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빈씨가 아이유의 곡을 패러디한 '빨래터'의 뮤직비디오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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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도 있다. 초등학교 때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위협하던 내 모습과 장애인을 따라하며 친구들을 웃겼던 기억, 사람의 약점을 콕 집어내 농담거리로 만들었던 내 장기가 당사자들에겐 나쁜 기억일 것이다. 웃자고 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죽도록 싫은 말일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또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었던 근본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언젠가 청소년 신분일 때와 아르바이트를 할 때 경험했던 나쁜 기억들을 돌아볼 일이 있었다.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은 청소년의 권리를 하찮은 것으로 여겼고, '알바생'이라는 말은 노동자의 처우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내가 겪은 약자로서의 차별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되풀이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그 악순환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어느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 때로는 강자로, 때로는 약자로 존재한다.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더 많은 사람을 웃겨보자는 얄팍한 목표가 타인을 처참히 짓밟고 있었고, 동시에 매우 소모적이었다. 가장 비열하게 남을 웃기던 과거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웃음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묵은해를 쉽게 보내지 않기로 했다. 지나간 해를 샅샅이 파헤쳐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다줄 방향표로 삼겠다는 말이다. '나'라는 인간이 이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서 있고, 얼마나 타인을 기쁘게 했고, 또 얼마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다.
남성으로서 여성에게, 이성애자로서 성소수자에게,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에게, 20대 건장한 청년으로서 노약자에게, 그리고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가 약자일 때 괴로웠다면 나보다 더 많이, 자주 불편을 겪을 어떤 이들과 더불어 사는 존재, 함께 웃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사회적 권력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유머를 만드는 것. 이것이 올해 내가 다짐한 '변화'다.
비록 목표하는 결과를 하루아침에 만들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작년처럼 살고 싶지 않다. 어쨌든 의지를 가지면 그 쪽 방향으로 한 발짝 전진하는 게 사실이니까. 이제 '사람을 웃기는 것'에 대한 기준이 바뀔 때가 됐다. 비하와 조롱도 유머가 될 수 있지만, 그 유머가 약자를 향할 때 우리는 사유해야 한다. 강자를 풍자하고 약자에게 희망을 주는 유머의 본래 기능처럼, 그렇게 늘 우리 곁을 맴돌며 삶에 스며드는 따스한 웃음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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