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5 07:25최종 업데이트 21.05.2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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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부터 시작되는 '차별 금지법 국민 청원'을 앞두고 진행 중인 오마이뉴스 기획 '차별 금지법 나만 필요해?'의 첫 기사인 <동성결혼 청첩장을 보내고 싶다>(http://omn.kr/1t9zf)를 읽었다. 성소수자에게 청첩장이란 사회적으로 인정되었음을 알리는 의례요, 결혼이란 이들에게 평등권이 '정의롭게' 실현되었음을 확정짓는 일이다.

놀랍지 않은가. 어떤 이들에게 결혼은 '불공정한' 가부장제의 온상인데 말이다. 20세기 이후 처첩제, 호주제, 상속권, 가사 노동, 명절 증후군 등 사회적 갈등과 논쟁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결혼을 공정을 실현하는 도구로 여기는 입장과 억압적 권력이 배어있는 제도로 바라보는 두 상반된 입장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결혼의 정치학을 생각하니 오래 전 경험이 떠올랐다. 아이 때문에 우연히 지역 사회의 놀이 모임(play group)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영국의 가족 형태, 아동 복지, 입양, 그리고 동성 결혼을 실제로 접할 수 있었다.

"너 결혼했어?" 그가 놀라며 내게 물었다

아이가 7-8개월 되었을 때부터 나는 동네 '놀이 모임'에 빠졌다. 영국은 만 3살부터 주 15시간 유아 교육이 국비로 지원되기 때문에 '놀이 모임'에는 주로 신생아부터 만 3살 이하의 아이들이 모인다. 장소와 주체는 다양했다. 역사적으로 종교사업 이외에 사회사업과 자선사업을 했던 영국 국교회가 주관하는 모임, 지역 아동 센터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동네 엄마들이 필요에 의해 초등학교 식당을 잠시 빌려 운영하는 모임 등이 있었다. 의지만 있다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2시간을 집에서 아이와 둘이 씨름하지 않고 보낼 수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육아에 지친 부모들은 고갈된 사회성을 부족하나마 채울 수 있다.  
 
영양제 같은 놀이 모임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언어 격차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국어와 제2외국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왠지 내가 시대착오적 단어를 구사한다는 느낌이었다. 아들, 딸, 남편, 아내 등 가족 관계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느꼈다. 나는 사전에 명시된 대로 이 어휘를 충실하게 사용했지만, 동네 영국 여성들의 일상 언어에서 이 단어들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뭐가 어디서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단어들을 내뱉을 때마다 내가 구닥다리가 된 것 같았다.
 
어느 날, 네댓 명이 둘러앉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파트너라는 단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기회다 싶어서 왜 남편이란 단어 대신에 파트너란 단어를 사용하는지 되물었다. 내 질문에 그가 "너 결혼했어?" 놀라며 물었다. 결혼반지가 없는 내 손을 보고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영국의 사회적 코드로 판단했을 때 나는 동거 커플일 확률이 높았기에 결혼에 의한 '남편-아내'라는 단어로 결례를 범하는 것보다는 파트너라는 단어 사용이 더 적합했던 것이다.

이 대화가 촉발제가 되어 다들 결혼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했다는 사람, 안 했다는 사람, 8년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살았는데 부모 등쌀에 할지말지 고민이라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연이 나왔다. 아이의 존재로 미루어, 또 그간의 대화에서 아이들 아빠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모두 결혼했으리라고 짐작했던 나로서는 오히려 그들의 답이 뜻밖이었다.

놀이 모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족을 결혼과 혈연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던 내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나는 결혼에 의하지 않은 가족 관계가 영국 사회에 거부감 없이 확산되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변화는 언제 어떤 수순을 밟아 제도화된 것일까?unsplash
 
한 번은 두 살 미만의 남자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노신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이 계속 싸우기에 손자들이 활동적이라 힘드시겠다고 했더니, 손자가 아니라 아들이라고 하셨다. 아차 싶었다. 아주 늦은 막둥이? 혼외 자식? 나는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그냥 웃어 넘겨야 할지 판단을 못 내리던 중이었고, 내 얼굴에서 난감함을 읽었는지 이해한다며 웃으셨다. 두 아이는 입양한 아이였다. 그 분의 아이들은 이미 다 장성해서 독립했는데, 더 나이 들기 전에 입양해 사회에 작은 기여라도 하자는 아내의 제안에 동의해서 두 명을 동시 입양했다고 했다. 하지만, 두 아이가 사이좋게 지내질 못하고 많이 싸운다고 하셨다. 노년의 입양, 노년에 만든 새로운 가족… 여운이 오래 갔다.
 
놀이 모임엔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가 오기도 했고, 어떨 때는 가족이 단체로 오기도 했다. 영국도 99% 여자들 속에서 남자 홀로 어울리기는 힘든지 아빠들은 주로 조용히 있는데, 예외가 있었다. 6-7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오는 아빠로, 대단히 사교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그 아이는 다음 주엔 다른 남자와 왔다. 역시 열성적으로 아이들 놀이에 참여하고 스스럼없이 섞였다. 두 사람이 그 아이를 번갈아 데리고 왔고, 나는 아마도 친부와 양부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어느 날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고 놀이 모임에서 그 둘을 지칭하던 "두 아빠 (two daddies)"가 친-양부가 아닌, 동성 커플의 입양이라는 것을 알았다.  

놀이 모임을 통해 나는 결혼에 의하지 않은 가족 관계가 영국 사회에 거부감 없이 확산되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변화는 언제 어떤 수순을 밟아 제도화된 것일까?

변화의 시작, 2002년 입양과 아동에 관한 법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금지된 2003년부터 동성 결혼법이 통과한 2013년까지 21세기 첫 10년, 영국은 성소수자 정책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보였다. 시작은  2002년 '입양과 아동에 관한 법(Adoption and Children Act 2002)'이었다.

기존에 적용되던 입양법(1989)이 가진 문제로 두 가지가 지적되었다. 하나는 아동 복지 영역으로, 개정안은 입양되는 가정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과정과 또 입양 아동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나이인 경우 아동의 의견도 물어보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입양인 자격에 대한 문제였다. 당시 현행법은 "성인 어른 혹은 결혼한 부부"에게만 입양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입양희망자가 부족해서 아동들이 입양 기관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고 또 아예 입양되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에 자격을 완화할 목적으로 "결혼한 부부"에서 "결혼한"을 생략했다. "결혼"의 생략은 비결혼으로 맺어진 커플의 입양을 허가하는 것으로서, 동거 커플과 동성 커플을 의미했다.

당시 동성애자 권리(gay right)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단계라 웨스트민스터에서의 논쟁은 동거 커플보다는 동성 커플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법안의 초점은 동성애가 아닌 아동이었다. 지지하는 쪽은 초점을 아동에게 맞추고 가급적 많은 아동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동성 커플이 아동에게 안정성을 줄 수 있느냐라는 반론이 있었지만, 이 법안은 통과되었다.

동등한 입양권 획득을 계기로 성소수자에 대한 개혁 정책은 속도가 붙었다. 다음 해인 2003년, 블레어 내각은 '성적 지향에 따른 고용차별 금지법(Employment Equality (Sexual Orientation) Regulations 2003)'을 상정, 통과시켰다. 계급·인종·인권·여성을 이슈로 내세운 1960년대 뉴레프트(New Left) 운동 이후, 영국은 차별 금지법을 분야별로 입안했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는 인종 차별 금지(1965), 임금 차별 금지(1970), 장애인 차별 금지(1995)에 비해 상당히 늦은 셈이었다. 약 40년간 각각 따로 입안된 법들은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 2010)의 이름으로 통합된다. 2021년 5월 국민 청원이 들어가는 한국의 차별 금지법과 흡사한 법이다.
 
2006년 12월 7일 페루 리마에 있는 영국대사관에서 페루인 마르코 브레 토 네체(42. 오른쪽)와 영국인 피터 고드(42)가 동성 커플의 결혼을 허용하는 영국법(Civil Partnership Act)에 따라 결혼했다. 연합뉴스
 
기세를 몰아 블레어 내각은 다음 해인 2004년 동성애자 커플을 파트너십이란 개념으로 인정, '파트너십 법(Civil Partnership Act 2004)'을 통과시킨다. 이 법으로 동성애 커플은 결혼이 보장하는 법적 권리와 책임-재산권, 상속권, 연금, 양육권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게 된다. 다만, 이 단계에서도 결혼이란 제도는 여전히 이성 커플에만 허용되었다.

결혼은 넘기 어려웠었던 것일까. 무려 9년이 지난 2013년이 되어서야 데이비드 카메론의 보수당-자유 민주당 연립 내각이 최종적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시킨다. 2016년 11월 2일 비비시(BBC)에 의하면, 결혼이 허가된 첫 6개월 동안 7732 동성 커플이 파트너십에서 결혼으로 전환시켰다고 하고, 파트너십 신청은 85%까지 줄었다. 법적 권리에서 차이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인 결혼 선호도는 결혼이 가진 제도적 상징성이 그만큼 강렬했음을 시사한다.

마침내 동성 결혼 합법화... 예상치 못했던 이성애 커플의 소송

동성 결혼의 합법화로 모든 논의가 종결된 것 같았지만, 흥미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2014년 '가부장적' 결혼이 싫어서 동거 상태에 있던 런던의 레베카 스타인펠드와 찰스 케이던이 파트너십을 신청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아니고 이성애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애초에 파트너십은 제도권이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권리를 인정할 필요는 있었으나 결혼까지는 이들에게 개방하고 싶지 않아 만든 절충 장치였고, 동성애자에게는 결혼이라는 최종 목표로 가기 전 숨 고르는 단계였다. 하지만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을 때, 차별받던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갖는 예기치 못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스타인펠드-케이던의 문제제기는 '평등한 파트너십 운동(The Equal Civil Partnerships Campaign)'으로 발전, 시민운동가들은 동성애자와 동등한 권리, 결혼과 파트너십 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이성애자들에게도 허하라고 촉구했다.
 
레베카 스타인펠드와 찰스 케이던이 2016년 1월 19일 영국 런던의 고등법원 밖에 서있다. 두 사람은 이성애 커플에게도 시민적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s)을 허용하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연합뉴스
 
2018년 2월 BBC는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s)을 주제로 이성애자들이 왜 파트너십을 원하는가를 조사했다. 혹자는 결혼 제도에 내재된 가부장성이 싫다고 했고, 누군가는 서로를 '남편' '아내'의 위치로 규정짓고 싶지 않다고 했고, 또 과거 이혼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결혼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가부장적 제도로 들어가기 싫지만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고 싶은 이성애자에게 파트너십이 결혼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최초로 문제가 제기된 지 만 4년이 지난 2018년 6월, 영국 대법원은 이성 커플도 파트너십을 택할 수 있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 해 10월 2일 <가디언>은 영국 내 3백만에 달하는 비결혼-동거 커플이 결혼보다 파트너십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21년 현재, 모든 영국인은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세 가지 선택이 있다. 동거, 파트너십, 결혼이다. 어느 쪽이 대세를 이룰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가족 관계 형성에 있어 결혼의 독점적 지위가 끝난 건 분명하다. 이로써 결혼권을 획득하려고 했던 동성애자와 결혼 제도를 비판했던 이성애자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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