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작가 이충렬씨.
이희훈
- <간송 전형필>의 인기 때문인지, 그 책 전후로 그림 관련 책을 2권 펴냈다는 사실은 잘 안 알려져 있다. <간송 전형필>은 2010년,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은 2008년, <한국 근대의 풍경>은 2011년에 발간됐다. <간송 전형필> 전후로 그림 관련 책이 끼어있다. 어떤 이유였는지 궁금하다.
"하나는 그림 수집, 또 다른 하나는 근대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다. '오마이블로그'에 연재했던 글들이 섞여 있다. 애초 김영사에서 책을 내자고 했던 건 <한국 근대의 풍경>이었다. 계약도 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까, 내가 화가도, 미술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니야. 그냥 그림을 모으다 보니까, 근대에 관련된 그림의 배경에 관해서 블로그에 썼을 뿐인데. 그게 활자화된 책으로 나온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림 관련 책을 펴낼 수가 있나. 한 마디로 자격미달이다. 출판사에 '아무리 생각해도 자격미달 같다'고 얘기했다. 그림을 갖고 근대를 이야기하는 게 무서운 일이라고. 출판사에서는 자신들이 커버하겠다고 쓰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건 출판사 생각이고, 나는 안 되겠다, 이걸 쓰면 욕만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주제 파악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림 애호가일 뿐이었다.
그래서 출판사에 다시 제안했다. 그렇다면 그림 애호가에 관한 글은 쓸 수 있겠다고. 당시 우리나라에 미술(그림) 붐이 일기 시작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화랑 문턱을 넘는 거다. 어떻게 화랑 문턱을 넘고, 어떤 그림을 집에 걸면 좋은지 이야기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출판사가 내 의견을 받아들여 나온 첫 책이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이다. 50만~100만 원의 '소품'을 사서 감상도 하고, 덤으로 작은 투자도 할 수 있다는 발상이 큰 호응을 얻었다."
- <간송 전형필> 준비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발간 시기를 보면 3년 동안 그림 책 두 권과 <간송 전형필>을 펴냈다. 어떻게 다른 성격의 책들을 동시에 준비했는지.
"미국 국경지역에서 하는 잡화점 장사가 안정돼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하고 글을 몇 편 썼다. 그런데 해외에 있다 보니까 소재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는) 역사소설을 떠올렸다. 왕이 아니라 화가들을 주인공으로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인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를 내세우고, 서인에서는 우암 송시열 계열인 겸재 정선을 등장시키는 거다. 그런데 스토리를 전개하려면 세 권짜리는 돼야겠더라. 나중에 포기했지만, 그 당시 겸재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고 간송미술관을 자주 찾아갔다."
- 겸재 정선 자료를 찾으러 간송미술관을 자주 방문했던 때가 언제인가.
"1995년 즈음이다. 역사소설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간송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간송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이 양반의 수집품이 조선 초기·중기·말기에 걸쳐 방대하더라. 그럼 어떻게 해? 공부해야지! 처음 간송 책을 내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너무 암담했다. (가게 일 마치고) 저녁에 꾸역꾸역 공부를 시작했다. (간송과 그의 수집품을 이해하려면) 청자의 발달사도 봐야 하고, 어떻게 해서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나왔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때 문화적인 갈증이 생겨 작은 그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림 책과 간송 전기가 그런 준비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된 것이다. 10년가량 자료조사를 하면서 공부했다. 간송을 제대로 알려면 역사 공부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사동에 서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아야 하니까. 고서점에 관한 책도 봐야 한다. 책을 찍어냈다고 하는 내용이 나오면 활판 인쇄에 대한 지식도 얻어야 한다. 수집한 문화재도 어떤 건 기와집 1채, 또 어떤 건 기와집 4채 가격이다. 왜 가격 차이가 났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경매 기록도 마찬가지고. 일제 강점기 때 도굴 상황도 알아봐야 하고. 공부해야 할 게 굉장히 많았다."
"나는 아직도 '권정생'에서 못 빠져나왔다"

▲전기작가 이충렬씨.
이희훈
- 배우가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 연기에 몰입해 '메소드 연기'를 하면 촬영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그 인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한 인물에 몰입해야 하는 전기를 쓸 때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바로 이 질문이다. 나는 아직 '권정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몇 년 동안 준비하면서 한 인물의 전기를 쓰다 보면, 쓰고난 뒤에도 몇 달 동안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다음 작품을 쓰려면 빨리 빠져나오는 게 좋다. <간송 전형필>을 쓰고 나서는 10년 동안 준비한 게 끝났구나 싶어서 후유증이 심했다."
- <간송 전형필>을 쓰면서 다음 작품으로 '혜곡 최순우'를 쓰겠다고 생각했던건가.
"그렇다. <간송 전형필>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간송 시즌2를 할 수는 없으니까 최순우를 연결시키면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 그렇다면 최순우 전기를 쓰면서 김환기 전기를 구상한 건가.
"그렇다. 두 사람이 친구니까.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 이렇게 관련있는 인물들의 전기를 세 권 쓰다 보니,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도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만 계속 연기하면 좋은 게 아니듯이. 문화를 빛낸 인물 세 명을 다뤘으니까, 이젠 사회를 빛낸 인물을 써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를 빛냈으면서 욕을 먹지 않은 사람이 진짜 드물더라. 우리가 너무 험난한 세상을 살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종교인이자 사회인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 김수환 추기경이다. <아, 김수환 추기경>(김영사) 책을 쓰면서 (독자층을) 고민했다.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책이냐, 대중을 위한 책이냐. 결론은 대중을 위한 책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나라 전기의 모범이 될 수 있는 '벽돌 전기'를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이 950페이지인데, 김수환 추기경 전기는 1, 2권을 합쳐 1100페이지다."
☞ [이한기의 뷰] 전기작가 이충렬 인터뷰 2편 이어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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