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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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 맞나?
그런데 이 시기의 박정희한테서는 '이 사람, 공산주의자 맞나?' 하는 의구심을 일으킬 만한 면모들도 관찰됐다. 1948년 12월 석방 당시 백선엽·김안일 등이 '진짜 공산당원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품은 것과 맥을 같이하는 장면들이 남로당 시기의 박정희에게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 장면 중 하나는 1948년 초부터 함께 생활한 이현란의 증언에 들어 있다. 육군 대위 시절의 박정희가 첫째 부인을 둔 상태에서 서울 용산관사에서 함께 생활한 이현란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원산에서 홀로 월남해 이화여대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공산당이 싫어 38선을 넘은 그는 남쪽에서 만난 군인마저 남로당원이라는 사실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박정희의 열렬한 구애에 마음이 움직여 함께 살게 됐는데, 알고 보니 이 남자도 공산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현란의 눈에는 공산주의자로 믿기지 않는 또 다른 모습들도 포착됐다. 훗날 나온 그의 증언이 위의 제139화에 이렇게 실려 있다.
"미스터 박은 방에 누워 책으로 얼굴을 덮고 연설을 하곤 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독재자이긴 하지만 영웅은 영웅이라고 하더군요. 나긴 난 사람이라고. 미스터 박은 그 사람은 국방장관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어요."
히틀러를 총통 감이 아닌 국방장관 감으로 낮춰서 보긴 했지만, 박정희는 머릿속에 히틀러를 떠올리면서 방바닥에 누워 연설을 하곤 했다. 남로당원이 제2차 세계대전 때 공산 진영의 적이었던 히틀러를 동경했던 것이다.
유사한 장면은 이한림의 눈에도 포착됐다. "나를 세뇌시키려고 한다면 앞으로 안 만나겠다"고 선언한 이한림을 데리고 박정희는 서울 남산으로 올라갔다. 위 제126화에 따르면, 남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중앙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자 박정희가 불쑥 입을 열었다.
'한림이, 이곳에 포를 설치하고 저 경무대 쪽을 포격하면 나폴레옹이 소요 진압사령관으로서 파리를 제압했던 것과 같이 경무대 장악은 문제없겠지?'
'정희야, 그런 농담 하지 마. 너는 농담이 지나칠 때가 있어.'
이한림은 박정희의 농담 같은 진담을 막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식민지 코르시카섬 출신으로 프랑스 최고지도자가 되고(A) 프랑스 혁명을 파괴하려는 보수파를 군사적으로 진압한 뒤 황제가 됐다(B). 신성로마제국과 러시아제국만이 황제 혹은 차르 칭호를 쓰고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제후국의 형식을 띠던 시절에 프랑스를 황제국으로 격상시킨 것은 프랑스 민족주의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었다(C).
나폴레옹을 동경하는 박정희의 마음속에서 A·B·C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했는지는 확단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폴레옹을 존경하는 모습이 공산주의자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로당으로 활동한 1946년 하반기부터 1948년 하반기까지의 박정희에게서는 이처럼 상호 모순되는 면모들이 함께 드러났다. 복수심을 품은 채 위험을 무릅쓰고 남로당 활동을 벌이는 모습, 방바닥에 누워 히틀러를 생각하면서 연설 연습을 하는 모습, 미군사령관 하지가 사는 경무대를 바라보며 나폴레옹 식의 포격과 점령전을 꿈꾸는 모습 등을 노출했다. 이런 모습들이 그에게서 노출됐기에, 백선엽과 김안일 등이 '진짜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처럼 내면적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정희가 오늘날에까지 보수세력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내홍도 여기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1주기 추도식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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