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 여순 사건 때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주민들
윤신영이 지서로 끌려간 지 며칠 후 집안에 또 사달이 났다. 이번에는 윤신영의 막냇동생 윤경영(1931년생)이 경찰에게 끌려간 것이다. 윤경영은 당시 순천농고 재학 중이었는데, 좌익 활동에 관여되었던 듯하다. 경찰들은 무슨 혐의를 잡았는지, 마치 중죄인을 체포한 듯 윤경영의 몸을 밧줄로 묶어 연행했다. 가족들이 울며불며 뒤따랐다.
경찰들은 이웃면인 전라남도 여천군 삼일면 중흥리에 있는 당산나무 아래에 소년티를 막 벗어난 윤경영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해"라는 소리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당시 집 나이로 18세인 그는 죽음을 앞두고 부모님 걱정만이 앞섰다.
지휘자의 명령으로 경찰들이 '무릎쏴' 자세로 조준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뛰어들었다. "이놈들아, 내 아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죽이려 드냐. 차라리 나를 죽여라." 뛰어든 이는 윤경영의 아버지 윤선관이었다. 윤선관의 절규는 이어졌다. "나도 같이 죽여라." 노인의 사정과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들의 총구에서는 불이 뿜었다.
"탕 탕 탕."
중흥마을 당산나무 아래에는 두 명의 생명이 고꾸라졌다. 아버지와 아들이 '빨갱이'라는 이름 아래 죽어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순천농고생 윤경영이 빨갱이라는 이름 아래 처형된 것이고, 윤선관은 그런 아들을 두었다는 죄로 처형된 것이다.
할머니의 유언
"니는 어느 파당(派黨)에도 가입하지 마라."
이 말을 하며 눈을 감은 이는 윤상수(77세, 전남 여수시 덕충동)의 할머니다. 1948년과 여순사건과 뒤이은 한국전쟁 난리 통에 남편 윤선관과 두 아들 신영, 경영을 잃은 여성의 한 맺힌 절규였다. 어떤 이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념이니 정당이니 하는 것에 진력이 난 그녀였다. 그러다보니 죽음을 앞두고 손자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도 위와 같았다.
▲증언자 윤상수
박만순
윤상수는 할머니의 유언을 80세를 가까이 둔 지금까지 착실히 지키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가진 직업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순천사범학교를 나온 그는 상암국민학교, 소라남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 여수 한려초등학교에서 정년퇴직했다. 학교 선생이다 보니 정당에 가입하기도 불가능했지만 이유가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의지만 있었으면 정년퇴직하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할머니의 유언이 현재까지도 '삶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버지와 삼촌, 할아버지가 이념의 파고에 휩쓸린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직후에 벌어진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윤상수 가족의 희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와중에 벌어진 국가폭력이 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난 3월 21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대법원에서 열린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의 재심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 참석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장 모씨 등 3명의 재심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 결정을 확정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