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바라지선교센터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이종건 사무국장(좌)과 이진순 와글 이사장(우)
와글
평화가 폭력을 이기는 최상의 방법
한국사회 청년의 대다수는 집도 없고 안정적 일자리도 없는 흙수저들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도시빈민으로 여기지 않고 지역주민으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지하방과 옥탑방, 고시원의 보이지 않는 공간에 은폐된 빈곤인구로 존재한다. 도처에 존재하나 어느 한 곳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오지 못한 목소리들은 제각기 외로운 채 무성하다. 보궐선거 이후 20대 남성 유권자들의 몰표 현상에 대해서 정치권은 각기 제 좋을대로 해석하면서 감읍하거나 질타하지만, 20대 남성들에게서 공히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분노와 절망이다.
올해 만27살인 이종건이 이십대 남자를 대표한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우리사회 '이남자(20대남자)'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나 정치적 폄하가 왜 잘못된 편견인지 깨닫게 하는 좋은 본보기일 수는 있다. 이종건은 어떻게 분노와 절망의 늪을 딛고 나올 수 있었을까? 포크레인이 가난한 사람들의 밥상을 뒤엎고 뽀얀 콘크리트 먼지가 힘없는 노인들의 머리를 덮어버리는 폭력의 현장에서, 그는 어떻게 신심과 희망을 붙들 수 있었을까?
- 어떻게 도시빈민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되었죠?
"옥선(옥바라지선교센터)는 어찌 보면 '뜬금없는 조직'이죠. (웃음) 민주화 쟁취라는 큰 구호가 끝나면서 전국의 학생운동이 쇠퇴하고 기독교운동도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저희는 새롭게 빈곤문제나 철거반대를 가지고 싸우고 있으니."
-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아버지가 목사님인데, 어려서 제가 경험한 시골교회란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공동체' 같은 거였어요. 돈이 많다고 장로가 되거나 권사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교회 문도 늘 열려 있었고, 누군가 와서 주무시고 가기도 하고... '다 같이 잘 사는 세상'까지는 잘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여기서만큼은 안전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공간', 그런 공동체에 대한 관심,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일찌감치 작가가 아니면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대학 원서도 감신대 한 군데만 넣었죠. 여기서 떨어지면 작가하지 하면서... (웃음)"
- 그런 공동체가 가능할까요? 임대아파트와 울타리를 치고, 주변에 청년주택이 들어선다고 하면 주민들이 땅값 떨어진다고 시위를 하기도 하는데요.
"저희가 아현포차거리를 지키는 싸움을 할 때였는데, 거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자기 동네를 강남처럼 만들고 싶어하는 주민들이 있었죠. 그 분들이 아현포차 철거민원 넣기 전에 한 일이 뭐냐하면 마을버스를 없애달란 거였어요."
- 마을버스를 만들어달란 게 아니고 없애달라고요?
"완전 촌극이죠. 마을버스가 다닌다고 불편할 게 없잖아요. 근데 초록색 마을버스가 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없이 사는 동네 같아 보인다고. (웃음)"
- 참 황당한 일이군요.
"충분히 괜찮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려 있는 거죠. 집에 와서 누워있는데도 우리 집값이 계속 떠오르는 삶이라면, 그런 삶이 정말 행복한 걸까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철거현장에서 함께 했던 분들을 보면서 희망을 봅니다. 저희는 철거현장 한 군데가 마무리되고 거길 떠나게 되면 함께 했던 주민분들한테 왠만해선 다시 연락을 안 드리려고 하거든요."
- 왜요?
"용역한테 쫓겨나고 힘들었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고 이제는 다 잊고 자기 삶을 온전히 영위하시라고... 근데, 오히려 그분들이 저희한테 연락을 주시는 거예요. 어디 뉴스에서 봤다, 내가 가서 발언하겠다, 하고요."
- 아하!
"'내가 겪었던 아픔을 누군가 또 겪고 있는데, 나라도 가서 얘기해 주고 싶다'고 하세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잘 싸우라고. 자기의 고통을 트라우마로 남겨두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고 공감하는 걸로 풀어나가시는 거죠. 저희가 네다섯번 현장을 옮겨 다닐 때마다 매번 그랬어요. 처음 옥바라지골목에서 만났던 분들과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만나는 분들은 다 한번씩 만났어요. 활동하면서 정말 감동받고 희망을 느꼈던 순간이죠."

▲철거의 아픔을 겪은 이들은 다른 이웃들의 철거현장에도 연대의식을 가지고 참여한다. 노량진수산시장 재개발에 반대하는 상인들의 모임에서, 가운데 안경 쓴 이가 이종건 사무국장
박김형준
- 철거현장에선 몸싸움과 물리적 충돌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평화가 폭력을 이긴다'는 십자가정신과 상충되는 건 아닌가요?
"우리는 우리가 가진 공간을 지키려고 할 뿐, 경찰을 끌어내고 뭘 던진다든지 하는 폭력은 쓰지 않아요. 그냥 스크럼을 짜고 계속 버티는 겁니다. 그러다가 뚫리면 뒷줄의 사람들이 또 스크럼을 짜고... 우릴 협상의 상대로 인정해 줄 때까지 버티는 것. 전 그게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비폭력저항이라고 생각해요. 비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뭔지 아세요? 더 많은 시민들이 모이는 겁니다. 공권력 만으론 해소할 수 없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거죠. 철거현장도 사람 사는 곳이고 밥 먹는 곳이에요. 우린 노래도 하고 예배도 하고 같이 먹을 걸 해서 나눠먹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니 많이들 관심 가지고 참여해 주시면 좋겠어요."
광장에서 골목으로 촛불은 이어진다
"모든 것을 자본으로 가치환산하는 사회,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계속 아이들을 노출해야 하는 것등 꼬리를 무는 문제들은 여전히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한 후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박근혜 대통령이 나온다. 그래서 대통령 퇴진은 시작일 뿐이다."
("경찰이 자꾸 우리 배후 묻는데, 굳이 배후를 밝히자면..." 2014년 5월 12일 오마이뉴스 기사 중에서)
- 촛불항쟁으로 박근혜 탄핵이 된 지도 4년이 지났습니다. 박근혜 퇴진은 시작일 뿐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때마침 오늘이 재보궐선거일이네요.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랑 똑같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게 모든 걸 간단히 뭉뚱그리면 안 되니까요. 다만 너무 많은 '나중에'를 듣게 된 건 사실이에요. LGBT와 관련해서 '나중에 (말하라)'가 나왔지만 그밖의 많은 분야에도 '나중에'가 적용되었어요. 광장은 거대한 정의를 성취하는 과정이었잖아요. 하지만 그 촛불들은 하나의 깃발이 절대 아니었어요. 어떤 건 무지개깃발, 어떤 건 철거민, 어떤 건 비정규직 깃발... 골목골목에서 나온 다양한 깃발들이 큰 줄기를 이뤄서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탄생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냈죠. 광장에 모여서 큰 빌런을 무찔렀으면 우리는 다시 골목으로 돌아가야죠. 왜냐하면 그 골목들이 망가진 걸 다 해결하고 나온 건 아니니까. 광장의 에너지를 골목으로 돌려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요구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했어요."
- 광장의 에너지를 골목으로 되돌려서 삶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보시나요?
"촛불은 각자가 가장 절박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해결하러 나온 사람들의 거대한 흐름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의 절박한 요구를 '나중에'로 미루면서 지금은 힘을 모으는 데만 집중하라고 말하는 건 적절치 않아요. 정치권력을 가진다는 건 이 배의 선장이란 뜻이잖아요.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진 않죠. 그래도 정부는 우리가 넘어야 할 산,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파도에 대해서 어떤 청사진과 프로세스를 보여줬어야 해요. 박근혜 퇴진 이후에 있었던 선거에서 네 번을 압승하지 않았나요? 그것으로도 부족했을까요? 촛불정부라는 이름으로 갈 수 있는 임계치가 분명히 있는 건데,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반성문도 없이 공정성과 효율성의 굴레에 빠져 버렸으니까."
- '공정성과 효율성의 굴레'라고요? 공정성도 굴레가 되나요?
"조국 대전 이후에 청년들 사이에서 공정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지금 얘기되는 공정성은 '내가 순위를 1등부터 100등까지 매길게. 그 과정은 공정할 거야'라는 의미예요. 세월호 때도 사람이 수단이 되고 삶이 파편화하고 사회적 연대라는 게 무색해졌는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공정성이 아니고 공공성이죠. 1등부터 100등까지 납득할 만하게 순위를 매겨 시험지 같은 인생을 만드는 게 공정성이라면, 불평등을 없애고 등수를 매기지 않는 삶이 공공성이라고 생각해요."
광장에서 골목으로, 나중에가 아닌 지금 바로, 등수 매기는 공정성이 아니라 불평등을 없애는 공공성이 사회의 주요가치가 되는 세상. 이십대 남성 유권자 이종건은 그런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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