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에 위치한 성수대교 참사 희생자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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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의 삼풍백화점 참사도 다르지 않다. 참사가 일어난 곳, 그곳에 참사의 기억과 추모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은 사고가 벌어진 곳에서 멀리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에 서 있다. 도보로 무려 1시간 20분 동안 걸어야 하는 거리다. 참사 현장과 추모의 자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나도 멀다. 그 머나먼 간격은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참사는 중심에서, 추모는 변방으로
언제부턴가 '서울'이라는 도시는 '브랜드'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 서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멋진 청사진을 내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공기관과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은 그러한 도시를 만드는 데 늘 앞장서 있다. 서울의 도심을 걷고 있노라면 '더 새롭게, 더 멋지게, 더 아름답게'라는 슬로건을 외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산책자'가 되길 추천해본다. 먼저 경제개발의 신화 앞에서 생명권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는 참사 현장과 그 참사를 기억하는 장소를 걸어보길 바란다. 삼풍백화점과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 사이, 도보 1시간 20분 거리의 5.1km 구간을 걸어본다면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어떤 것을 잊고 있는지 말이다.
슬프게도 서울에는 역사의 상처를 오롯이 담고 있는 공공미술작품이 아직까지 턱없이 부재하다. 한 도시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공공미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미술은 거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책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공공미술이 부족하다는 뜻은 우리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도시에 어떤 조형물을 세우는지는 곧 그 나라의 가치관과 상징성을 드러낸다.
사회적 참사는 늘 우리의 일상 속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늘 도시의 중심부에서 일어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공공미술 작품은 '사고현장'에서 멀리 떨어져있거나,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생명에 대한 문제임에도 도시의 상처는 늘 중심이 있질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난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벌어진 사건들, 도시의 상처는 오늘도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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