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를 도운 조지 애수머어 피치와 그이 부인 제랄딘의 말년 모습.
국가보훈처
선교사 조지 애수모어 피치와 그의 부인, 그리고 그의 아버지 조지 필드 피치(George Field Fitch, 費啓鴻)까지 2대째 독립운동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버지 조지 필드 피치는 중국에서 일제의 감시를 받을 만큼 한국인들의 활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대한적십자사는 1909년 7월 일본적십자사에 흡수됐다가 1919년 4월 임시정부 수립 후, 8월 29일 대한적십자회 설립이 상하이에서 공포·재건되는데, 조지 필드 피치가 중국에 있는 다른 미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구호품과 의연금을 모아 한인들을 돕는 등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활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제지위 획득과 연관되어 있었다. 당시 적십자사는 국제기관으로서 제네바협약에 가입한 독립된 주권국가가 설립한 적십자사만이 승인됐다. 때문에 대한적십자회는 국제적십자연맹에 가입을 통해 임시정부가 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다. 1921년 1월 이관용(李灌鎔)이 대표로 선출되어 국제적십자총회에 참석하여 독립을 청원하고 일본적십자사에 항의서를 제출하는 등 일본의 침략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대표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밖에도 임시정부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선전활동이 꾸준하게 진행했다. -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 중국, 대한적십자회 설립 장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 밖에도 교육 등 다방면으로 필드의 지원이 이어졌고, 이런 필드의 한인사회 지원은 1922년 6월 상하이주재 일본총영사가 미국총영사에게 "미국인 선교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를 요구하며, 유감의 뜻을 전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에 따라 미국총영사 커닝햄은 조지 필드 피치에게 구호활동의 경위 해명까지 요구했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미국총영사 입장에서 미국인 선교사가 중국인도 아닌 한국인을 지원하는 것은 사실 국제적으로 민감할 수 있고, 환영받지 못할 일이다. 간단하게 현재의 난민 문제에만 대입해봐도 그 당시에도 제3국의 국민을 지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치 일가가 나섰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 보면 간단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준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게다가 국가 기관에서 직접적으로 유감을 표명한다면? 나는 물러서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피치 일가는 멈추지 않았다.
또한 <독립신문>을 통해 "나는 정치적으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방조한 일이 없다. 그러나 차가운 추위에 슬퍼하는 한국동포를 위해 구제사업을 경영한다. 이는 선교사인 나의 신성한 의무다"라고 하며 선교사로서 자신의 활동이 정당함을 주장했다. 이에 커닝햄은 재차 필드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미국시민이 외국에서의 정치적인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대한적십자사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국무부의 요청을 준수하지 않는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2018년 1월의 독립운동가 조지 애쉬모어 피치>, 김주성
이렇게 피치부부의 도움으로 무사히 자싱에 온 김구 선생은 이후 저보성(주푸청)의 도움을 받는다.
집주인은 손문(쑨원)과 함께 1905년 일본 동경에서 흥중회를 창립한 후 계속 그의 가까운 동지였던 혁명가 저보성(주푸청)과 그의 아들 소유였다. <장강일기>, 정정화
▲매만가 76호영화 ‘암살’에서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이 배를 타고 김구선생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바로 이곳의 수상가옥을 재현한 모습이다.
오마이뉴스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자싱으로 피신하게 된 임정요인들은 서로 근거리에 있는 사실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숨어 있어야만 했다.
매만가 76호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해염(하이엔)의 재청별장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 또한 저보성(주푸청)의 며느리인 주가예 친정 소유 건물이다. 저보성의 집안 역시 임시정부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자싱의 일정은 임시정부의 피난기의 고난을 확인함과 동시에 이처럼 임시정부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 보다 더 많은, 국적을 초월한 의인들의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을 확인하는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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