지 않을까, 이런 작업을 하는 게 맞을까, 기획서에 이런 말을 쓰는 게 맞을까, 우리가 비판하는 걸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 의심하는 것, 확인받는 것. 그 과정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긴장감을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김효영: "20대 초반에는 경제적인 문제에 시달렸다.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고 집안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졸업식도 하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미술관 지킴이 알바도 했었고, 회사에서도 일했지만, '이렇게 벌어서 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만둘 수 있었다.
직장에서 4년 동안 번 돈도 얼마 없었지만 대출을 받아서 대학원 들어가고 빵집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했다. 오히려 초반에 돈을 버는 활동을 해봤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불안을 늘 가지면서도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저희 두명 외에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하나의 책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둘이야 굶든 말든...(웃음)"
- 앞으로의 '공간힘'은 어떤 실험들을 하고 싶나?
서평주: "결국에는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게 제일 좋다. 시각예술을 다루고 있으니.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급진적이고 기념비적인 전시를 해보고 싶다."
김효영: "계속 사회 정치에 가졌던 생각들을 현실에서 더 넓혀서 생각하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공간 힘'이 처음 기획했던 전시 <옥상의 정치>의 생각들을 홍콩이나 다른 아시아 지역들과 연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당시 <옥상의 정치>가 5개의 지역을 다루고 있었는데 홍콩, 미얀마 등 좀 더 아시아의 상황에서 다뤄보고 싶다. 최근 3년간은 연간 계획을 짜고 국고 사업을 하다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업무의 피로들이 쌓이고 있다. 공백기를 가지면서 공간이나 사업을 고려하지 않고, 처음에 전시를 준비했던 것처럼 해보고 싶다."
▲'공간 힘'의 (오른쪽부터) 김효영, 서평주, 강주영, 김선영
권은비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차를 끌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향했다. 운전하며 아등바등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 뭉친 뒷목을 주무르니 조금 편해졌다. 아마도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요' 말해주는 '공간 힘'의 서평주와 김효영과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한 덕인 것 같았다.
내가 '성공'에 대해 묻자, 서평주는 말했다.
"주류 같은데 비주류 같고 비주류 같은데 주류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성공'이라는 단어도 되게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 나는 그것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많이 묻는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이 꼭 '성공'을 외치며 사는 건 지옥 같겠다고 생각했다. 어깨 힘은 좀 빼고, 담담히 하고픈 대로 살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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