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22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레시에 밀부(46세)씨. 그는 "택시 운전사도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며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았다.
김민지
그 택시기사들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레시에 밀부(46세)씨다. 한때 이삿짐센터 직원과 전기공으로도 일한 적이 있다는 그는 22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는 손님들로부터 "그 실력 갖고 왜 택시 운전을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는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직업이지 않습니까. 택시 운전을 하다보면 전 세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요.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하루에 8시간 정도 택시를 모는 그는 한 달에 우리나라 돈으로 약 370만 원을 번다고 했다. 그 정도의 임금은 덴마크에서는 숙련노동자의 것보다 적지만 단순 노동자보다는 높단다.
사실 예정된 취재일정이었다면 택시기사 밀부씨와는 인연이 없을 뻔했다. 덴마크에서는 택시비가 우리나라의 5배 이상으로 비싸다. 그래서 코펜하겐에서 택시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로스킬레 대학의 행복학 교수를 만나러 가는 날, 기자는 일찌감치 장거리 열차로 갈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택시를 잡아 탔는데, 택시비가 11만 원 정도 나올 기세였다.
쓰린 가슴을 달래며 택시기사에게 말을 붙여보았는데, 뜻밖이었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 자기 나름의 행복론을 풀어놓았는데, 매우 생각이 깊었다.
고등학교까지만 다닌 밀부씨는 대학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덴마크는 대학진학에 대한 문화 자체가 우리와 사뭇 다르다. 그의 친구 중에 20~30%만 대학에 갔다고 한다. 대학에 가는 것보다 각종 직업학교에서 실속 있게 전문교육을 받아 사회에 나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 지금 택시를 몰고 있는데 대학에 가서 의사나 변호사가 된 친구를 보면 부럽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덴마크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덴마크에서는 사장이나 노동자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장 없이 노동자 없고 노동자 없이 사장 없지 않습니까. 양쪽이 다 필요하지요. 그런 점에서 택시 운전사도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의사가 자부심을 갖고 있듯이 택시기사로서 자신도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만약 택시운전사와 의사가 건강문제에 대해 토론한다면 의사가 더 많이 알 것이고 청중은 의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안이라면 반드시 그렇지 않지요. 어떤 때는 택시기사의 말을 더 중시 여길 겁니다. 택시기사는 의사가 모르는 것을 더 알 수도 있으니까요."
"내 자녀들에게 어떤 직업 가지라고 권하지 않아"
밀부씨는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자녀들이 자기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갖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생활을 하길 원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지길 원한 적은 없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의사나 법률가가 되길 원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정말 내 자식들이 그런 사람이 된다면 돈을 많이 벌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더 중요한 것이 있지요."
그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큰아들은 요리사가 되려고 합니다. 큰딸은 쇼핑몰의 판매원이지요. 작은 딸은 병원에서 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어떤 직업을 선택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요. 그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그들이 어린 나이 때 어떤 직업을 선택하라고 강요해서 그걸 선택했는데 좋아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그 삶이 비참할 것입니까? 자기가 하는 일이 즐겁지 않는다면 돈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본인이 택시기사를 하면 자식은 수입이 좋고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는 직업을 갖길 원할 터인데 이 덴마크 택시기사 밀부씨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무엇이 그걸 가능하게 할까? 앞에서 소개했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인터뷰가 생각났다. 덴마크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가 즐거워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게 교육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도 통하고 있는 것일까? (
☞연재기사 ② 초등학생도 학교이사회의 정식 멤버인 나라 참고)
이야기를 하도 조리있게 잘해서 동영상으로도 담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단박에 허락을 하면서 어느새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건 기본적으로 철학의 문제입니다. 돈은 좋은 거지요.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돈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어요. 당신이 당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지요."
- 그래서 지금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요. 나뿐 아니라 덴마크인들의 생활은 대체로 안정돼 있습니다. 여기서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무료이지요. 대학등록금이 무료고 병원비가 무료입니다. 덴마크인들은 길거리에 내쫒기는 신세가 되는 일이 없어요. 직장을 잃어도 정부가 2년간 실업보조금을 주고 직업훈련을 시켜서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그러니 생활하는데 큰 걱정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1위이지 않겠습니까?"
듣고 보니 안정된 사회복지 시스템이 이 택시기사에게 여유를 가져다주고, 자식들이 어떤 직업을 갖든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서유럽 나라들도 복지가 강하다. 그런데 왜 유독 덴마크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나?
"여기의 복지제도가 훨씬 더 낫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여기서는 가난하다는 사람도 일정한 집이 있고, 핸드폰이 있고, 텔레비전이 있어서 가난한 나라의 부자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경찰이 부패하지 않았어요. 소방서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평등과 함께 자유가 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