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8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민관 합동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11.18
연합뉴스
굳이 차이를 둔다면 자유무역협정(FTA)은 지역한계를 두지 않지만 블록경제는 규모가 커지는 대신 지리적 유사성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수출입 대상이 실물 거래이기 때문에 운송의 지리적 조건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역시 경제 블록을 우선적 목표로 하는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 출발한 것은 잘 알려진 일. 그 밖에 남미공동시장(MERCOSUR),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이 대표적 경제 블록의 예들이다.
물론 이들 간의 단일성과 응집성은 동일하지 않다. 유럽연합(더 정확히는 유로존)이 공동시장까지 성공한 가장 앞서나가는 경우라면, 남미공동시장은 내부의 자유무역 보장뿐 아니라 대외적 관세율까지 공동 대응하는 단계다. 그런가 하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아직 말 그대로 자유무역협정 단계, 즉 각종 무역장벽을 상호 해제해주는 단계에 와 있다.
이러한 경제 블록은 이중성을 갖는다. 역내 국가들 간에는 무역장벽을 없애고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만, 블록의 경계선 밖의 국가에 대해서는 차별대우를 함으로써 더 거시적 차원에서는 다시 폐쇄적 경제관계를 유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블록경제의 이중성 가운데 역내 원활한 자유무역에 더 무게중심을 두느냐 그렇지 않으면 대외적 폐쇄성에 상대적 무게 중심이 더 실리느냐, 혹은 적어도 일정한 폐쇄성의 의도적 목적이 내포돼 있느냐의 문제가 오늘날 대부분 블록경제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역내의 자유로운 상거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외부에서 관여할 이유가 없지만 외부를 배제, 차별하는 목적이 두드러진다면 외부의 입장에서는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주말 체결된 알셉협정에 대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0개 아세안(ASEAN) 회원국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필리핀)에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5개 나라가 합세해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인 만큼 그 규모와 영향력에 관심이 모아진다. 마지막까지 협상을 벌이다 합류를 거부한 인도까지 합하면 모두 16개국에 해당하는 대규모 자유무역 블록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대부분의 역외 외신들이 눈여겨 본 대목은 알셉협정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놓고 미국과 패권을 다투던 중국이 포함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듯 오바마 정부 당시의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결성에 정성을 들였다.
반면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즉 알셉협정으로 맞불을 놨고, 당시에는 티피피(TPP) 가입이냐 알셉 가입이냐 선택을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으로 극단화하는 언론들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미국은 돌연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고 티피피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이 빠진 티피피는 조타수가 빠진 선박이나 다름없었고, 유야무야될 수밖에 없었다.
흔히 티피피와 알셉을 대립관계로 보고 있지만 결정적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티피피에서 미국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미국이 참여하면 가능하고 불참하면 불가능한 협정이었다. 반면 알셉에서 중국의 정치적 지분은 티피비에서의 미국의 그것과 다르다.
알셉을 처음 주창한 곳은 아세안(ASEAN) 즉 동남아 국가연합이었고 일부 국내 언론이 선정적 보도를 하듯 중국이 일방적 주도하는 협력체가 아니다. 아세안(ASEAN)의 이니셔티브에 한중일이 합류하고 오세아니아의 두 국가가 합류해 완성시킨 것이 알셉협정이다. 심지어 알셉 협의 과정에서 중국이 발을 빼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일본이 주도를 하기도, 때로는 한국이 주도를 하기도 했다.
물론 알셉 내부의 경제규모 면에서 중국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중국이 참여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무게감에서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아세안(ASEAN) 국가 간의 응집력은 현재 유럽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가장 견고하다.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고, 문화적, 경제적 유대감이 탁월하다. 유럽연합에 이어 두 번째로 경제 공동체 구성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잠재적 성장 가능성도 높은 곳이다.
한국의 알셉협정 가입도 어떤 의미에서 중국보다 동남아 국가들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지금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현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신남방정책도 중국 편중화를 극복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알셉협정에 대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기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태국의 쭈린 부총리 겸 상무장관은 알셉협정을 "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의 주도로 이뤄진 가장 진보적 자유무역협정"으로 표현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도 16일 알셉협정을 "아세안이 주도하고 일본, 한국 등을 포함한 15개국"으로 표현했다.
미-중 갈등 속 아세안 국가들의 미래
그럼에도 이들 아세안 국가들의 미래는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는 미중 갈등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입지를 유지 또는 넓히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 체제 하의 4년 간 미국은 여러 가지 의미로 아태지역의 주도권을 많이 놓쳤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잘못된 무역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을 쥐었으나, 최근 2년 사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취한 실리는 별로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들어 설사 티피피를 재건한다고 해도 이 지역에서 가졌던 미국의 목소리를 그들은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트럼프 재임 기간 미국이 놓친 것이 너무 많다. 독일의 일간지 <타게스차이퉁(Die Tageszeitung)>은 알셉협정이 세계질서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독일 일간지 <타게스차이퉁>(Die Tageszeitung)은 알셉협정이 세계질서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타게스차이퉁
그 이유로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일탈을 들었다. 그리고 코로나19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적 대응을 들었다. 알셉협정은 앞으로 광범위한 효과를 낳는 역동성을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망하고 있다.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인지는 모르나 이 신문은 한중일 세 나라 역시 알셉협정을 통해 역사적 갈등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분명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아시아는 그 이전과 다를 것이다. 다만 넘어야할 산이 여전히 많다.
앞서 알셉협정이 8년 만에 타결됐다는 것은 상당히 빠른 진전이라는 평가를 해 두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는 전제도 함께. 알셉협정의 세부내용을 들여다보면 타 지역의 자유무역협정에 비해 느슨한 내용이 여전히 많다.
유럽과 북미지역의 수준까지 협상될 수 없는 영역들을 알셉협정에서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빼버린 경우들이 많다. 민감한 부분은 여전히 덮어 두었다는 뜻이다. 특히 노동과 환경 문제에 관련된 부분들이 그렇다. 이러한 현실은 자유무역의 이상에 걸맞지 않은 현실이 여전히 아시아 지역에는 많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아시아는 당연히 그 이전과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속도가 아닌 디테일을 생각해볼 때다. 인권과 민주주의 없는 경제발전은 목줄 달린 강아지의 질주일 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