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여러 시민·사회·종교 단체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양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여중생 범대위)'를 결성하고 미 2사단 앞에서 1차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집회 도중 시위대 일부가 기지 철조망을 절단하였고, 취재를 위해 미군기지 안에 들어간 <민중의 소리> 기자 2명이 미군에 의해 감금·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군견까지 동원해 기자를 연행하는 장면. 미군은 이에 대해 "한국 경찰이 영내에서 연행했다"라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
여론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미군 당국은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나섰다. 7월 3일 자체 조사 결과 미군 병사들의 과실이 인정됐다며 마크 워커 병장과 페르난도 니노 병장 등 미군 2명을 과실치사죄로 미군 군사법원에 기소했다. 가해 군인 두 명에 대한 한국 검찰 조사에도 협조하겠다고 했다. 7월 4일에는 라포트 주한 미군 사령관이 "미 육군이 이 비극적인 사고에 전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라는 내용의 사과를 했다.
그러나 워커 병장과 니노 병장은 한국 검찰 조사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두 가해 군인은 7월 8일 예정된 검찰 조사에 신변 위협과 언론의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미8군 사령부는 "미군의 신변안전이 보장되는 미군 영내에서 언제든지 조사를 받겠다"라는 의사를 한국 검찰에 전달했다. 이에 의정부지청이 담당 검사를 직접 미 제2사단으로 보내 두 가해 군인의 영내 출석을 요청했으나 미군 측은 니노 병장과 워커 병장의 출석 여부에 관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두 가해 군인의 신병 인도가 어려웠던 것은 주한미군지위협정에 따라 공무 수행 중 일어난 범죄에 대해선 미국이 1차 재판권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그간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미군 당국의 태도로 보아 미군 측에 재판권을 맡겨서는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시위대를 중심으로 미군의 재판권 포기와 주한미군지위협정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군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하는 시한을 하루 앞둔 7월 10일 법무부는 한미 주한미군지위협정 체결 이래 최초로 미군 측에 재판권 포기 요청서를 보냈다. 그리고 워커 병장과 니노 병장은 효순과 미선의 49재 추모제를 앞두고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았다. 이때 이들은 조사석에만 앉았을 뿐 CID(미군범죄수사대)에서 이미 진술했다는 이유로 사고 경위에 관한 진술을 거부했다.
8월 5일에 의정부지청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고의 주된 원인은 운전병과 관제병 사이의 통신에 장애가 있었고, 부수적으로 관제병이 여중생들을 뒤늦게 발견해 발생한 사고"라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미군 측 발표와 동일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8월 7일 법무부의 재판권 포기 요청을 미군 당국이 공식 거부했다. "의정부 검찰의 조사 결과도 기본적으로 우리 측의 조사 결과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운을 뗀 뒤 "동 사고가 공무 중에 일어난 사고이고, 이제껏 미국이 제1차적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즉시 보도자료를 내고 향후 대책을 발표했다. 9월 21일 미군은 사고 현장 인근에 추모비를 세우고, 유족들에게 각각 1억 9500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미군 장병들은 성금 2만 2000달러를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사건은 자연스레 정리되는 듯했다. 언론의 관심도 줄어들고, 국민 여론도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상징 'SOFA'
6·25 전쟁 이후 한국 정부는 북한의 군사 위협을 방어하기 위하여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미군은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계속 남한지역에 주둔하게 되었다. 더불어 한국에 주둔하게 된 미군의 법적 지위에 관한 양국의 합의가 필요했다.
미국의 부정적 태도와 협상 거부로 13년 만인 1966년 81차에 걸친 교섭 끝에 비로소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 체결될 수 있었다. SOFA는 본 협정문 외에 합의의사록, 합의양해사항, 형사 재판권에 관한 한국 외무장관과 주한미국대사 간의 교환서한의 세 가지 부속 문서로 구성되었다.
주한미군지위협정은 본협정문의 내용만 보면 일본과 독일과 비교해 불평등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합의의사록이나 양해사항 등의 부속 문서에는 독소조항들이 산재해 있다. 효순·미선 사건에서 특히나 문제가 되었던 조항은 형사 재판 관할권과 관련한 조항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 제22조는 재판권을 규정하고 있다. 재판권은 전속적 재판 관할권과 경합적 재판 관할권으로 구분된다. 먼저 전속적 관할권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협정문 제22조 제2항의 (나)목을 보면 '대한민국의 법령에 따라서는 처벌할 수 있으나 미국의 법령에 의해서는 처벌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전속적 관할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법에 규정된 범죄에 대해서만 대한민국이 전속적 재판 관할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부속 문서 전반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전속적 재판 관할권을 가질 때에도 미군 당국에 양보하거나 미군의 재판 관할권에 의해 대한민국의 재판 관할권이 제한되고 있다.

▲17일 오후 의정부역광장에서 열린 '고 심미선, 신효순 진상규명을 위한 청소년 행동의 날' 집회에 교복을 입은 채 참석한 고등학생들. 2002.7.17
오마이뉴스 권우성
다음으로 대부분의 사건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경합적 재판 관할권에 대한 규정이다. 협정문은 미군 상호 간에 일어난 범죄와 미군의 공무집행 중 일어난 범죄는 미군 당국이 재판권을 가지고, 그 밖의 경우는 대한민국이 재판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상 범죄에 미군이 재판관할권을 가지는 것은 군무가 가지는 은밀성과 독자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수용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공무증명서의 발급 권한이 미군의 장성급 장교에게만 있으며, 우리 법원은 공무 판단에 관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공무증명서 발급에 대한민국 당국이 관여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유효성 여부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무 판단에 대해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결론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미군의 공무 판단에 대해 대한민국이 반증이나 이의를 제기해도 미군과 협의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해당 공무집행증명서의 공무증명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효순·미선 사건도 공무상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여 미군이 재판권을 행사했다.
협정문 제3항 (나)목은 '미군의 미군에 대한 범죄와 공무집행 중의 범죄 외에는 대한민국이 재판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합의의사록에는 '합중국 군 당국의 요청이 있으면 대한민국 당국이 재판권을 행사함이 특히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한민국의 재판 관할권 포기'가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재판권 행사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 자는 없다
한국 법무부의 재판권 포기 요청을 미군 당국이 공식 거부하면서 두 가해 군인에 대한 재판은 미군에서 담당하였다. 11월 18일에서 22일까지 동두천 캠프 케이시 내 군사 법정에서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에 대한 미 군사재판이 진행됐다. 20일과 22일 차례로 페르난도 니노와 마크 워커에게 무죄 평결이 내려졌다. 예상한 결과였다. 법정은 재판장에서부터 배심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현역 미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죄 평결이 발표되자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니노 병장은 웃는 얼굴로 부인과 포옹하고 변호인단과 악수를 하며 기뻐했다. 워커 병장은 무죄 평결이 발표된 직후 "아주 행복하다. 나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사고였다"라는 말을 남겼다. 두 미군은 무죄 평결을 받은 지 5일 만인 11월 27일 짤막한 사죄 성명을 발표하고 유유히 한국을 떠났다. 1심 판결에 대해 원고 측이 항소할 수 없도록 하는 미 군사법정의 규정에 따라 페르난도 니노와 마크 워커에게 더는 죄를 물을 수 없었다.
재판 결과를 계기로 SOFA의 불평등함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고, 그동안 사건에 무관심하던 이들까지 항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항의가 잇따르자 11월 27일 주한 미국대사는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의 간접적인 사과를 전했다.

▲14일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가 열린 광화문. 2002.12.14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전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미군 궤도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효순·미선양의 부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2002.12.28
주간사진공동취재단
한 누리꾼의 제안으로 11월 30일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촛불시위가 시작되었다. 날이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나 12월 7일에는 약 5만여 명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해방 이후 한번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 미 대사관 앞이 뚫린 것이다. 12월 14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도 항의의 물결은 이어졌다. 이날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SOFA 개정과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반미 여론이 전국민적으로 확산되자 12월 11일 한국과 미국의 외교·안보 당국자가 긴급하게 회동했으나 SOFA를 개정하지 못했고 조문 해석에 관하여 논의하는 것에 그쳤다. 12월 13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유감을 표시하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것으로 끝이었다.
14살이란 꽃다운 나이에 외국군의 거대한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은 효순과 미선의 죽음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국민이 눈을 뜨고, 촛불을 들어 SOFA 개정을 외치게 했다. 그러나 효순과 미선의 죽음은 당시 대선 정국을 달군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효순·미선이 세상을 떠난 뒤 달라진 것은 그들이 숨진 2차선 지방도로의 폭이 75cm 확장된 것과 붉은색 타일이 깔린 폭 1.5m짜리 인도가 생긴 것뿐이었다.
10대 소녀 두 명이 희생된 지 거의 20년이 돼 가지만 주한미군 범죄에 대한 처벌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이 땅에서 주한미군의 '매우 특별한 지위'는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 곽명섭, 'SOFA' 굴레를 벗어 던져야 국법이 산다, <부산일보>, 2020.7.16
▲13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서 고 신효순-심미선 15주기 추모행사를 앞두고 신효순 양 아버지 신현수씨가 추모비 앞에 서 있다. 2017.6.13
이희훈
글
- 최예지: 고려대학교 철학과 3학년 재학.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이것저것 열심히 도전하는 중이다.
- 안치용: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 사회책임과 지속가능성 의제화와 영화·문학·신학 공부가 관심사다. 바람저널리스트들과 '청죽통한사'를 함께 진행한다.
- 신다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졸업.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애정이 있지만 요즘은 특히 식물에 빠져 몬스테라 키우기에 열심이다. 글로써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기자 지망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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