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샹 위안소 마당의 박영심 할머니 동상
조종안
매년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김종훈 기자는 마당에 세워진 동상(박영심 할머니 임신한 모습)을 가리키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입니다"라며 "박영심 할머니가 북측 최초 증언자였다면 김학순 할머니는 91년에 남측 최초로 증언하신 분이죠, 그분들 증언이 위안소 복원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기록에 따르면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잘못된 위안부 관련 내용이 뉴스에 보도되는 걸 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8월 14일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국가기념일로 정해졌고, 정부는 해마다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두 번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던 지난 8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가 오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릴 수 있었던 것은 28년 전 오늘, 고 김학순 할머니의 피해 사실 첫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리지샹위안소 유적진열관에서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에는 게시물 1600여 점과 사진 680장이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몇 장의 사진과 자료만으로도 일본군이 중국에서 어떤 만행을 어떻게 저질렀는지 감지된다. 만주 하얼빈의 731부대 생체실험 전시장에서 봤던 참혹한 모습들이 시나브로 떠오르면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몸서리가 쳐진다.
군용임을 나타내는 '돌격 일번'과 별 마크가 선명한 콘돔도 보인다. 성병 치료제 연고인 성비고(星秘膏)와 위안부를 정기적으로 검사했던 산부인과용 시술 도구도 전시되고 있다. 일제가 위안소를 조직적으로 운영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일본군들이 위안소에 들어가기 전 콘돔과 연고를 지급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분노가 치솟는다.
무척 지치고 괴로워 보이는 모습의 위안부 네 명과 한 남자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역시 충격적이다. 신영전 교수(임정로드 탐방 단원)는 "이 사진 속 남자가 일본군, 혹은 일본 종군기자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며 내력을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이쪽 이 남자를 일본군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에요. 제가 일본사람들을 만나 이 사진을 보여주면 정색을 해요. 비참한 상황에서 웃고 있는데, 일본군이 아니라는 거죠. 여기(안내문)에 보면 일본군 위안소에서 네 명의 조선 위안부를 구출한 중국군이고, 배가 부른 여성이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돼 있어요. 만삭의 몸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오른쪽 첫 번째 분이 바로 박영심 할머니죠."
박영심 할머니가 온갖 능욕을 당하며 3년을 머물렀던 방으로 이동했다. 앳된 한 소녀가 성노예로 갇혀 있던 공간이다.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화장대, 주전자, 거울, 침상 등을 혼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들여다본다. '초개같은 목숨'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생명은 질긴 것. 차마 죽지 못해 하루하루 견뎌냈을 할머니 모습이 그려지면서 울컥해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낯익은 모습도 보인다. 이옥선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2015년 8월 군산 동국사 경내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 열네 살 때 심부름 다녀오다가 길에서 강제로 트럭에 태워져 만주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당했던 고초를 힘겹게 증언해서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이 할머니는 울먹이며 "일본은 열두세 살짜리 처녀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했으면서도 위안소가 없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태도 때문에 더 화가 나 명예회복과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나는 몇 번 도망쳤지만 금방 붙잡혔다. 그때마다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팔다리를 칼로 찌르기도 했다"라고 해서 행사장을 숙연하게 했다.
진열관을 나서려다가 '끝없이 흐르는 눈물'이란 이름이 붙은 한 할머니 조각상 앞에서 멈춘다. 조각상 아래에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 달라'는 문구와 함께 손수건이 놓여 있다. 밭고랑처럼 움푹 팬 주름살, 그 사이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당사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가 없어서일까.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아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김종훈 기자는 "중국 정부는 난징에 아시아 최대 규모 위안소를 개관했는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지켜줘야 할 박근혜 정부는 그해(2015) 12월 28일 일본으로부터 지원금 10억 엔(100억 원)을 받으면서 대단한 결단이라도 한 것처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위안부 협상 타결 발표로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라며 씁쓸해했다.
치미는 분노와 충격을 억제하며 힘겹게 돌아본 리지샹위안소 유적진열관, 일행은 더욱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라 조선혁명간부학교 훈련소였던 천녕사로 이동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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