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녕사 모습.
윤근혁
지금은 지름 1m 크기의 우물과 훈련터만이 전사들의 땀방울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 탐방단은 천녕사 앞마당에서 술잔을 올렸다. 손으로 직접 만든 무궁화도 여러 송이 꽂았다. 그러면서 그 시절 독립운동가들처럼 '압록강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 쳐 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등잔 밑에 우는 형제가 있다. 원수한테 밟힌 꽃포기 있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가자 조국에...."
탐방단은 지난 20일부터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일대를 돌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랐다. 윤봉길 의사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상하이 훙커우 공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독립지사들이 묻혔던 상하이 만국공묘, 주푸청 일가의 목숨을 건 도움으로 김구 선생이 피난할 수 있었던 매만가 76호와 재청별장 등을 탐방했다.
일제의 참상을 알 수 있는 난징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과 난징대도살기념관도 둘러봤다. 특히 교직원들은 리지샹 위안소 기념관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박영심 할머니 동상 앞에 모여 한 동안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1만5689명. 올해 8월 15일 현재, 우리 정부가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포상한 숫자다. 홍 실장에 따르면 이 가운데 6000여 명은 후손을 확인하지 못해 훈장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 사이엔 '3가지 각오'가 있었다. '매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가 그것이다. 실제로 이 같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 상당수는 후손을 이어갈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천녕사 가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먼저 안내판을 만들었던 우리 학생들이 바로 이들의 자랑스런 후손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 글로만 보다가 눈으로 직접 보니 몸이..."
▲중국 난징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 건물 앞에 세워진 박영심 할머니 동상 앞에서 한국 교직원들이 지난 23일 고개를 숙였다.
윤근혁
23일 오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교직원들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국가가 자기나라 사람을 지켜주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눈으로 똑똑히 봤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역사를 글로만 봐왔다. 눈으로 직접 경험해보니 몸으로 직접 느껴졌다.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진실된 마음으로 설명할 것을 다짐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되기 위해 싸우는 게(쟁두) 아니라 발이 되기 위해 싸워야(쟁족) 한다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임시정부기념관이 중국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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