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3 11:23최종 업데이트 21.07.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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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지방선거 1차 투표가 실시된 6월 20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 여사가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권 등록지인 북서부 휴양도시 르투케의 투표소를 방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20일과 27일 진행된 프랑스의 지방선거는 몇 가지 의미심장한 기록을 남겼다.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34.7%의 투표율. 이는 지난 2015년 지방선거 54.8%의 기록을 20%포인트나 끌어내렸다.

집권당 LREM(전진하는 공화국)은 한 군데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지난해 치러진 지자체장 선거에 이어 두 번째로 참패를 기록하며 마크롱과 그의 정당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신을 확인시켰다. 많은 이들은 이 결과를 두고 집권 세력이 제대로 한 방 맞았다고 표현했다. 마크롱 정부로선 두 번에 걸쳐 따귀(Claque)를 맞은 셈이다.


그들을 대신하여 공화당이 이끄는 우파연합과 사회당·녹색당이 중심이 된 좌파연합 듀오가 안정적인 득표를 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듯한 구시대의 복귀를 알렸다. 2017년 대선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과 맞대결했던 극우 정당 RN(국민연합) 역시 한 군데서도 승리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여서 내년 4월에 있을 대선 또한 지난 대선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가장 선전한 정당은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연합으로 7개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득표율 37.9%). 사회당과 녹색당 등 좌파연합이 7개 지역(34.8%), 코르시카와 2개의 해외령에선 지역 정당이 승리했다.

정치색이 비슷한 여러 정당들이 연합하여 공동의 리스트(비례대표 명단처럼 순번이 매겨진 일군의 후보군)를 구성한 이번 선거에선 극우정당 국민연합을 제외하곤 단독 정당이 후보를 낸 경우가 없어서, 상세히 선거 홍보물을 들여다 보지 않으면 어떤 세력들이 어떤 변별력 있는 공약을 갖고 함께 팀을 구성했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2016년 만들어진 집권당 LREM은 6년을 임기로 하는 이 지방의회 선거에 처음 참여하는 것이었다. 비교적 신생 정당이므로 지역 연고가 희박하다고는 하나, 지난 지자체장 선거에 이어 두 번째로 낙제 성적을 거둔 집권당은 자신들을 향한 국민들의 하늘을 찌를 듯한 불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LREM은 단독으로 후보를 내지도 못하고, 중도정당 모뎀(MoDem)과 중도우파 행동(AGIR) 등과 함께 연대해 '대통령다수연합'(Majorité Présidentielle)이란 이름으로 선거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 기반을 가진 모뎀과의 연합이라는 안전 장치에도 이들은 해외령을 포함한 17개 지역 단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며 약 7.1%의 표를 얻는 데 그쳤다.

결선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정당에 전체 의석의 25%가 보너스로 주어지고, 나머지 의석을 5% 이상을 차지한 정당이 각자 획득한 표만큼 나눠 갖게 되는 선거 시스템에 따라 제1정당에 막강한 힘이 실리게 된다. 집권당이 안정적으로 지역 정치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제1정당의 리스트 1번 후보가 광역도를 이끌게 됐는데, 한국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일드프랑스(Ile de France)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재선에 성공한 발레리 페크레스는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프랑스 민주주의 어디로

6월 17일을 기점으로 거리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실내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방역 지침이 해제된 시점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오랜만에 해방감을 맛본 프랑스인들의 다수가 이른 바캉스를 떠난 때이기도 했으나, 유사 이래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데에는 더 심각한 변수가 작용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Ipsos-Sopra)가 기권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지난 6월 27일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32%가 선거에 관심을 두지 못했거나, 다른 문제에 신경 쓰고 있었다고 답했고, 28%가 정치에 대한 불만을 기권으로 표하고 싶어서 투표하지 않았고 답했다. 지방선거에는 관심이 잘 가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었다는 이유를 든 사람이 각각 22%로 동률을 기록했다.

팬데믹이 뉴스의 중심을 차지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투표에 대한 보도가 적었고, 국민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사실과 함께 전염병과 관련해서 정부가 보여준 무력한 대응에 대한 실망이 정치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분석할 수 있겠다.

유권자 정치 성향별로는 멜랑숑이 이끄는 극좌 정당 LFI(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유권자들이 70%의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기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가장 크게 실망해 의사표시의 수단으로 기권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당과 연합해 좌파연합으로 등장한 LFI의 후보를 보며 배신감을 느껴 투표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정의당이 민주당과 연합해 후보를 낸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선거 다음날 집권당 내부 회의에서 카스텍스 총리는 프랑스인 3분의 2가 외면한 선거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패배는 정치의 일부"라는 말로 그 의미를 희석하려 했다. 그는 또 6월 30일 국회 발언에선 "선거의 기록적 기권은 매우 걱정스런 현상이며 우리 모두를 경각시키는 민주주의 자체의 실패"라는 말로 정치권 공통의 책임으로 돌리려 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의 베로니크 루바지 의원은 "2017년부터 정부는 지자체를 약화하고 중앙집권적 행정을 강화하면서 마치 지방선거는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간주해 왔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회당의 발레리 라보 의원도 "시민들의 삶과 정치 사이의 골이 지금처럼 깊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총리는 인지하고 계신가?", "대통령, 당신이 만든 새로운 세상은 시민들의 이 깊은 절망에 무한 책임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추궁했다.

정치 신인 마크롱이 벌여온 4년간의 실험은 집권 세력에 대한 불신은 물론 정치 시스템 자체에 대한 회의를 확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년 반 동안 지속되어 온 팬데믹 정국이 모든 이슈를 삼키고, 의회 기능을 무력화 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허깨비처럼 허공에 나부꼈다.

투표장에 가지 않은 사람 중 40%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치를 통한 세상의 변화를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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