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만 해도 재택근무가 이렇게 확 늘어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 했다.
연합뉴스
셋째,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시작된, 아마도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줄 만한 변화 하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했던 말 속에 있다. "'아파도 나와야 한다'는 문화를 '아프면 쉰다'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조금 더 확대해서 말해본다면 '쉬고 싶으면 쉰다'고 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그동안 한국사람들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진 것처럼, 초·중·고등학교를 거쳐서, 혹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내내 쉬지 않고 쭉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려 살아왔다. 그것도 졸업 전에 취업을 해야지 졸업 후 약간이라도 공백이 있으면 경쟁력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렇게 공백이 없는 사람에게만 안정적인 직장에 정규직으로 들어갈 기회가 약간 열리고, 나머지에게는 열악한 일자리로 가는 길만 허락된다. 또 그 좁은 기회를 통해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조차 어떤 이유로든 그 경로에서 이탈했다가는 바로 그 열악한 일자리로 가는 길로 안내된다. 대체로 출산과 육아를 거치는 여성들이 이 경로를 따르지만, 남자라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리는 동안에는 '아프지도 지치지도 않는' 초인이어야 한다. 본인이 아플 겨를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가족이 아플 때도 쉴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간절하게 보고 싶어 하고 돌봄을 필요로 할 때도 가지 못 하는 경험은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불행한 이유 중에 하나는 틀림없이 여기에 있다.
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모두가 '쉬지 않고 달리며' 살아야 하는지를 이번 기회에 돌아봤으면 좋겠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기 전까지 사이에 공백이 있으면 왜 안 되는 것일까? 그런 사람을 면접 보면서 "왜 아직까지 취업을 못 했다고 생각하세요?" 같은 질문만 하지 말고, "그 기간 동안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나요?"라고 질문하면 왜 안될까?
출산, 육아, 가족 돌봄, 혹은 자기 자신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서 일정 기간 일을 쉰 사람이라고 해도, 딱 그 만큼의 경력만 손해볼 뿐 나머지는 똑같은 조건에서 다시 일 하면 왜 안될까? 아이를 키우면서 한 경험이 일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또 직장을 그만두고 일정 기간 여행을 하거나 휴식을 취한 뒤에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 사람을 '더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봐줄 수는 없을까?
그런 흐름이 조금씩 생기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전 국민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재택근무도 해보고, 일을 쉬어보기도 하면서 공통의 경험이 생긴다면 더 빨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일주일에 이틀만 사무실에 나가면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이런 얘기를 듣고 신기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재택근무 하면 어떨지 한 번만 체험해 보고 싶다면서 부러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이렇게 재택근무 경험자가 확 늘어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 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재택근무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느 언론에서 다룬 사례를 보니, 사무실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는 여유로운 편이었는데, 집에서 단 한 시간 안에 스스로 밥상을 차려서 먹고 치우기까지 하려니 더 빠듯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는 자녀들을 돌보기도 해야 하는데, 업무를 계속 하는지 아닌지 관리자가 원격으로 계속 체크를 하기 때문에 괴롭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례적인 상황에서 준비 없이 재택근무를 경험하다보니 조직도 개인도 혼란을 겪는 중인 것이다. 그동안 재택근무, 원격근무 등에 대한 필요가 커지고 확대돼온 것은 일 하는 사람에게 좀 더 '자유'를 주기 위한 취지였다. 각자가 업무를 재량껏 조율하면서 할 수 있는 직군에서 이런 제도가 더 빨리 도입돼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저 월급 받고 하는 일이란 지정된 장소에서 상급자의 감시와 통제 하에서 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람들로 이뤄진 조직에는 이런 제도가 도입될 이유도 없고, 도입된다 하더라도 잘 유지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기왕 재택근무의 실험을 한다면 '일 하는 개인에게 좀 더 자유를 줘도 된다'는 것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유가 있을 때, 자기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을때, 자기 삶에 만족하고 있을 때, 더 일을 잘 할 수 있는 존재다.
그에 대한 믿음이 있고, 좀 더 자율성을 줘도 책임 있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더 성과가 나올 수 있다. 기업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노동생산성' 제고도 이뤄질 수 있다. 이것이 단위 생산량 대비 노동자 수를 줄임으로써 높이는 방법 말고 진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비록 코로나19는 폭탄처럼 떨어졌지만
이렇게 돌아보면 이 변화들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비록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폭탄처럼 떨어졌지만, 그로 인해서 사회가 뒤집어졌다기보다는 땅 밑에 차근차근 쌓여오던 작은 변화들이 이런 큰 충격을 계기로 쑥 지표를 뚫고 올라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이런 생각, 이런 열망이 자라왔던 것이다. 노동자는 단지 경제를 구성하는 한 단위로 필요에 따라 줄였다 늘였다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 하는 우리 모두를 의미한다. 그리고 일 하는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시민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삶도, 가족들도 더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일에 대해 좀 더 자율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일과 삶을 잘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프면 아무 변명도 핑계도 없이 당당하게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교훈을 제대로 남길 수 있다면, 한국이 정말 선진국들보다 앞서서 해법을 찾아가는 선망국(先亡國), 아니 선망국(羨望國)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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