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렌 프라숑(Irene Frachon)프랑스의 폐질환 전문의로, 메디아토르라는 약이 가진 치명적 부작용을 처음 발견하고, 판매를 중지시키며, 피해자들이 보상받기까지, 10여년간 최전선에서 싸워온 전사이기도 하다.
위키피디아
제약사의 협박
메디아토르 사건이 본격적으로 세간에 회자되던 2010년 12월 23일,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1996년 3월 미국 세르비에사 대표가 미국 내 판매를 맡은 회사에 메디아토르 승인 관련 연구원들에 대한 협박 계획을 지시한 비밀 팩스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당시 책임 연구를 맡았던 아벤암 교수는 누군가 보낸 관을 받았고, 프랑스의약국 고위관리는 전화로 살해 협박을 받았으며, 관련 사건을 취재한 기자는 사립탐정에게 협박당했고, 미국 메디아토르 피해자를 위해 일하던 변호사는 학교에 가고 있는 어린 딸의 사진을 받았다.
제약회사는 마피아 조직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과학자와 관료, 언론, 법조인 모두에게 압력을 행사하며 프랑스와 미국에서 허가를 받아냈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 중 한 명인 샤를 조셉-우당은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메디아토르를 14년간 팔아온 세르비에사는 이를 통해 4억 유로(약 5400억 원)의 수익을 챙겼습니다. 그들이 취한 이득에 비하면 이들이 재판에 참여한 6500명의 피해자들에게 줘야 하는 보상금 1억 8천만 유로는 턱없이 적죠. 세르비에사는 결국 남는 장사를 한 거니까요. 적어도 이들이 메디아토르를 팔아서 거둔 수익 전액을 몰수해 피해자들에게 줘야 마땅합니다.
이 판결은 세르비에사는 물론이고 다른 제약회사들의 관행에 의미 있는 경종을 울릴 수 없어요. 그들은 이 판결을 보며 얼마든지 같은 짓을 해도 좋다는 사인을 받겠죠. 기업은 오로지 이윤을 가지고 판단하니까요. 이들에게 부과된 벌금 270만 유로도 지나치게 가볍습니다. 현재 세르비에사의 1일 매출액은 1천만 유로예요."
대체 왜 이토록 적은 벌금이 부과되었는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행법상 피해보상액에 대해서는 한계를 두지 않으나, 기업과 정부가 저지른 소위 화이트 칼라 집단의 불법 행위에 대한 벌금에는 상한선이 있어요. 결국 법 자체가 이러한 현실을 단죄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거죠. 화이트 칼라의 범죄가 지속될 수 있게 만들어진 법적 환경이라는 게 맞겠네요."
그들의 범죄를 멈춰 세울 수 있을까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약회사는 벌금을 물지언정 오늘도 영업을 지속한다. 이것은 단지 세르비에사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대형 스캔들을 일으켰던 제약회사들이 공통으로 누려온 특권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한 화이자는 2009년 벡스트라(Bextra) 등 4개 약품 허위광고로 23억 달러(현재 환율 기준으로 2조 5937억 원)의 벌금형을 받았고, 스위스 노바티스도 2015년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3억 9천만 달러(약 4400억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미국의 머크사는 1999년 바이옥스라는 관절염 진통제를 출시해 약 6만명의 사망자를 내고 2004년 퇴출 당했지만, 59억 5천 달러(배상금 50억 달러, 벌금 9억 5천 달러, 약 6조 7천억)로 사건을 마무리했으며, 국내에도 들어와 있는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gardasil)을 만들어 전 세계에서 판매중이다.
제약회사들의 문제를 오래 취재해온 프랑스 저널리스트 마리-모니끄 로뱅(Marie-Monique Robin)은 대형 제약회사들에 정기적으로 떨어지는 벌금형은 "사업상 정기적으로 지출하게 되는 공식 비용에 불과하다"라고 자신의 저서 <에코사이드>에서 토로한 바 있다.
그나마 ANSM에 대해 살인에 가담한 책임을 물은 것은 이번 판결의 큰 성과라고 샤를 조셉-우당 변호사는 말한다. 이 같은 제약회사의 범죄가 보건당국의 적극적 협력 없이 이뤄지기 힘듦에도 그간 대부분의 판결은 제약회사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 판결에 대한 여론은 매섭다. 제약회사의 범죄는 보건행정 당국의 협력과 방조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보건행정 당국에 대한 30만 유로의 벌금으로 이 일이 중단될 이유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벌금도 세금으로 낼 텐데, 국가기관의 잘못을 왜 세금 털어 납부하느냐는 지적이다.
ANSM은 현 코로나19 정국에서 백신의 안전성을 판단하고 부작용 사례를 집계하는 일도 하고 있다. 때문에 SNS 일각에서는 이렇게 범죄에 가담한 보건당국을 우리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디아토르 스캔들이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라 프랑스 언론을 뜨겁게 장식하던 무렵(2009-2010)은 신종플루 팬데믹이 지구촌에 상륙한 때이기도 하다. 당시 신종플루 치료제나 백신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무시, 무관심에 메디아토르 사건이 톡톡히 기여했다. 이번 재판에서 검사가 지적한 것처럼 "세르비에사의 태도는 제약업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신을 부추겼다".
▲책 <유익하거나, 무익하거나, 위험한 4000천개의 약> 201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6 개정 보증판이 나오며 수십 만 부가 팔렸던 시판되는 약들에 대한 가이드북이다. 이 책은 시판되는 약 중 35%만이 존재 이유가 있는 쓸모있는 약이며 5%는 당장 퇴출되어야 할 위험한 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마존 사이트 캡쳐
2012년, 두 명의 의사(베르나르 드브레, 필립 에방)가 공저로 내놓은 <유익하거나, 무익하거나, 위험한 4천개의 약>은 이러한 불신의 근거를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두 의사는 이 책에서 시판중인 약의 35%는 무용하며, 25%는 상당한 부작용이 있고, 5%는 당장 퇴출되어야 할 위험한 약이라 경고했다. 이들에 따르면, 시판중인 약 중 35%만이 충분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나 시판중인 4000개의 약 중 75%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며 "이중 연간 100~150억 유로(13.5~20조 원)가 문제가 있거나 쓸모 없는 약에 들어가 무의미하게 버려지며(즉 제약회사의 손에 들어간다) 연간 10만 건 이상의 심각한 질환과 3만 명의 사망자들이 이 약들로 인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이 책은 발간 2개월 만에 20만 권이 팔리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2016년에는 200개의 약을 추가한 개정증보판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이후에도 제약회사들의 비행을 사회에 폭로하는 저서들을 수차례 내왔고, 메디아토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비판적 입장을 제시해왔다.
메디아토르에 대한 형사 재판은 종결되었으나 현재 진행 중인 몇 가지 민사재판을 통해 세르비에는 또 다른 죗값을 계속 치르게 될 것이라고 변호인단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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