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4일 후쿠오카 지방재판소 고쿠라 지부에서 열린 규슈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배제 취소소송 1심 판결에서 패소한 규슈조선학교 학부모들이 재판소의 부당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김지운
조선대학교 같은 교육기관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이득현 같은 한국인을 특별한 증거도 없이 살인범으로 모는 등등의 차별 사례는 한도 끝도 없다. 이득현 사건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던 시기에 발행된 1980년 12월 24일 자 <중앙일보> '70만 재일동포에 일제 때 못잖은 차별'은 "신성한 교육에서도 민족차별은 극심하다"며 이런 사례들을 소개한다.
72년 4월 재일동포 3세 황진기 양(당시 15세), 77년 3월 한국인 2세 설청화 군(18)은 각각 무사시노고(高)와 후꾸이 공대에 합격했으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취소당했다.
취업에 관한 차별의 사례로 자주 회자되는 사건도 이 기사에 소개돼 있다. 히타치 입사시험에 합격했다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입사를 거부당한 박종석 사례가 그것이다.
1970년 3월 아이치현립 벽남고를 졸업한 박종석군은 그해 11월 히타치사(社)의 입사시험에 합격, 채용 통지까지 받았으나 박군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회사 측은 일방적으로 박군의 입사를 취소했다. 박군은 70년 12월부터 74년 6월까지 3년 6개월에 걸친 법정 투쟁을 전개, 끝내 승소했다.
박종석은 히타치에 일하러 간 게 아니라 투쟁하러 간 셈이 됐다. 3년 6개월의 투쟁 끝에 회사 출근의 기회를 얻게 됐지만, 그는 그 뒤로도 계속 차별 철폐운동을 벌여야 했다.
그가 그런 운동을 벌인 것은 제2, 제3의 박종석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제1의 박종석'이 회사에서 여전히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받아준 회사는 그에게 공정한 근무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원이 아니라 투사로 살 수밖에 없었다.
세금 낼 것 다 내고 사회 곳곳의 온갖 허드렛일은 다 하면서도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재일한국인들은 이처럼 코로나19 같은 대재앙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진학과 취직에서 터무니없는 차별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몰고 운전할 때도 주변 어디선가 혹시라도 일본인이 죽지 않을까를 걱정하면서 살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램지어 교수, 위안부 이어 재일한국인도 왜곡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의 일본 이민은 엄밀히 말하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정책이 만들어놓은 경제 환경으로 인해 식민지 한국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그런 한국인들이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차별을 받고 있으니, 재일한국인 차별은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이 빚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류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재일한국인들의 처지는 그들 자신의 선택과 기질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학 교수가 이런 생각의 '이론적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다.
작년 9월 유럽법경제학지(European Journal of Law and Economics)에 기고한 '사회적 자본과 기회주의적 리더십의 문제점: 재일한국인의 사례(Social capital and the problem of opportunistic leadership: the example of Koreans in Japan)에서 램지어 교수는 재일한국인들이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의 개인적 특성에서 규명하고자 했다.
램지어는 "한국인들은 1910년대에 일본으로 이민 가기 시작했다"면서 "그들은 가난하고 독신이고 남성이고 젊었으며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해방 뒤에 귀환하지 않고 일본에 남은 한국인들은 '더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갔다"면서 "그대로 머문 사람들 중에는 낮은 수준의 사회적 자본이 남아 있었다"고 학술적 표현을 써가며 재일한국인들을 폄하한다.
그는 재일한국인들이 주류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이유를 위생 상태나 범죄율뿐 아니라 '사상 문제'에서도 끄집어낸다. 1948년 제주 4·3항쟁 때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이들이 재일한국인 사회의 주류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재일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거부감을 조장한 이유였다고 말한다.
4·3 이전부터도 한국인들은 극심한 차별을 받았고, 한국보다 일본에서 공산주의운동이 더 활발했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공산당이 허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4·3항쟁 때 일본에 유입된 한국 공산주의자들로 인해 재일한국인 차별이 극심해졌다는 엉뚱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램지어는 일본제국주의로 인해 한국인이 한국에 살 수 없어 일본으로 이민할 수밖에 없었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한 채, 일부 한국인들의 개별적 특성에서 재일한국인 차별의 명분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가 독창적인 분석을 통해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냈다기보다는, 일본 주류 사회의 정서를 학문적으로 합리화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재일한국인 차별 역시 제국주의 침략 범죄의 산물이므로, 일본이 한일관계를 제대로 풀려면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는 물론이고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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