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고 있는 양말씨(오른쪽).
재단법인 와글
- 안녕하세요?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되죠? 양말님? 양말 활동가님?
"네, 양말님... 대개 그렇게 불려요."
- 양말이 무슨 뜻이에요? 그냥 발에 신는 양말?
"저도 이거 엄청 후회하고 있는데요. (웃음) 아, 좀 본새 나는 이름을 지었어야 했는데 얼떨결에 만들어서... 처음에 '아수나로'란 청소년운동단체 가입할 때 불리고 싶은 이름을 적으라길래 별생각 없이 '양말'이라고 적었는데, 그 이름이 이렇게 계속 불리게 될 줄 몰랐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사람들이 좀 있어 보이는 이유를 갖다 붙이라고 하던데, '발마저도 포근히 감쌀 수 있는'? 하하하, 근데 그게 더 이상하잖아요."
- 어쨌든 기억하긴 좋아요. (웃음) 올해 만18세로 유권자가 되셨죠?
"네. 2002년 2월생이에요. 청소년참정권운동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지난번(2016년) 지방선거 때는 농성까지 해도 안 됐어요. 이번엔 될까, 안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진짜로 통과되었다고 하니까 얼떨떨하면서도 기뻤어요. 이번 18살 생일파티도 친구들이랑 성대하게 했어요. (웃음)"
- 탈학교 청소년활동가라고 알고 있어요. 언제 학교를 그만두셨어요?
"2018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4월에 자퇴했고요, 1년 있다가 복학했는데 다시 자퇴했어요. 1학년 1학기를 다 마치지 못했죠."
- 그럼 공식 학력이 중졸?
"중졸이죠. 이번 5월에 검정고시를 보려고요. 중졸로도 먹고 살 수만 있으면 그냥 살아도 상관 없겠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편의점 알바도 '연령 불문, 학력 불문, 고졸 이상' 구한다고 나와요. 그게 무슨 학력 불문이에요?"
- 그러게요. (웃음) 탈학교 청소년에 대해서 일반인이 가지는 선입관이 있어요. 탈학교 청소년을 비행청소년과 비슷한 범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학교를 왜 그만뒀냐는 질문을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데, 사람들은 제 사생활을 너무 궁금해 해요. 솔직히 학교생활이 별 의미 없고 재미 없었단 것 말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자꾸 물으니까 저도 뭔가 이유를 갖다 대야 할 것 같잖아요.
설명하기 귀찮아서 '학교생활이 잘 맞지 않아서요'라고 얘길 하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구나' 하고, '대인관계가 좀 피곤해서요' 하면 '아, 친구 없었구나' 해요. '학업이 힘들어서요' 하면 '아, 쟤 공부 못했구나' 하고, '저, 정시 준비하려고요' 하면 '쟤 진짜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려고 나왔구나' 하죠.
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자꾸 뭔가를 덧붙여서 생각해요. 탈학교 청소년에 대한 진실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진실이에요. 뭘 자꾸 덧붙여서 생각하지만 않으면 돼요."
- 대학은 갈 거예요?
"올해 경험 삼아 한번 보고 내년에 다시 수능 보려고요."
- 고등학교 자퇴한 사람이 대학엔 왜 가요?
"네?"
양말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나를 바라봤다.
- 제 질문이 이상한가요?
"고등학교 자퇴한 거랑 대학 안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고등학교는 재미 없어서 자퇴했고, 대학교는 재미 있을 것 같아서요. 재미 없어도 학사 따놓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예전에 열심히 공부한 게 아깝기도 하고요."
그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성적과 학력에 목을 매진 않지만, '필요하면 갈 수도 있지, 학교 들어가고 말고가 뭐 그리 대수냐?'는 투였다. 중학교 때까지 그는 "두꺼운 안경 쓰고 립스틱 한번 발라보지 않은" 모범생이었다고 했다. 소위 강남 8학군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성적도 좋은 편이어서 주변에선 특목고를 가라고 권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대로 고등학교는 대안학교를 선택했지만, 그마저도 그가 기대하던 학교는 아니었다.
- 성적 좋은 모범생으로 지냈다면서 학교에 대해서 내심 불만이 많았나 봐요.
"중2 때부턴가, 학교 교칙이 너무 싫었어요. 무릎 밑으로 치마를 내려야 하고, 머리는 파마도 염색도 안 되는데 검은색 염색은 괜찮고. 학교 가면 선도부가 두 줄로 쫙 서서 훑어보고. 선생님들은 차별하지 않는다면서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기회를 편파적으로 줬지요.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중3 말에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어요."
- 어떤 대자보요?
"선생님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 있어요. '홍석천은 나쁜 사람이다', '남자 선생님 앞에서는 브라가 비치지 않는 옷을 입어라' 같은 얘기들에 너무 화가 났는데, 어차피 졸업도 얼마 안 남았겠다, 사람들한테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이게 잘못된 거였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느끼게 하고 싶었죠."
교실의 정치화가 뭐 어때서요?
2016년 말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양말은 중2였다. 그가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의 회원이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서로 다른 배경,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섞여 있었지만 언니, 오빠 호칭을 쓰지 않으면서 누구든 수평적으로 대하는 문화가 퍽 인상적이었다. 2017년 9월, 촛불청소년과 여러 인권단체들이 모여 '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양말도 청소년참정권운동에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 청소년참정권운동에 뛰어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로 했다가 취소된 사례들이 많아요. 발의는 됐지만 부결된 경우도 있고 발의하기로 했다가 흐지부지 무산된 경우도 있고요. 제 동료활동가는 '청소년은 표가 안 돼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대요. 우리가 참정권이 없으니 굉장히 무력해지더라고요."
- 이제 18세 참정권이 보장되었으니 목표를 이룬 건가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들여다보면 투표 연령이 한 살 낮춰진 것 말곤 변한 게 없어요. 정당 가입도 안 되고, 선거운동하면 교실이 정치판 된다고 교실에서 못하게 하고. 청소년참정권을 위해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 예를 들면?
"정당 가입 연령 폐지요. 피선거권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보고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나이를 25살 이상으로 규정한 것도 무척 애매한 것 같아요. 그만한 나이면 어느 정도 경험이 쌓였을 거라는 가정인데, 경험이 많다고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그 반대 경우도 많고요. 선거권하고 피선거권은 같은 연령으로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청소년참정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있죠. 교실이 정치화되면 안 된다든가...
"탈학교 청소년은 애초부터 배제하고, 교실이 정치화되면 안 된다고 난리예요. 얘들은 미숙해서 부모 따라 투표할 거다. 제 인터뷰에 달리는 댓글들 보면 저런 똑똑한 친구는 투표권 줘도 되는데 보통 애들은 안 돼... 이런 의견도 있고."
- 그런 주장이 왜 문제죠?
"교실의 정치화라는 말 자체가 청소년을 기만하는 용어예요. 탄핵 시국에도 청소년들이 열심히 촛불 들고 함께 했단 말이에요. 청소년, 학생들도 다 정치적인 존재예요. 그런 맥락 싹 지워버리고, 50년 뒤에 책을 봤는데 '2019년 12월 27일 패스트트랙이 통과된 이후 청소년들이 정치를 시작했다' 이렇게 기록되면 어떻게 해요? (웃음) 우리한텐 더 정치적일 수 있는 장이 필요해요. 학교 허락 없이는 대자보도 못 붙이게 하고 암암리에 탄압하는데, 우리가 좀 더 나대고 설칠 수 있는 공간, 문제가 있으면 공론화하고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해요. 교실의 정치화, 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