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3 15:01최종 업데이트 19.03.14 11:14
한국서 태어난 지 단 6개월이 된 아이를 데리고, 북극권(arctic circle)이 지나는 핀란드 북부 도시로 이주해 4년째 살고 있습니다. 영유아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돌봄과 교육, 보건 등을 경험하면서 한 사회가 만들어 나가는 튼튼한 울타리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 육아일기는 개인의 기록입니다. 어쩌면 한국의 영유아기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며 쓰는 희망편지이기도 합니다. [편집자말]

핀란드 어린이집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산책하는 풍경 ⓒ 김아연

 
"아이는 주고 얼른 가세요." 

오전 8시, 울부짖으며 온 몸을 활처럼 휘는 아이를 겨우 끌어 안은 리사(Liisa)가 말했다. 리사는 아이의 어린이집 담임 교사다. 사실 교사라고 썼지만 그녀는 내가 '오뻬따야(Opettaja, 핀란드어로 선생님이라는 뜻)'라고 부르면, 그냥 '리사'라고 부르라며 손사래 치곤 했다.  


지금은 핀란드에서 육아를 하고 있지만 아이는 2016년 2월 한국에서 태어났다. 출산휴가가 끝날 무렵, 그야말로 나는 '돌봄'을 대행할 그 누군가를 찾았다.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대표 사이트에 가입했고, 지역 맘카페에 베이비시터를 소개받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친정엄마에게 요청도 하고, 집 근처 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아이를 낳고 난 후 직장 복귀를 앞둔 여성들이 경험하는 것이었다. 이 중 좋은 '돌봄'의 선택지를 찾지 못해, 직장에 다시 돌아오지 못한 동료들이 지금도 무수히 많다.

당시 갓 3개월을 넘긴 아이를 받아주겠다는 어린이집은 없었다. 24시간 누워 있는 나이라, 토사물이 기도에 막힐 위험이 있어 영아를 꺼린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친정 엄마가 상황을 듣고, 복직 후 단 몇 달만 돌보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출산 90일 후, 모유 유축기와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둘러매고 서둘러 직장에 복귀했다. 오전, 오후 수유실로 뛰어가 유축을 하고, 회사 탕비실 냉동실에 남들 보지 않게 모유팩을 종이가방에 넣은 다음, 꽁꽁 얼려 매일 같이 집으로 가져갔다.

몇 달을 이렇게 살아야 할지 기약이 없었지만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 복직 얼마 후, 남편의 핀란드 유학이 결정됐다. 일이 아쉬웠지만 아이를 안정적으로 맡길 수 있는 곳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외국행은 차라리 나은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갑작스런 핀란드행
 

핀란드의 유명 게임캐릭터 앵그리버드를 테마로 한 공공 놀이터 ⓒ 김아연


2016년 8월, 핀란드에 도착해 처음 몇 년은 낯선 땅에서 말 그대로 독박육아를 경험했다. 혈연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은 모국에서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핀란드 이민자 교육이 시작된 2018년 7월 말, 그제야 어린이집 자리가 났다. 어린이집 지원 후, 1년 만의 일이다.

아이는 개원하는 공공어린이집의 첫 입학생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 양육자가 풀타임 학생이거나 직장이 있어야만 금세 자리가 난다고 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던 유학생 와이프인 내가 왜 그렇게 기약없이 기다려야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이는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나 다자녀 가족에 입학 우선순위를 주는 것과 같은 원리다.

만일 양육자가 학업이나 직장을 중단해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당초 아이를 풀타임으로 어린이집에 보냈다 해도, 다시 파트타임으로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학업기간이 다 끝나고 가정으로 돌아오면 아이는 어린이집 체류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놀랍게도 시에서는 부모의 고용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새로운 분기마다 칼 같이 보육 시간을 다시 조절한다. 아이가 속한 반에는 3명의 교사와 12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현재 주 5일 풀타임(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으로 어린이집을 다니는 반 친구는 단 2명뿐이다.(0~3세반의 경우)

핀란드 어린이집 일과는 대개 아침 8시부터 시작한다. 엄마, 아빠들은 자신의 자가용에, 자전거 뒤편에 그리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온다. 신발장 앞에 앉아 아이의 신발과 옷가지를 벗기고, 손 씻기까지 부모가 완수한 후에 아침 식사를 위한 식당방으로 아이를 들여보낼 수 있다.

아침을 먹고, 놀이를 하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간식을 먹고 마지막으로 운동장에서 흙과 눈에 몸을 뒹굴다 보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전일반의 경우 부모들은 보통 오후 3시가 넘어서 퇴근을 하고 오후 4시까지 어린이집에 찾아와 아이를 데려간다.

부실 급식은 아예 불가능하다
 

야외활동이 많은 핀란드 어린이집에서 모자와 장갑, 장화는 필수다 ⓒ 김아연

  
등원 첫 2주 동안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한국에서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짧게는 1~2주, 길게는 한 달 정도의 적응기간이 있다고 들었다. 핀란드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적응 기간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선생님에게 아이를 안기고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불안감은 없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핀란드 어린이집의 하루 일과가 한 눈에 보일 만큼 예측이 가능하고 단순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의 아침 식사 메뉴는 전국 공통 뿌로(Puuro·쌀 또는 귀리죽)라는 건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우리 아이 급식판 위에 "포도 두 알"이 올라올 걱정은 하지 않았다(한국 유치원에서 급식비를 아끼기 위해 아이들에게 '포도 두 알'씩만 줬다는 언론 보도를 뜻함-편집자말). 내가 살고 있는 로바니에미에서는 공공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보낼 식사를 한 곳에서 만들어 매일 아침마다 배달하기 때문이다.

자격 없는 교사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핀란드에서는 공공 어린이집 교사들을 시에서 직접 고용한다. 자격증도 없는 일가친척이 경영에 참여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현재 제도는 몇 가지 행정적 조건을 완수하면 인허가를 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이 보육의 질을 높인다고 보기 어렵다. 국가가 직접 0에서 6세(프리스쿨 이전까지의 나이)까지 영유아기 교육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핀란드와는 다른 점이다.

이곳에서 보육은 노동·교육·복지의 총제적 결과물
 

아이 한 명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사회의 유기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 김아연

 
이렇게 핀란드의 영유아기 보육을 경험하고 보니 우리 아이들을 튼튼하고 신뢰 있는 울타리 안에서 키우기 위해 여러 유기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핀란드 부모들이 퇴근 후 제 시간에 아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노동의 영역이다. 보육교사의 잡무는 줄이고 아이의 돌봄과 발달에 집중하는 것은 교육의 영역이다. 3세 미만의 아이를 집에서 돌보는 부모에게 '돌봄수당'을 주는 것은 복지의 영역이다. 결국 영유아기 보육정책이란 아이를 가진 구성원이 경험하는 라이프사이클을 이해해야만 나올 수 있는 총체적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각 사회에는 저마다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핀란드가 무조건 좋다고 찬양하거나 한국도 보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앞으로 10회간의 연재를 통해 핀란드에서 아이를 키우며 보고 느낀 보건과 교육, 돌봄 등에 대해 있는 그대로 솔직담백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것은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한국 어린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며 쓰는 한 아이의 엄마의 희망편지이기도 하다. "아이는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학교에, 직장에 얼른 가세요"라는 이 한 마디가 한국에서 힘이 있는 문장이 되려면 우리에게는 과연 무엇이 더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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