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6월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영화 <옥자> 기자회견에서 배우 변희봉, 틸다 스윈튼, 안서현, 스티븐 영,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다니엘 헨셜과 봉준호 감독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옥자>는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난 거대한 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미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정민
<기생충> 인터뷰 당시 봉준호는 "<설국열차> 때 반농담으로 국내 스태프들에게 욕을 좀 먹었다"고 털어놨다. 한국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약 80억 원)를 훌쩍 뛰어넘는 거액이 투자되는 바람에, 다른 영화들의 제작이 미뤄지거나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감독 입장에선 돈을 대주는 주체가 누구든 잘 받아서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이 무렵부터 봉준호는 국내 영화 산업과 해외 영화 제작 시스템의 차이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기생충> 기획 때 중요했던 요소 중 하나로 "내 손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예산 규모"를 꼽았을 정도니 말이다.
<설국열차>와 <옥자> 등 글로벌 프로젝트를 경험한 그는 자신이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예산 규모를 <기생충>에 적용한 셈이다.
<옥자> 때 또 하나의 일화. 취재진을 만난 봉준호는 또 다른 넷플릭스 콘텐츠를 즐기는지 묻는 물음에 "사실 TV시리즈를 잘 보지 않는다"며 솔직하게 답했다. 오히려 그는 "넷플릭스에 스탠리 큐브릭(봉준호가 존경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의 모든 작품이 다 올라와 있더라, 4K 화질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박정범 감독의 <산다>가 넷플릭스에 있어서 봤는데 정말 재밌게 봤다, 인디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으로 국내외의 기대를 모은 뒤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으로 떠들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로컬 행사잖나"라며 적절히 풍자한 건 그가 외형의 성과보단 영화의 본질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0년 전 상업영화 데뷔를 앞둔 풋내기 봉준호와 지금의 봉준호가 연결돼 보이지 않는가. 거대 글로벌 프로젝트를 두루 경험하면서도 그는 꿈의 원천인 고전 영화와 한국 독립영화를 향한 애정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영화 산업의 규모까지 고민하면서도, 사회 구조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봉은 변하지 않았다 ③] 그가 사람을 대하는 법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동료를 대하는 봉준호의 애정과 염치다. 그가 출연진을 캐스팅할 때 해당 배우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다는 건 이제 유명한 이야기가 됐다. 송강호가 무명시절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 '언젠가 꼭 함께 하고 싶다'는 삐삐 메시지를 남긴 것, <옥자> 때 제이크 질렌할을 섭외하는 자리에서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이 애정하는 본인 출연작)를 언급하며 배우를 놀라게 한 일은 봉준호라는 사람을 잘 드러내는 일화들이다.
데뷔작을 찍을 때는 출연을 주저하던 변희봉을 설득하기 위해 변희봉의 필모그래피를 줄줄 외웠다. 그보다 훨씬 앞서 가난한 학부생 시절 <백색인>을 찍을 때는 주연 김뢰하에게 아버지 와이셔츠 상품권을 빼돌려 출연료로 지급한 일화도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봉준호를 만든 요소라고 생각한다.
▲아카데미상 수상 발표후 기뻐하는 봉준호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지난 92회 오스카상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봉준호였다. 국제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그리고 최고상인 작품상까지 받았다. 한국영화 101년 역사상 최초 오스카상이면서 92년 오스카 역사상 최초의 비영어권 영화의 작품상 수상이다.
이 와중에도 봉준호는 수상 소감을 발표하며 같이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 타란티노를 언급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남긴 마틴을 존경한다고, 미국인들이 한국 영화를 잘 모를 때부터 자신의 작품을 언급해준 쿠엔틴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영화를 처음 꿈꿨던 그 시절의 기억을 나눴다. 봉준호다운 모습이다.
그렇기에 봉준호는 변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생물학적으로는 나이가 들었을지언정 영화적으로 그는 변화가 아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달라진 건 그의 무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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