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 쏟아져나온 신발한켤레에 삼천원씩 하는 신발이지만 제품의 홍수시대에 선택받는 것은 쉽지 않다.
최수경
나는 잘 입는가
나는 멋쟁이가 아니다. 몇 벌 없는 옷으로도 잘 매치해 입어내는 센스도 없다. 바쁘다 보니 쇼핑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오래 입다 보니 지루해 죽을 지경이다. 우연히 홈쇼핑이 권하는 대로 세 장짜리 옷을 주문한 적이 있다. 막상 입어보니 모델이 입었던 것과 다르게 평범했다. 게다가 내 체형과 안 맞아서 그냥 쌓아두고 있다. 디자인이 갖는 힘의 척도는 감각과 속도라는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여러 경로에서 다양한 옷 정보를 제공하는데도 나는 외면하는 건지 둔감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과연 나는 '잘 입는가'를 생각해 봤다.
얼마 전 연구실 책장이 하나 더 필요해 당근마켓에서 5천 원에 책장을 구입했다. 중고품치고는 거의 헐값이었기에 이후 당근마켓을 재미 삼아 보게 되었다. 집에 쌓아두자니 버거운 물건들의 교환 장소로 가히 최적이다. 일반적으로 장롱 속에서 3년간 안 입는 옷은 영원히 안 입는 옷이다. 비워야 미니멀 라이프가 된다. TV에서도 정리하기 프로그램이 인기다. 아파트 분리 수거장에 멀쩡한 옷들, 멀쩡한 가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사철이 시작되니 분리 수거 마당에 진을 치면 제법 건질 것이 많다.
처녀 때 비싸게 주고 산 옷, 애 키울 때 아이들 옷값에 치여 변변한 옷 한 벌 없을 때 마련한 옷, 심지어는 유행이 돌아오면 입어야지 하며 이십 년을 장롱에서 버틴 옷들도 있다. 사연이 있거나 아까워서 못 버리거나 살 빼서 입겠다고 버틴 멀쩡한 옷들이다. 결국 나이와 습관을 의식하고 그 옷 주인이 될 수 없음을 자각하는 날, 옷은 장롱을 떠난다. 긴 머리를 깎듯, 생머리를 파마하듯, 마음의 변화가 일어 결심을 하는 날이다.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당근마켓에 올렸다. 다시 시집 보내는 심정으로 잘 세탁해서. 삼천 원에 주인을 만난 옷들은 우리집 현관 앞을 떠났다. 아,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중고마트동네 중심으로 중고 구매 및 판매를 하는 앱.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수경
중고 의류 구입에 흥미를 갖고, 유행과는 관련 없이 옷을 소비하고 처분하는 일은 옷의 수명 주기를 늘리는 작은 실천이다. '낡고 오래된 제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 업사이클을 설명할 때 나오는 말이다. 중고 옷을 팔고 사서 입는 것이 재활용이라면, 못 입는 옷 자원에 미적인 창조성을 입혀 고부가가치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업사이클이다.
금속이나 플라스틱은 리사이클 과정에서 여러 혼합물질이 섞이면서 질 낮은 다운 사이클 물질이 된다. 첨가제가 들어가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그러나 옷 자원은 분해하는 과정 없이 다른 형태로 가공하는 업사이클로 그 자체가 환경의 가치를 함유하는 일이다.
▲청주새활용시민센터 전시품목. 헝겊으로 브로치를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다.
최수경
진짜 멋쟁이는 미적 욕구만을 만족하는 데 그치지 말아야 한다. 윤리적인 정당성과 환경보호, 인권보호라는 사회적 가치도 옷의 구매와 소비에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옷의 수명 주기를 늘리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나는 멋쟁인가? 나는 멋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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