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GDP 대비 토지가액 배율의 국제 비교. 자료: https://stats.oecd.org의 관련 통계로 작성. 한국, 일본의 일부 통계는 이진수(2018), '주요 국가별 토지가격 장기 추이 비교'; 조태형 외(2015), '우리나라의 토지자산 장기 시계열 추정'; 통계청·한국은행(2020), '2019년 국민대차대조표'에서 구득.
전강수
4.6이라는 값은 2000년대 들어 최고치였던 2007년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발생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초래한 결과다. 한국의 GDP 대비 토지 자산의 배율은 영국의 1.5배, 독일의 2.9배 수준이고, 인구밀도가 한국과 비슷한 네덜란드의 2.4배 수준이다. 핀란드, 멕시코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은 핀란드의 5배, 멕시코의 15배 수준이다.
게다가 2018년 국가 전체 비금융 자산, 즉 실물 자산에서 토지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54.6%로 통계 파악이 가능한 13개국 가운데 영국(57%)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플로우(flow) 대비로 봐도, 스톡(stock) 대비로 봐도 한국의 땅값은 분명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GDP는 일정 기간에 측정 가능한 플로우 경제변수이고, 자산은 특정 시점에 측정 가능한 스톡 경제변수이다).
한국의 땅값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GDP 대비 토지 자산의 배율이 5를 넘어 6에 육박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1]에서는 2000년경까지 일본이 한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다가 2000년대 들어서 전혀 다른 추세를 보이는 점이 주목된다.
현재 한국의 GDP 대비 토지 자산의 배율은 일본의 2배 수준이다. 일본의 지가가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지금까지 무려 30년 동안 계속 하락해서 생긴 일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한국의 땅값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분별한 도시개발, '평등지권 사회'의 붕괴
우선 생각나는 이유는 공업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도시 개발이 자행되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실현된 평등지권 사회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세계은행이 발간한 한 보고서(Land Policies for Growth and Poverty Reduction)에 따르면, 1960년 무렵 대한민국은 대만, 일본과 함께 전 세계에서 토지 소유 분포가 가장 평등한 나라에 속했다. 1950년에 단행된 농지 개혁으로 일제 강점기에 지주층에게 편중되었던 토지 소유가 단기간에 평등해졌고, 그 덕분에 소수의 대지주가 지배하던 '지주의 나라'가 한순간에 소규모 자영농이 편만(遍滿)한 평등지권 사회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 부동산 불패 신화나 토지 신화 따위의 망국적 신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농민들은 열심히 농사 지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기에 바빴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은 미지의 분야에 뛰어들어 대담하게 기업을 일으켰다. 주부들은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을 아껴서 열심히 저축하고 모은 돈으로 집을 마련했다. 이때에는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은 소수였고, 땀과 절제를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땀이 대우받던 활력 넘치는 사회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조금씩 변질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이 서울 강남 지역을 필두로 전국 곳곳에서 무분별한 개발을 추진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박 정권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구획정리 사업을 전개하면서도 개발 과정에 수반되기 마련인 지가 상승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도 세우지 않았다. 강남 개발의 경우 그 배경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부지 확보라든지 토지 투기를 이용한 정치 자금 마련이라는 동기가 작용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과 유사한 방식으로 농지 개혁을 성공시킨 대만이 1950년대 초부터 도시 지가 상승에 대비해 확실한 대책을 수립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한강 연안에서 추진된 공유수면 매립 사업은 반포, 압구정동, 잠실 등 곳곳에 집단 택지를 제공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의 단초를 제공했다.
무분별한 개발의 결과는 지가 폭등이었다. 개발 예정지 언저리에 땅을 사두기만 하면 짧은 기간에 '떼돈'을 벌었다. 권력자나 그 지인 등 개발 정보에 밝은 민첩한 사람들이 대거 토지 시장에 모여들었다. 온갖 불법과 편법이 난무했고 개발 지역 주변에서는 불로소득의 향연이 벌어졌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걸쳐서 일어난 일이다. 땅값뿐만 아니라 아파트값도 덩달아 폭등했다.
소수의 민첩한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점차 보통 사람들까지 부동산 시장을 넘보기 시작했다. 굳이 땀 흘려 일하고 오랜 세월 절제해서 목돈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땀이 대우받던 건강한 사회가 땅과 부동산을 최고로 여기는 '부동산 공화국'으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냉·열탕식 부동산 정책이 조성한 '내성'
몇몇 정부를 제외하면 역대 정부는 한국이 부동산 공화국으로 전락하는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기껏 한다는 것이 냉·열탕식 부동산 정책이었다. 종래에는 역대 정부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을 두고 냉·온탕식이라 표현했으나 그 정도로는 부족한 듯해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봤다.
역대 여러 정부는 부동산 투기가 발생하면 사후약방문식으로 규제 대책을 쏟아내다가, 경기가 침체하는 조짐이 보이면 기존의 규제 대책을 모조리 철폐하고 부동산을 경기 부양의 불쏘시개로 활용하곤 했다.
냉·열탕식 부동산 정책이 반복되는 사이에 시장 참가자들의 마음에 일종의 내성이 생겼다. 일시적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이 강화되더라도 조금만 견디면 다시 부양 정책이 시행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예외였지만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김대중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는 모두 이런 믿음에 충실히 부응했다. 부동산 공화국은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무시당한 최선의 부동산 정책
부동산 투기는 불로소득이 따르기 때문에 생긴다. 이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는 데 최선의 방책은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를 이야기할 때 흔히 양도소득세를 떠올리지만, 그것은 매물 잠김 효과와 조세전가와 같은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크다.
반면, 부동산 보유세는 지대를 환수하고 지가를 안정시켜 불로소득을 감소시킨다. 다른 말로 하면, 부동산 보유비용을 무겁게 만들어 투기적 보유의 동기를 줄인다. 그런데 한국은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부동산 보유세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
지금까지 노태우 정부가 종합토지세를 도입하고, 노무현 정부가 과표 현실화 정책과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없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부동산 보유세는 미약한 상태다. [그림 2]는 2017년 기준 OECD 16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보유세액/부동산 가액)을 그린 것인데, 한국은 0.1%대로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등과 함께 하위 국가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