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 피난에 도움을 준 분들
한세웅
건물의 창문틀은 떨어져 나갈 것 같고 건물 안에는 청룡사라는 절로 이용되었을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었는데, 이후 삼림 관리를 위한 관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잠시 작은 묵념을 하고 당시 광복군들의 군가를 힘차게 불렀다. 그 시간까지 한 7분 지났을까? 7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탐방단 전원이 여기저기서 고통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산모기들의 식사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탐방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탄 뒤 여기저기서 모기약을 온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나도 간지럽고 고통스러운 마음에 모기약을 손에 쥐었지만, 이내 약을 뒤로 전달했다. 당시 이름 모를 중국의 산에서 모기에 뜯기며 고된 훈련을 받았을 청년들을 생각하니, 내 나약한 모습이 부끄러웠고 죄송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시간에 따른 청사 건물의 변화이다. 상해 청사의 경우는 월세로 거주하던 아주 작은 주택 같은 느낌이라면 항주에 있는 청사는 정부 건물이라는 느낌이 난다. 임정 요원들의 거주지 또한 마련되어 있어서 집단 거주도 가능했고, 가흥에 있는 김구 피난처 같은 경우에는 널찍한 강가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김구 선생의 침대 아래에 비밀통로가 있었다는 점이다. 비밀통로를 열고 아래로 내려가면 나룻배가 준비되어 있는데 그 배를 타고 언제든지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정부의 지원은 이전까지 체계적이지 못하고 침체되어 있던 임시정부에 활력을 부여했고, 광복까지 줄기찬 독립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는 연안 지방에 합류해 항일전쟁에 참전했고 임시정부의 대한 광복군은 미국의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와 합작하여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며 35년간의 독립운동은 끝이 나게 된다. 이 모든 결과는 이봉창의 의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들은 영웅이었지만 사람이었고, 평범했지만 비범한 삶을 살았다
역사 교사로 교단에 설 때면 난 알 수 없는 자부심에 도취되고는 한다. 지난 역사의 위대한 위인들이나 대중의 위대한 행동들을 말과 행동으로 전달하며 난 어느새 이순신 장군이 되거나, 용감한 의병이 되어 아이들에게 그들의 고민, 생각, 행동을 전달하는데,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전율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올 때 가끔 공허함이 몰아쳐온다. '나라면 과연 그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던 나 자신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때때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행동에 따르는 불이익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인물 그 자체에 대한 영웅화 혹은 신성화에 가까운 나의 수업과 인식이 인물에 대한 거리감을 가지게 만들었고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역사적 인물들을 신화 속 인물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탐방에서의 장면들이 생각난다. 몸 하나 제대로 세울 수 없던 상해 청사, 좁은 탁자, 채소장사를 위해 새벽에 일어났을 임정 요원들의 가족, 의거를 위해 걸어야 했던 수많은 인파 속 공원길, 암살단을 피해 숨어들었던 별장, 장개석과의 만남을 위해 한숨도 잘 수 없었던 호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에 만들어진 비밀통로, 광복 후 임정 요원들이 태극기에 새긴 소감 등등...
그들은 영웅이었지만 사람이었고, 평범했지만 비범한 삶을 살았다. 나는 역사교사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이번 탐방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평범한 인간은 어떻게 영웅이 되는가?' 이번 탐방으로 내가 얻은 궁극적인 의문이자 정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가르치는 평범한 나와 평범한 제자들이 비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가치 있는 질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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