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연쇄 총격사건 현장 중 한 곳인 스파업체 '골드스파' 앞에서 19일(현지시간) 현지 한인들이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6일 애틀랜타 일대에서는 21세의 백인 로버트 에런 롱이 마사지숍과 스파 등 3곳을 돌며 총격을 가해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6명 등 8명이 숨졌다. 2021.3.19
연합뉴스
지난 3월, 애틀랜타 아시안 마사지 숍에서 벌어진 총기 살해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선 아시안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종인 아시안계는 미국 인구의 약 6.5%, 2100만 명에 달한다.
2017년 퓨 리서치 발표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15년 사이 아시안 인구 증가율은 72%로, 60%인 히스패닉을 제치고 미국 내 가장 빠른 증가율을 보였다. 중국인이 가장 많고, 인도, 필리핀 순이다. 베트남, 한국, 일본에 뿌리를 둔 이들도 100만 명을 넘었다.
25세 이상 아시안의 절반이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졌고, 이는 30%인 미국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그에 따라 경제와 복지 면에서 미국 평균 인구보다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아시안들은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대학 졸업생을 배출한다. 대학원생의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요 직책에서 아시안의 숫자는 손에 꼽는다. 3월 19일,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는 이 이유를 마거릿 진 교수의 <Stuck: 왜 아시안 미국인들은 기업 사다리 꼭대기에 도달하지 못할까>에서 찾았다. 사회학 교수인 진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명문 대학을 졸업한 아시아계 미국인 2세들을 인터뷰했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그녀처럼 어린 나이에 미국에 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완벽한 영어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이들 103명을 인터뷰해 출판했다. 이를 통해 뛰어난 실력과 완벽한 언어, 높은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CEO, CFO, COO, CIO 같은 회사 내 최고 경영진을 뜻하는 C-suite에 아시안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찾았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일을 매우 잘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이니까 믿을 수 없다는 선입견이 결합될 때 누군가에겐 매우 위협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자체를 믿을 수 없고 적까지 있는 자가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매우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책은 미국 땅에서 '영원한 외국인'인 아시안이 C-suite가 되기 위해선 덜 유능하거나 덜 아시안적이어야 한다는 모순된 결론을 도출한다. 그러면서 아시안에겐 유리천장처럼 '뱀부 실링(Bamboo ceiling, 대나무천장)'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고 설명한다.
모범 소수자?

▲미 프로농구(NBA) 선수인 대만계 출신 제레미 린
뉴욕 닉스
"정말 진심으로, 이젠 바뀔 때가 되지 않았니? #오스카 무대에서 아시안들을 조롱하는 걸 멋지고 세련됐다고 하는데, 난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2016년 2월 29일, 대만계 농구선수 제레미 린의 트윗이다. 이틀 전 오스카 시상식에서 흑인 사회자 크리스 록이 아시안 어린이 3명을 무대에 세워두고 한 코미디에 대한 비난이었다. 백인 위주 오스카를 비판하는 #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를 앞세우고 시작된 이 날 행사에서 흑인 진행자는 아시안이 수학을 잘하고 부지런한 일꾼이라는 내용의 코미디를 했다. 이어 자신의 농담에 화가 난다면 이 아이들이 만든 전화기로 트윗하라고 조롱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퍼포먼스가 아시안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켰고, 아시안 아동 노동에 대한 비아냥이었다고 지적했다. 크리스 록의 아시아 농담은 역풍을 불렀다. 흑백 갈등을 무마하려던 오스카 주최 측은 한 달 뒤 아시안 차별에 사과해야 했다. 배우 산드라 오, 콘스탄틴 우, 조지 타케이, 이안 감독과 아시안 단체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제88회 아카데미 상 시상식 사회를 맡은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28일(현지시각) 시상식장인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6.2.29
연합뉴스
"교수 인종 배려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우리 학과엔 아시안 교수가 흑인보다 5배나 많지요? 균형이 너무 안 맞는 거 아닙니까?"
며칠 전, 미 동부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흑인 교수가 공개회의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 때보다 민감한 요즘 시기에 흑인과 아시안을 단순 비교해 말하는 것에 놀라 모두 즉답을 피했지만 당황스러운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그가 말하는 그 균형 속엔 학과 내 대다수인 백인 교수의 숫자는 전혀 문제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시안 교수의 두 배가 넘고 흑인 교수의 10배나 되는 백인 교수는 애초 공정의 잣대에 올라가지도 않은 것이다. 이를 지켜본 한 아시안 교수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소수자 연대다 싶어 작년 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집회도 함께 했는데... 우리 마이너리티끼리 싸우면 과연 누가 가장 좋아할까 싶어 씁쓸합니다."
2017년 4월 19일,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엔피알(NPR)>은 아시안과 흑인 사이의 갈등에 대해 '모범 소수자'라는 신화로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2차 대전 후 많은 백인들이 아시안계 미국인들의 성공을 확대 해석했다. 그 효과로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의 지속적 사회적 투쟁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NPR 기자 제프 구오는 백인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실성과 힘든 노동을 추켜세우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폄하하기 위한 전술이었다고 말한다. 2차 대전 당시 미 정부에 의해 수용소에 감금됐다 풀려난 일본인들이 재기에 성공하는 드라마도 그렇지 못했던 흑인들에 대한 비난의 근거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아시안은 흑인을 게으르다고 무시하고, 흑인은 아시안을 자신들이 투쟁으로 성취한 과실만을 따먹는 이기적인 이들이라 경멸하는 상황이 지금껏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말마다 주변에서 열리는 AAPI(아시아·태평양계) 집회에 가면 흑인과 백인과 히스패닉 시위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최현정
소수자 연대
그러나 애틀랜타에서 아시안 혐오 총기 사건이 났을 때, 희생자 신원을 비롯해 아시안 혐오 범죄 증거를 가장 먼저 보여준 매체는 흑인 인권 운동 사이트였다.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 전역에서 펼쳐진 BLM 시위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이였다. 흑인 인권 관련 베스트셀러 저자이면서 인플루언서인 그는 어느 언론보다 먼저 아시안 혐오 범죄에 관한 속보와 시위 내역을 포스팅하고 분노했다. 그의 사이트엔 흑인 팔로어들의 동조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요즘 매 주말마다 주변에서 열리는 AAPI(아시아·태평양계) 집회에 가면 흑인과 백인과 히스패닉 시위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혐오 범죄는 아시안만이 아닌 미국인 모두에 대한 공격이고 분노라는 공감대가 집회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이번 주말에도 AAPI 집회에 나가면 BLM에서 만났던 여러 마이너리티들과 만날 것이다. 이들은 모범 소수자보다 소수자 연대가 더 건강하고 강하고 옳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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