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20년 후를 보려면 그 사회의 20대를 보면 된다. 사진은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청년들이 봉제장인들과 의상을 제작하고 있는 모습.
KT&G
[이전 칼럼]
'함정'에 빠진 세계 경제, 다음 쓰나미에 준비됐나
청년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회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는 쓰나미에 대한 대비를 하려면 최소한 쓰나미가 어디에서 오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가 겪는 고통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만 가능하듯이 말이다. 즉 정부는 마음 착한 의사보다는 실력 있는 훌륭한 의사여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병이 무엇인지 진단하는 것이 이번 칼럼의 목적이 될 것이다.
우리 경제의 병을 진단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이 일본의 20대인 사토리(得道) 세대를 닮아가는 청년층의 아픔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는 (다수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산업화 모델의 수명이 소진된 반면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새로운 모델이 부재한 상황이 지속하는 데서 비롯하고 있다.
물이 계속 흘러야 하는데 물이 고인 연못과 같은 상황이 우리 경제와 비교할 수 있다. 새로운 기회를 기대할 수 없고 기존 자원은 이미 기성세대가 모두 장악한 상태에서 청년층은 질식사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고여 있는 연못에서는 부모의 위치를 물려받거나 부모의 지원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강이나 바다로 진출하는 것인데 이것은 대다수 청년들에게 '꿈'에 불과하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도 번 돈을 건물주(기성세대나 금수저)에게 갖다 바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대다수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청년층의 가장 큰 불만으로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는 배경이다.
한 사회의 20년 후 미래를 보려면 그 사회의 20대를 보라는 말이 있다. 20대가 어떤 꿈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그들이 40대가 되는 20년 후의 사회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경제의 현 상황은 불공정과 그와 맞물린 승자독식 구조로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무엇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으로 압축된다. 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까?
박정희 모델로 성장을 추구한 결과
산업화 시대의 목표는 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을 주도하는 산업생태계가 활력을 갖는 한 성장 과정에서 대다수 사람은 균등하지는 않아도 혜택을 입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선진국들은 중산층 사회를 만들어냈다. 우리 경제의 성장 방식은 선진국들과 두 가지 점에서 크게 차이를 갖는다.
첫째는 식민지형 '선택적 공업화' 방식에서 비롯한 서비스 부문의 구조적 취약성과 부품·소재·장비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제조 제품의 생산과정은 크게 제품의 개념설계 역량, 부품·소재·장비 기술, 제조 기술 등을 요구한다. 그런데 후발주자였던 우리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개념설계 역량이나 기초과학 연구의 뒷받침이 필요한 부품·소재·장비 기술의 확보 등은 선진국에 의존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제조 과정에 집중을 하였다.
기간별 성과를 중요시한 재벌 기업의 경영 방식이나 정부 정책 등으로 산업지식의 축적(산업 학습)에 필요한 프론티어 R&D의 지원이나 기능-기술 인력이 경험(암묵지)을 축적할 수 있는 인사승진-임금제도 등은 소홀히 취급되거나 외면되었다. 특히, 한미일 군사안보협력 체계를 위해 대미 수출과 연계된 일본의 부품·소재·장비에 대한 의존은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 및 일본에 대한 기술 종속성을 구조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기능-기술 인력의 경험(암묵지) 축적 실패의 결과는 자동화를 가장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 한국은 (노동력 1만명 당 로봇 도입 규모인) 로봇밀도가 세계 1위인 나라다. 이는 한국 노동자가 가진 숙련이 자동화에 취약한 단순 숙련임을 의미한다.
로봇 기술 및 산업이 발전한 독일, 미국 등이 자동화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이유는 이들 국가의 기능-기술 인력이 현재의 자동화 기술로 대체되기 어려운 노동력임을 의미한다. 향후 AI형 자동화로 인해 고용 대참사 및 그에 따른 초양극화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 혹은 한국 경제체제를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라고 일컫듯이 다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공업화 및 성장 과정은 어두운 면을 수반하였다. (국가 주도로 국가가 육성하려는 산업을 지원하는데 금융을 주요 수단으로 삼았던) '일본식 산업화 모델'을 모방한 박정희 모델에서 산업정책은 정경유착을 수반하였고,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던 금융의 배분을 산업정책 목표와 연결시킨 정책금융은 관치금융을 수반하였고, 그 결과 성장은 부패와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하였다.
대표적인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시키는 방식의 공업화였다. 불공정 시스템의 구조화는 민주주의 결손에서 비롯한 것이었고, 민주주의의 결손은 냉전체제의 희생물이었던 한반도 분단의 산물이었다. 즉 군부독재 체제와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유신체제('민주주의 살해')와 '재벌 중심 경제체제'는 쌍생아였던 것이다. 이처럼 박정희 체제가 권력의 정통성 결여를 물리력(신체적 폭력)과 금권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분단은 '한국식 경제력 집중'을 특징화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