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7 16:10최종 업데이트 19.08.27 16:10
사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 이후 사법개혁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독일 현지에서 약 1700km를 누비며 그 해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연속보도를 통해 '서초산성'이 되어버린 한국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남소연


"법관도 교사처럼 뽑아야 한다."

상상이 잘 안 된다. 법관을 교사처럼 임용한다? 하지만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를 강하게 피력했다. "교사 임용원칙과 같이 권역별로 법관을 임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수직적으로 관료화된 사법 시스템이 문제"라며 "그 폐해가 드러난 게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였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근본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라며 "일단 법관 인사 수요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대법원장의) 인사권 행사를 자제시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잦은 전보를 예로 들었다.
 
"지금은 법관 한 명당 평균 2년에 한 번씩 전국을 대상으로 전보가 이뤄진다. 전국 3000여 명 법관의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쥐고 있고, 그걸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주관한다. 고등법원 권역별로 권한을 나눠 인사 수요를 제한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부산고등법원 권역에서 법관을 임명토록 하고, 그렇게 임명된 법관은 그 권역에서 봉직하는 것이다. 타 권역으로의 전보는 예외적으로, 수요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법원행정처라는 단일 기구가 법관 3000여 명의 인사를 돌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이 교수 생각의 핵심은 '제왕'으로까지 불리는 대법원장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데 있다. 사실 권역별로 법관 인사를 운용하는 것은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독일 사법 시스템의 모델이기도 하다. 연방제 국가인 독일은 각 주별로 법관을 임용하고, 법관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전보가 금지돼 있다.

이 교수는 논문(<독일의 사법제도에 관한 소고 - 특히 법관인사 등 사법행정을 중심으로>)을 통해서도 이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논문에선 권역별로 법관 인사뿐만 아니라 "별도의 독립된 위원회와 각급 법원장이 법관인사와 예산 등 사법행정 전반을 담당하도록 해야 하며 (중략) 각급 법원장은 해당 법원 법관들의 선출 내지 선임법관들 중에서 호선으로 임명돼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우려

사실 권역별 법관 임용은 그 동안 여러 차례 논의돼 왔던 주제다. 우리도 임용까진 아니더라도 전보 시 한 권역에서만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지역법관제)를 운용했었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은 이른바 '허재호 황제노역 판결' 사건이 터지자 지역법관제를 폐지했다. 지역법관이 지역의 토착세력과 유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큰 파장이 일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조치로 지역법관제 폐지가 적절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한 현직 판사는 "이번 사법농단도 그렇고 그 동안 법원의 신뢰를 떨어뜨린 사건의 당사자를 보면 초임을 서울에서 시작한 엘리트 판사들이 훨씬 많다"라며 "지역법관 중에도 일부 문제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건데, 그에 대한 조치가 지역법관제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라니 납득하기 어려웠다"라고 귀띔했다.

어쨌든 권역별로 법관 인사를 운용하는 것과 관련해선 주로 두 가지 우려가 거론된다. 하나는 법관이 지역의 토착세력과 유착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우수법관이 수도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법관과 토착세력의 유착 문제와 관련해선) 법원 내외부의 감찰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라며 "그 동안 이 부분만 제대로 운영됐다면 사법농단 같은 문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반론했다.
  
이어 "서울과 수도권으로 인프라가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인정한다"면서도 "반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경쟁을 피해 다른 권역에 지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다, (수도권 외 지역에 지원하는 이들의) 수준이 법관직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낮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또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법관직이 갖는 메리트(사회적 가치)가 있다, 때문에 '수도권 아니면 법관 안 하겠다'라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며 "오히려 낙관적으로 보면 평준화로 나아가는 방향일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주권자

이 교수는 "주권자의 사법 참여"도 강조했다. 우선 이 교수는 "우리 헌법엔 흔히 말하는 '사법부'란 용어가 어디에도 없다"라며 "(3권분립의 3권 중 하나인) '사법권'은 '재판권'을 뜻한다, 이 재판권과 '사법행정권'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처럼 사법부가 사법행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시스템이 곧 사법권(재판권) 독립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과 법관의 독립성은 보장돼야 하지만 사법행정에는 적어도 주권자인 국민이 간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헌법의 국민 주권주의(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따라 대통령(행정부)과 국회의원(입법부)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잖나. 하지만 흔히 말하는 사법부, 즉 헌법에 기재된 법원에는 국민이 주권적 기능으로 참여할 방법이 별로 없다."

이 교수는 다시 독일의 인사 시스템을 언급했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법원이 행정부에 소속돼 있다. 임용의 경우 행정부와 입법부로 구성된 법관선출위원회(Richterwahlausschuss)가 담당하고, 법원은 법원조직법에 따라 존재하는 법관인사자문위원회(Präsidialrat)를 통해 자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다만 사무분담의 권한은 각 법원의 법관운영위원회(Präsidium)가 갖고 있다. 사법행정권, 특히 인사권을 행정부·입법부·법원이 나눠서 행사하는 구조다.

한국의 경우 사법행정권을 대법원이 독점한다. 인사의 경우 법관인사위원회에 외부위원들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대체로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교수는 "법관 인사를 법원 내에서 독점적으로, 외부의 간섭 없이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일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70년 세월 동안 법관 인사가 공정하게 진행됐다면 전자가 맞는 말이겠지만 그렇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사라는 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지만, 다수가 동의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합리적 인사제도라 생각한다"라며 "사법농단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그 동안의 법관 인사에 문제가 많았는데 이를 해결할 내부 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교수는 한국 법원 특유의 인사 문화를 강하게 지적했다.

"각급 법원에서 등산을 가면 법원장 이하 법관들이 자기가 줄서야 할 곳을 다 안 다는 것 아닌가. 연수원 수료 후 최초 임용되면 성적에 따라 그때 자기 위치가 결정되고 그게 끝까지 간다는 거다. 최초 임관 성적이 좋으면 서울 및 수도권에 우선 배치되고, 나머지는 성적에 따라 서울에서 점점 먼 곳에 배치된다. (중간에 이뤄지는 전보와 상관없이) 그 서열이 법관 생활 끝까지 이어지고, 법원은 그것을 마치 공정한 인사처럼 이야기한다. 10~20년 법관 생활이 임관 때 성적대로 끝까지 간다고 생각해봐라. 임관 성적과 무관하게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성적이 좋아도 법관으로선 모자란 사람도 있을 것 아닌가."

2만 vs. 3000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남소연

       
다만 이 교수도 "사법행정권을 행정부가 쥐고 있는 독일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정치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연방정부든 주정부든 대체로 연립정부 형태인데, 여당이 파트너 정당에게 법무부 장관 자리를 주는 게 관례다.

때문에 여당 독단으로 법원을 주무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참고로 독일은 일반법원·노동법원·사회법원·행정법원·재정법원을 따로 두고 있으며 법무부(일반법원·행정법원·재정법원), 노동사회부(노동법원), 보건부(사회부)가 각 법원의 사법행정권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예를 들어 행정부와 입법부로 구성된 독일의 법관선출위원회를 두고 일부에선 '정당끼리 나눠먹기'라고 비판하는데, 분명 독일에서도 불협화음이 있고 그건 인간사회의 한계라고 생각한다"라며 "하지만 협치에 따라 정당 간 안배가 이뤄지는 그것이 오늘날 정당 민주주의에서 할 수 있는 독일식 대안인 것이다, 어떠한 안배도 없이 오로지 엘리트 연줄을 달고 있는 사람만 고위직 법관으로 나아가는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했나"라고 지적했다. 즉 제도의 형태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참심제를 운영한다. 일반 국민이 직업법관과 대등한 입장에서 참심원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독일의 직업법관 숫자는 약 2만 명이다(독일의 인구는 약 8000만 명 - 기자 주). 참심원은 약 6만 명이다. 반면 인구 5000만 명인 우리는 법관 3000여 명이 사법과정을 독점하고 있다. 법관 개개인의 일이 많다곤 하지만 그게 결국 독점을 누리는 반대급부이다."

한편으로 이 교수는 "법관 수를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아는 법관 중 참 훌륭한 분들이 많다, 분명한 건 3000여 명밖에 안 되는 직업법관들이 전국에서 쏟아지는 사건을 처리하느라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그 일을 꾸역꾸역 해내는 것을 법원 내에서 돋보이는 능력으로 취급한다, 국민 입장에서 충실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관을 늘리면 능력이 떨어지는 법관이 양산될 거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건 김영삼 정부에서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를 열었을 때도,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도입했을 때도 나왔던 이야기"라며 "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결국 희소성을 유지하고 싶은 기존 집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을 무리하게 추진할 때 당시 정치권과 언론은 대법관 수를 늘리라고 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싫다고 했다"라며 "법관 사회가 지금 규모에서 희소성을 누리고, 그래야 승진에서 탈락해 나가도 몸값이 유지되는, 이런 구조와 맞물려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구조에선 탈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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