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수술 후 강제전역 조치 된 변희수 전 육군 하사(전차조종수)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전역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우성
셋째로 육군은 변 하사의 심신 건강 상태가 전투력 상실 상태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인권위는 육군이 이러한 주장만 할 뿐 제대로 된 소명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세계 정신 보건 전문 기관들이 성별 불일치 상태를 정신 기능 장애로 보지 않고 있고, 여군들도 군 복무를 하는 상황에서 변 하사가 전투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구체적인 이유를 육군이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육군은 남북대치 상황과 군의 특수성 고려, 국민적 공감대 등 전투력 상실과는 무관한 소명만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가 허용되고 있고, 성확정 수술, 호르몬 치료, 성확정 수술에 따른 성형수술 비용까지 모두 의료 보험으로 처리해주고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군의 특수성을 전가의 보도로 삼아온 육군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인권위는 보직 조정, 영외 숙소 배정, 부대 배치 등의 애로점은 군이 인사 행정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전역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남군으로 입대해 여군으로 복무하면 힘들게 입대한 여군들에게 역차별이 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남군과 여군을 분리 운용하지 않고 성별 구분 없이 보직에 적합한 인원을 보임하고 있는 군의 현행 정책에 비추어 선발 과정이 구분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역 여군들에게 변 하사의 존재가 역차별을 일으킨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종합적으로 인권위는 국가가 군인의 직을 박탈하는 문제는 기본권인 직업의 자유 제한에 해당하며 헌법에 따라 그 제한은 구체적인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육군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단지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변 하사를 강제 전역시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인권위는 육군이 변 하사의 행복추구권, 직업 수행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법률 유보의 원칙(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과하는 사항은 반드시 국회의 의결을 거친 법률로써 규정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육군은 현행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인권위 권고를 무시하기로 했다. 결정문을 읽어보기는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트랜스젠더 군 복무 허용, 명확한 세계 표준
지난 1월 25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당시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2018년 미군 수뇌부는 의회에서 트랜스젠더 복무와 관련해 부대 결속 문제, 징계 문제, 사기 문제 등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언한 바 있고, 전직 의무감들이 트랜스젠더 군인이 비-트랜스젠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군에 적합하고, 이들을 군에서 제외할 의학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말한 바도 있다.
이스라엘·이란·미국·영국·독일·호주·캐나다·오스트리아·벨기에·볼리비아·브라질·덴마크·에스토니아·핀란드·아일랜드·네덜란드·뉴질랜드·노르웨이·스페인·스웨덴·태국 등의 나라는 이미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세계의 표준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명확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트랜스젠더를 장애로 규정하지 않는 국제 표준을 따라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군은 말 그대로 '아노미 상태'를 겪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수자의 존재를 상상조차 못 했던 군이 겪는 시행착오 단계인 것일까. 이 역시 변희수 하사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숱한 성소수자 장병들이 만들어온 균열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군이 우왕좌왕하는 동안에도 성소수자 장병들은 차별과 혐오의 총포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변 하사는 벌써 1년째 '부당 해고자'로 살아가고 있다. 시행착오와 변화의 노정으로 치부하기엔 소수자들이 감내하는 고통의 시간을 국가가 되돌려 책임질 방도가 없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들은 왜 이렇게 자기 삶을 실험하며 살아야 하는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트랜스젠더를 더 이상 장애로 보지 않기로 했다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역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허용할 수 있는 범주다. 우리나라에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금지하는 법문이 없다. 인권위가 뭐라 하건 일단 외면부터 할 것이 아니라, 법원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군 스스로 전향적 태도를 고민해 볼 시점이다. 트랜스젠더는 불시에 대한민국 육군을 침공한 외계인이 아니다. 지금껏 함께 잘 지내 온 '전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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