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만년필은 펜촉이 종이에 닿기만 해도 술술 잘 나와야 합니다.
김덕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일정한 주기(週期)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사람은 일주일이 되면 생각나고,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던 사람은 일 년이 되면 만나야만 마음이 편해집니다. 우리가 지금 힘든 건 일 년에 몇 번씩 봐오던 얼굴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을 주고받는 것만 하겠습니까만, 차선책으로 목소리라도 자주 들려주세요. 그걸로 부족하다 싶으면 그저 짧은 몇 줄의 손글씨를 적어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활자화된 글씨는 정보를 전달할 뿐이지만, 손으로 쓴 글씨는 얼굴 못지않게 효과적으로 마음을 전달합니다. 메일로도, 문자메시지로도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다 싶을 땐, 종이를 펼치세요. 손에 잡히는 아무 펜이나 들고 몇 줄 써도 좋을 일입니다.
오늘 끝내지 못한 일은, 내일 마저 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적절한 때맞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말을 아껴야 할 때가 있고, 또 참는 게 미덕이 아닌 순간도 있습니다.
우리의 오늘이 어쩌면 쇠털같이 많은 날 중 하루일 수도 있지만, 인생은 짧습니다. 금쪽같이 귀한, 선물 같은 한때라 생각하세요. 누군가에게 모진 말을 하면 잠 못 드는 이는 결국 나고, 상황에 맞춰 배려하며 건넨 말 한 마디로 가장 큰 득을 보는 것도 언제나 내 쪽입니다.
적당한 거리만큼 적정한 온도도 중요합니다. 식은 설렁탕은 구수하기는커녕 비린 맛이 납니다. 아무리 겨울이라고 미지근한 냉면이 제맛일 리 없고, 차가워진 육개장이 참맛일 수 없습니다. 적절한 말과 글의 온도는 거리를 좁혀줍니다. 너무 춥거나 더운 날에도, 또 펜촉의 간격이 지나치게 좁거나 떨어져 있어도 제대로 쓰기 힘든 것처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온도와 거리는 다 비길 바 없이 중요합니다.
절기상 '입춘(立春)'이 벌써 지났습니다. 지금의 이 서늘함이 아직 한참 더 가겠지만, 또 어김없이 늦추위가 거르지 않고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봄이 어느새 가까이 왔다는 의미입니다. 시나브로 봄이 반듯하게 섰습니다. 이보다 더 펄떡펄떡 기운 나는 소식은 아직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 파이롯트(Pilot)
- 1918년 '나미키 료스케(Namiki Ryosuke)'에 의해 만들어진 필기구 제조사. 파카와 함께 70년대 국내 졸업식을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100년이 훌쩍 넘는 내력을 지닌 업체답게 가격대와 선택지가 다양한 모델들을 다수 보유한, 일본을 대표하는 문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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