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들은 '엄마학교'에서부터 시민의식을 배운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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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유치원은 99%가 공립이다. 나머지 1%도 개인이 아니라 대부분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사립학교다. 이 나라에서 쓰는 공식 명칭은 '엄마학교'(Ecole Maternelle).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나 아빠들은 불만이 없는 걸까 싶었지만, 워낙 오래(1881년 교육부가 프랑스 공교육의 첫 단계로 유치원을 진입시킬 때부터) 써온 탓인지 명칭의 적확성에 대한 논쟁은 접하지 못했다.
엄마학교는 의무교육은 아니지만(내년부턴 의무교육이 된다) 무상교육이며, 만3살부터 6살 사이의 유아 중 입학을 희망하는 모든 아이들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이미 현실에선 그 나이대 거의 모든 아이들이 엄마학교엘 다닌다. '두두'(doudou: 아이들의 손 때 묻은 헝겊인형. 낮잠시간에 안고 자는 용도) 하나씩 손에 달랑 들고 "나 학교 간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프랑스에는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없다
'엄마학교'라는 명칭의 방점은 '엄마'가 아니라 '학교'라는 단어에 찍혀있다. 이 나라 아이들이 나이 3살에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곳이 국가가 모든 이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학교라는 사실은 프랑스 시민의식의 중요한 대목을 형성한다.
여기서부터 이들은 인권의 개념, 공화국이란 체제의 의미를 몸으로 체득한다. 각자 가정 환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들은 자아의 만개(滿開: Epanouissement)와 오감을 일깨워주는 데 초점을 맞춘 학교가 준비한 목욕물에 함께 몸을 풍덩 담그기 때문이다.
돈 많은 사람들의 자녀가 가는, '영어 유치원' 같은 차별화된 시스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구청에서 배정해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공립 유치원에 가는 것이 최선이라 여긴다. 고로 노란색 유치원 버스도 도시에선 있을 수 없는 물건이 돼버린다.
엄마학교에서 아이들은 "신체활동과 예술활동을 통해 반응하고 표현하고 이해하기"를 배우며, "모든 영역의 언어(신체, 말, 표정, 그림 등)를 최대한 활용하는 법"을 익힌다. "생각을 구축하기 위한 기초 도구를 활용"하는 훈련도 한다. 그리고 넓은 세상 속에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세상 곳곳을 탐험"하게 한다.
하여 허구헌 날,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모험을 떠난다. 그것이 교육부가 99%의 공립과 국가와 계약을 맺은 1%의 사립에게 요구하는 교육 지침이다.
이곳에선 3년간 알파벳을 가지고 놀기는 하지만 글을 배우진 않는다. 엄마학교 마지막 해에 최종적으로 각자 자기 이름을 쓰는 것까지만 하고, 글을 읽는 것은 초등학교에서 해야 할 일로 느긋하게 미뤄둔다. 대신 감각을 익히고, 호기심과 감수성을 최대한 일깨우는 데 집중할 뿐이다.
엄마학교는 그 시기의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말, 신체, 다양한 예술적 표현으로 무수히 자기를 드러내게 한다. 어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1대 1로 대화를 차분히 이어가는 프랑스 꼬마들의 대담한 대화 기술이 바로 이렇게 빚어진다.
사랑에 대해, 차별에 대해, 여자 혹은 남자에 대해, 가난과 부에 대해 아이들은 매일 교사와 토론을 주고받고, 물감을 손에 잔뜩 묻히고, 찰흙을 주물럭거려 표현한다. 현대무용을 통해 야생동물들의 세계 속에 들어가 기쁨과 슬픔, 환희와 놀라움을 온몸으로 형상화 한다.
이민 2세에게도
부모가 식당을 운영하던 중국 이민 2세 청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언제나 식당일에 여념이 없던 부모 밑에서 그는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우두커니 부모가 오기를 기다리며 단조롭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이끄는 손을 잡고 당도했던 곳이 바로 엄마학교였단다.
거기서 그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묻고 답하며 내 느낌을 표현하는 경이로운 그 세계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그는 학교가 "천국"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학교를 통해 그는 집에선 들을 수 없는 풍부한 어휘와 표현을 익혔고, 인권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다고.
프랑스 교육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도 그 점이다. 처음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욕구를 구조화된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그 시기, 엄마학교를 통해 각 가정 사이에 있는 언어의 불평등을 보완하고, 아이들의 어휘의 수준을 확대하고 고양하며,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생각의 힘을 키워 스스로 생각의 주인이 되게 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프랑스의 유치원에 문제라곤 없어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고민과 나아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일찌감치 유아교육의 공교육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구축하였으나, 최근 10여 년간 지속되는 긴축재정의 치명타를 입은 교육재정 탓에 이 나라 유아교육의 수준은 뒤처지기 시작했다.
6250유로(약 830만 원)는 프랑스 정부가 1년간 1인의 유아교육에 지불하는 평균 교육비다. 이는 유럽 평균에 미치지 못하며,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22명으로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교원과 보조교사가 함께 한 반을 맡지만, 전문가들은 학급당 인원수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만 3세(빠르게는 2살 반부터도, 기저귀와 완벽하게 이별한 아이라면 입학 가능)부터 무상교육이 시작되지만, 그 이전 단계인 탁아소는 유료로 운영된다. 또 교육부 소속의 교원이 개입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점도 지속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로 제기된다.
엄마의 출산휴가(4개월)가 끝나는 직후부터,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완벽하게 돌봐줄 무상 육아시스템이라는 고지를 앞두고, 그들은 잠시 후퇴했다. 그리고 프랑스 사회는 그것이 결과로 드러내는 바를 겪으며 출구를 모색 중이다. 여전히 유럽 최고 수준을 자랑하나, 한때 2.1%까지 치솟았다가 1.88%로 후퇴한 출산율도 퇴보한 유아교육의 여파일 수 있다.
엄마학교가 한국사회에 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