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06 14:20최종 업데이트 19.06.10 16:59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사회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그 답을 찾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를 심층취재했습니다.  이 연재는 2014년 9월 초 단행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이것이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 같은 것입니다. 요기 보세요. 맨 위에 내 주치의가 어느 병원에 있는지 적혀 있잖아요. 주소와 전화번호도 함께 말이죠."




덴마크에서 20여 년째 살고 있는, 덴마크 영주민 오대환 목사는 자신의 지갑에서 주치의 병원이 적힌 주민증을 꺼내보였다. "아내가 아파서 어제도 주치의를 만나고 왔다"고 한 그는 "덴마크에서는 주민은 물론 단기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까지도 모두 주치의가 정해진다"고 말했다. 



덴마크인들이 행복지수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생활이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가 만난 덴마크 사람들은 대체로 "그다지 큰 걱정거리가 없다"고 말했다. 평생 병원비가 전액 무료이고, 자신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주치의가 동네친구같이 존재하는 것도 덴마크인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주치의 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의사는 어느 정도로 주민들과 밀착돼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코펜하겐의 한 동네병원을 찾아갔다. 간호사 2명과 함께 20여 평 정도 규모의 동네병원에서 기자를 맞이한 카스텐 뮐러 크리스텐슨씨는 흰 가운도 입지 않고 티셔츠에 청바치 차림이었다. 길거리에서 보면 그냥 동네 아저씨로 여겨질 정도로 수수한 그는 "사진까지 찍는 줄 알았으면 머리를 좀 빗고 나올 걸 그랬다"는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주민 1600명의 주치의... "이혼상담까지 합니다"


 
덴마크에서 20여 년째 살고 있는 덴마크 영주민 오대환 목사의 주민증. 이 주민증에는 주치의가 운영하는 병원의 주소와 전화번호도 함께 적혀 있다. 김민지
크리스텐슨씨는 25년 동안 이 동네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자기뿐 아니라 덴마크의 '주치의 의사'들은 보통 한 동네에서 자리 잡으면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제가 이 동네 주민 1600명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평균 30명의 환자들이 찾아옵니다. 한 환자당 진료시간은 약 10분 정도 되지요."



재미있는 것은 덴마크에서 주치의는 그냥 의사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오랫동안 사귄 동네친구 역할도 해야 한다.



"25년 동안 계속 하니까 3세대가 함께 저를 찾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히 저는 그 가족의 건강내력뿐 아니라 가정환경도 대체로 알고 있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머리가 아파서 오면 그것이 가정환경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 어떤 부부가 이혼할까 말까를 고민할 때도 의사에게 상담을 합니까?

"그렇지요. 사실 몸이 아파서 진료를 하러 오는 것보다 자기 개인의 고민을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심리적인 치료를 받고 싶은 거지요. 그걸 제가 다 받아줘야 합니다, 하하."



그러다보면 성가실 수도 있겠다. 그래도 크리스텐슨씨는 고민상담은 당연한 일이라는 표정이었다.



- 자주 오는 환자는 한 달에 몇 번이나 오나요?

"일부러 자주 오는 경우는 아직 없었어요. 자주 오는 환자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몇 번 이상 오면 안 된다는 것은 없습니다. 다 받아줍니다."



주민이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면? 기존 주치의를 계속 만날 것인지 새 동네의 새 주치의를 선택할 것인지를 주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단다.



주치의 월급 80%는 지역정부에서 보장


 
코펜하겐에서 간호사 2명과 함께 20여평 정도 규모의 동네병원을 운영중인 카스텐 뮐로 크리스텐슨씨. 크리스텐슨 의사는 25년동안 이 동네에서 1천 6백명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김민지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의사들은 '전방위적인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과전문의, 외과전문의처럼 하나의 전공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것을 두루 다 알아야 한다"고 크리스텐슨씨는 말한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가정의학과에 해당될까? 여기에서 1차 진료와 치료를 하고, 필요하면 2차로 큰 국공립병원에 환자를 보낸다고 한다.



OECD 조사(2009년)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우리나라는 1.9명인데 덴마크는 3.5명이다. 2차병원인 국공립병원에서는 진료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대기자 수가 많아져 큰 병을 얻어도 제때에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을까? 기자가 만나본 덴마크인들은 가끔 그런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크리스텐슨씨는 전반적으로 보면 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급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바로바로 해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국공립병원에서 환자가 밀려 있으면 정부가 보증을 서서 사립병원에서도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줍니다. 특히 암 환자는 최우선으로 해주지요."



주치의 제도는 정부에서 의료복지의 일환으로 만든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주치의를 담당하고 있는 덴마크의 의사들은 공무원인가? 그것은 아니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개인영업인데 지역정부(우리의 작은 시군단위)와 일종의 특별계약을 맺고 있는 셈이다. 당신 동네에 있는 환자의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계약이다.



"그래서 최소 환자와 최대 환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적어도 1600명의 환자를 책임져야 합니다. 이건 일종의 주치의 의무지요. 그리고 최고로 2300명을 넘어가면 안 됩니다. 환자에 대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그렇게 상한선을 정해둔 겁니다. 개인영업을 더 많이 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거지요."



그럼 동네병원 의사들의 월급은 정부에서 다 나올까? 지역정부는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을 해준 대가로 의사들에게 전체 수입의 약 80% 정도를 보장해주고 있다. 나머지 20%의 수입은 취업을 위한 건강진단서 발급 등 간접진료에서 나온다. 주민들이 아파서 치료하는 것은 정부가 진료비를 다 대주지만 개인적 용도로 진단서를 받는 것은 개인이 내야 한다.



그러니까 덴마크에서 의사는 자유로운 신분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업무의 80%는 공무원이고 20%는 개인사업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의사선생님? 그냥 이름 불러요


 
코펜하겐의 한 호수공원에 쌍둥이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부부. 이 부부를 포함한 덴마크 사람들은 대체로 “그다지 큰 걱정거리가 없다”고 말했다. 평생 병원비가 전액 무료이고, 자신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주치의가 동네친구같이 존재하는 것도 덴마크인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김민지
크리스텐슨씨는 덴마크에서 의사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라고 했다.



"일반 회사의 부장급 월급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보통 근로자의 평균보다는 많이 받지만 그렇다고 훨씬 많지는 않지요. 월급 분포를 1에서 10까지 나눈다면 의사월급은 아마도 7, 8정도 되지 않을까요?"



- 한국에서는 대체로 의사가 수입 면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합니다. 의사가 되기까지 공부하느라 매우 힘들었을 텐데 지금보다 더 많이 돈을 벌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덴마크에서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의사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의대생들도 처음부터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요. 돈을 좀 번다고 해도 세금이 50% 전후로 굉장이 높지요. 관건은 이 일이 즐거운가에 있지요. 내 취향이 여기에 있으니까, 환자를 도와주는 것이 즐거우니까 이 일을 합니다."



사회적 신분에서도 의사가 특별대접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청소부나 벽돌공에 비해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냐고요? 의사가 특별히 부자도 아닌데, 덴마크에서는 그런 문화가 전혀 없습니다." 



기자가 만나본 덴마크인들은 의사를 부를 때 "의사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중견회사에 다니는 알브레츠슨씨는 "의사를 만나는 것은 동네 아저씨나 동네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름만 부른다"고 했다. 택시기사 밀보씨도 "의사가 나보다 잘 아는 분야가 분명 있지만 택시기사로서 내가 그보다 더 잘 아는 것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가 더 잘났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덴마크인들은 의사를 존경하고 신뢰는 해도 특별히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와 비교해보면, 덴마크의 의사들은 스스로를 낮춤으로서 양극화를 줄이는 데 기여함으로써, 격차스트레스라는 사회의 중병을 예방치료하고 있었다. 



신뢰 기반 의료복지가 행복사회 만든다


 
덴마크의 의료복지 시스템이 덴마크인들의 행복에 기여하고 의사도 가장 신뢰받는 직업 중 하나라고 말하는 크리스텐슨 의사가 본인도 행복하냐는 질문에 밝게 웃으며 답하고 있다. 김민지
크리스텐슨씨와 30여 분간 인터뷰를 하고 일어서면서 물어봤다.



- 평생 병원비가 무료이고 주치의 제도가 있는 것이 덴마크인의 행복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보나요?

"많이 기여하고 있지요. 덴마크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제 생각으로는, 신뢰가 높은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주민들끼리의 신뢰도 높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주 높습니다. 덴마크 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이 의료복지 시스템이 덴마크인들의 삶의 질을 높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의사도 가장 신뢰받는 직업 중의 하나입니다."



본인도 행복하냐니까 그는 밝게 웃었다.



"완전히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날씨가 별로인 거죠, 하하."


 
오연호 대표 기자가 연재했던 <'행복사회의 리더십'-'행복지수 1위 덴마크 비결을 찾아서'>가 2014년 9월1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오마이북
 
 
덧붙이는 글 다음 연재기사는 '의사·판사가 부럽지 않은 덴마크의 택시기사' 이야기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