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재단과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공동조사한 2018년도 언론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37개국 중 꼴지였다.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8
'다시 태어나도 기자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나는 짙은 회의에 빠지면서 천직이라 여겼던 자긍심도, 열정도 크게 식어버렸음을 느낀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 비극적 죽음,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정치검찰과 언론이 저질렀던 죄악을 보면서 언론이 집단적으로 포악해진 모습을 목격했다. 그때 언론은 국민적 슬픔 앞에 잠시 참회하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의 생명과도 같은 믿음, 신뢰가 이렇게 사라진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심하게 오염된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무책임하고, 부끄러움 모르는, 심지어 난폭하기까지 한 오만한 '권력 집단'이 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공동 조사한 2018년도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37개국 중 꼴찌였다. 2017년 조사에서도 꼴찌였다. 이 조사에서 뉴스를 신뢰한다는 비율이 한국의 경우 2017년 23%, 2018년 25%에 지나지 않았다.
혹자는 사실보도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유신 독재, 군부 독재 시절의 한국 언론 신뢰도가 바닥이 아니었겠는가는 질문을 할지 모르겠다.
당시 언론의 암흑 상황은 독재 권력의 폭압이라는 외부요인이 결정적이었고, 언론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었다. 폭압의 권력이 무너지면 암흑의 세상은 햇볕 가득한 밝은 세상으로 바뀌고, 언론은 제 기능을 하리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었다.
지금 한국 언론의 상황은 다르다. 언론 내부의 적극적인 행위가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악취가 풍기는 오염된 언론 상황으로 만들었다.
생명과 영혼이 증발한 한국 언론
언론의 생명과 영혼이 증발해버린 황폐한 언론 토양. 그게 지금 한국 언론의 모습이다. 그 황폐해진 언론 토양에서 기자를 칭하는 '기레기'라는 치욕스러운 호칭은 이제 보통명사가 되었다.
증오와 저주의 마음이 없고서야 어찌 이런 기사와 칼럼, 사설이 가능할까 싶은 글들이 지면을 채운다. 때로 집단의 비이성적 분위기에 휘말리는 상황이 되면 팩트, 진실, 공정성, 정직성 등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라지고, 의혹만의 기사, 센세이셔널리즘의 어뷰징 기사들이 난무한다.
눈길 끌려고 '속보', '단독'의 이름을 마구 갖다 붙이는 행태는 오염된 황색 저널리즘의 또 다른 얼굴이다. 족벌언론 등 회사 단위의 언론 '조직'이 '회사 이익, 내부 방침'의 이름 아래 왜곡·편향을 강제하기도 한다.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은 그의 칼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에서 "기자들은 알권리·사실 보도 같은 가치와 회사 이익·내부 방침 같은 조직논리 중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5대 5?' '6대4?' '3대7?' 아, 비중으로 이야기하지 말자. 그러는 순간, 기자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죽는다"고 했다. 회사의 이익, 내부 방침 같은 '조직' 논리의 현실을 토로한 셈이다.
저질과 오염의 악취가 풍기는 종편, 케이블 채널의 생태계에서 그나마 상대적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어야 할 공영방송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너무 망가져 버렸고, 무섭게 바뀌어버린 방송환경, 언론환경에서 공룡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진입장벽 없이 누구나 '미디어'를 만들 수 있는, 그래서 아주 손쉽게 무제한의 '일방적 얘기'를 쏟아내는 디지털 시대의 SNS, 유튜브 등 '새 매체'에는 가짜뉴스, 왜곡, 혐오, 증오가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