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0 14:17최종 업데이트 18.10.10 14:45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대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엄마의 꿈은 드라마 작가였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멋진 꿈. 그런데 한때 이런 꿈을 가졌던 엄마는 왜 자신의 꿈을 잊고, 그저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아가게 되었을까? 자신은 멋진 꿈을 품었으면서도 왜 딸인 나에게는 항상 교사나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살면 좋겠다고 말하게 되었을까?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 때부터 과외를 해서 스스로 용돈을 벌었고, 시험 준비 중인 오빠를 뒷바라지하느라 "쉬었다 가도 괜찮"지 않았다. 졸업 후에는 일찍 돈을 벌어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길로 가도 괜찮"지 않았고, 막내딸로서 철이 너무 일찍 든 탓에 "잘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 나가라고 재촉하는 세상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본 탓에 엄마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고, 그대로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꿈을 잃은 엄마의 유일한 취미는 드라마 보기가 되었다. 엄마는 주말도 없이 바쁘게 일하며 나를 키웠고, 그 소중한 딸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경험하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안전하게 살기를 바라게 되었다.

엄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도전과 변화가 두렵다고.

가족을 위해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

혁신, 창조, 변화, 도전을 구호처럼 외쳐대는 이 세상은 너무도 불안하고 잔인한 곳이었다. 살아온 인생을 통해 이를 뼈저리게 느낀 엄마는 체제에 순응하며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고, 소중한 딸에게 "너무 앞에 나서지 마라, 튀지 마라,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해라"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고, 엄마와 나의 삶을 돌아보니, 엄마는 미약하게나마 내가 꿈틀거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셨다. 어릴 적 친구들이 영어와 수학학원에 다닐 때, 나는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게 해주셨다. 내가 발레나 태권도,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스스로 목표를 정해서 달성하는 조건으로 배우게 해주셨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당신 몫을 아껴가며 모은 돈으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라"며 뉴질랜드에 보내주셨다. '어학연수'가 아닌 '현장체험 학습'이었다. 엄마 말을 잘 들었던 나는 뉴질랜드까지 가서 영어 공부는 뒷전인 채 자연과 더불어 맨발로 공을 차며 신나게 놀았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학원도 없고 시험도 없는 곳. 교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광활한 풀밭이 있고, 체육, 음악, 요리 같은 수업이 매일 있는 곳. 적잖이 새로운 환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곳의 내 또래들은 모두 걱정 없이 행복해보였다. 표정이 밝은 친구들과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하고 싶은 활동만 하고 지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엄마의 사랑으로 꿈틀거릴 수 있었던 딸

그 후로도 엄마는 내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어떤 계기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나는 정말 알아서 공부를 했고,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나의 유년시절이 행복했던 이유를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당시 나의 움직임은 작은 꿈틀거림이었지만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 했기 때문에 행복했던 것이다.

물론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앞둔 청춘이 된 지금은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가 작동하기 힘들어졌다. 나름 꿈틀거릴 기회를 주셨던 엄마도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교대에 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지속적으로 내비치셨고, 지금도 공무원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사실 나도 대학생이 되면서 앞날을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소위 '10퍼센트'에 속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안정'을 택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 위험 부담이 크지 않은 일들 말이다.

하지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내가 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내가 직접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바로 대학생을 위한 하우징 자선사업이다. 자신의 공간을 갖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최소의 유지비용으로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에 소개된 것처럼, 덴마크의 건축 디자인과 공동체 문화를 반영한 '티트겐콜레기트 대학생 기숙사'와 비슷한 분위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우징 자선사업은 무슨 돈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고?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23살 평생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업을 위한 자금 마련의 꿈을 찾았다. 구성원이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 일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딱딱한 위계가 있는 회사가 아니라 구성원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분위기의 사무실을 만들고 싶다.

하고 싶은 대로 꿈꾸다 보면

맞다. 아직은 모두 막연한 꿈이다. 하지만 꿈꾸며 계속 꿈틀거리다 보면 어느 날 펄떡 뛰는 날이 오지 않을까? 뜬구름 잡기 식이지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시리즈를 접해버린 나는, 천성이 얌전하지 못하고 이미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가 주는 달콤함을 맛본 나는, 왜 한국은 매번 OECD 국가 중에서 안 좋은 것들로만 1위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우리 엄마가 이런 내 생각을 알게 된다면 또 걱정하며 펄쩍 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는 엄마의 말을 거스를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계속 꿈틀거려야겠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지만 자기 자신은 사랑할 겨를이 없었고, 나의 행복에 함께 행복해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 행복은 없었다. 나는 항상 이런 엄마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내가 잘 커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인생을 통해 얻는 엄마의 대리만족일 뿐이다. 더구나 딸인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있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엄마가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미 늦은 인생은 없으니까

내가 행복하고 우리가 행복하려면 더불어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즐겁게 한다고 한들, 가장 가까운 이웃인 엄마가 주체적으로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더불어 사랑하고, 그래서 즐겁게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늦은 나이지만 엄마도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엄마가 나에게 꿈틀거릴 기회를 줬던 것처럼, 나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에게 그 기회를 주고 싶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이 만들어낸 동심원의 물결이 지름을 넓혀가듯 언젠간 우리 모두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내 나이에, 아니 좀 더 일찍 이 책을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 내가 부딪치며 고민하고 힘겨워하는 현실은 어쩌면 엄마도 똑같이 걸어왔던 길일 테니까.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엄마들이 살아왔던 인생이니까.

하지만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미 늦은 인생은 없다'. 엄마가 행복하고, 또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가 아닌 그녀 자신으로서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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