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 총리서리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 2002년 7월 30일 국회에서 여성계 인사들이 장 총리서리의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한 심재철 의원(왼쪽)에게 항의하자 심 의원이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2002년 7월 10일 오후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대안신당 의원)은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만나 총리를 맡아달라고 통사정했다. 그의 구상대로라면, 장 총장은 헌정 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로 자리매김될 터였다.
그러나 임명되자마자 아들의 미국 국적, 학력 허위기재 논란, 아파트 불법 증축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등 각종 도덕성 시비가 일기 시작하며 청문회는 전쟁터가 됐다. 국회 인준안 투표 결과는 찬성 100표, 반대 142표, 기권 1표, 무효 1표. 민주당 115표도 다 모으지 못한 여당의 참패였다.
'여성 총리' 카드가 실패하자 이번엔 매일경제신문 사장 장대환이라는 50세의 언론인 카드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장 후보자 또한 10여 건의 부동산 투기와 자녀의 위장전입, 부인의 임대소득 탈루 등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의혹 백화점'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인준안 표결 결과는 찬성 112표, 반대 151표, 기권 3표로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기에는 부족했다.
총리를 정하지 못하고 청문회 정국이 석 달가량 이어지면서 여당은 "야당의 일당 독재가 국정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야당은 "비리 공직자를 두고 보란 말이냐"고 맞삿대질하는 '익숙한 풍경'이 이 무렵 생겼다.
최종 낙점자는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김석수씨. 청문회에서 삼성전자 사외이사 재직 시의 특혜분양과 부당이득, 잦은 해외여행 등이 입길에 올랐지만,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국회의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압도적인 찬성표(210명)를 받아 총리 공관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인사청문 대상 확대... 육탄 저지부터 자진 사퇴까지

▲취임 13일만에 사의를 표명한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2006년 8월 2일 낮 점심식사를 위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집무실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밝은 표정으로 답변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장관들까지 인사청문 대상이 확대되면서 정치권의 대치 전선은 깊고 넓어졌다. 2005년 들어서 이기준 교육부총리와 이헌재 경제부총리,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이 연달아 가족 문제와 비리 의혹으로 중도 사퇴하면서 '인사청문회 확대' 여론이 힘을 얻은 결과였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장을 받은 뒤에 불거진 '논문 표절' 논란으로 국회 교육위에 출석해 '2차 청문회'를 감수해야 했다. 김 부총리는 국회에 나와 자기 입장을 충분히 설명한 뒤 다음날 사직서를 던졌다.
재밌는 점은 10년 뒤 김 부총리가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되자 이번에는 민주당이 "탄핵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오기와 독선의 인사"라며 인사청문회 개최를 거부했다. 그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 서지 못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틀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2006년 11월 15일 오후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탐색전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잠시 들어와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6년 8월 12일 헌법재판소장에 내정된 전효숙 재판관은 청문회를 거친 후에도 한나라당의 육탄 저지로 인준안 표결 자체를 못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그의 지명을 철회했다.
뒤바뀐 공수
2007년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공수의 칼날도 뒤바뀌었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으로 부름을 받은 남주홍(통일장관), 이춘호(여성장관), 박은경(환경장관)씨는 청문회에 서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법질서의 수호자' 검찰총장이 청문회 위증으로 사상 처음으로 낙마한 것도 이명박 정부에게 아픈 상처다. 2009년 7월 13일 인사청문회에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스폰서' 논란에 대해 "문제의 인물과 해외여행을 같이 간 적이 없다,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탔는지는 모르겠다"고 거짓말했다.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은 그의 사표를 두말없이 수리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2010년 8월 29일 오전 '총리 후보 사퇴'를 발표하기 위해 그동안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던 서울 광화문 한 오피스텔 현관에 도착한 뒤 대기중인 취재진앞에서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권우성
그러나 이듬해에도 '인사 참사'는 계속됐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참패의 충격을 딛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 대통령은 40대의 김태호를 국무총리로 내세운 개각을 단행했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관계를 부인하다가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오자 사퇴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도 부동산 투기 등의 도덕성 논란을 버티지 못하고 동반 사퇴했다.
▲2013년 3월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뒤로 국방위 회의실에 내걸린 '선진강군 국민과 함께' 문구가 보인다.
남소연
박근혜 정부(2013년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 2014년 김명수 교육부총리 후보자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문재인 정부(2017년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2019년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서도 청문회에서 불거진 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퇴한 공직자들이 연달아 나왔다.
공직자 낙마 사태가 되풀이될 때마다 여당에서는 "후보자 신상 문제는 비공개로, 정책은 공개 청문회로 분리개최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여당이 야당으로 처지가 바뀌면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간다. 권력을 빼앗긴 입장에서 권력을 겨누는 '예리한 칼'을 스스로 버리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공직후보자의 첫사랑 얘기나 미담 사례를 묻는 '훈훈한 청문회'는 당분간 2000년의 추억으로 묻어두어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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