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점에서유일라사에서 딸과 함께
박만순
2주 만에 풀려 난 유인수는 몸을 추스릴 새도 없이 양복점 문을 열었다. '유일라사'가 어떤 가게인가. 그가 양복기술을 배우기 위해 '청광사양복점'에 취업한 것이 17세 때였다. 한겨울에도 새벽 6시에 출근해, 숯불을 피우고, 작업준비를 했다.
시다부터 시작해 그가 직접 바느질로 바지를 만드는 데까지 3년이 걸렸다. 시다생활 3년 동안 그는 툭하면 선배 노동자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기술을 배워 언젠가는 독립하겠다는 꿈이 없었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차린 '유일라사'를 문 연 지 1년 만에 닫았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2주간 문을 닫았던 일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수군거림이 치명타였다. '저 놈아 알고 보니 불량배 였드라'라는 소문은 일파만파 번졌다.
가게를 정리하니 빚이 천만 원이나 되었다. 그 빚을 갚는 데 10년이 걸렸다. 빚 덩어리를 진 그는 여천공단 노가다 판에 뛰어들었다. 6년 전인 2013년까지 '아시바 기술자(비계공)'로 일했다.
유인수(74·전남 여수시 여서동)는 살아오면서 청소년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애비 없는 새X" "저놈의 XX자식" 하는 소리가 견딜 수 없었다. 여순사건으로 인해 아버지가 학살되지 않았다면 듣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그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것이 여순사건과 무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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