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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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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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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은 많이 지체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새삼 역사의 준엄함을 인식하게 되면서, 청년세대와 함께 우리 근현대사의 정맥인 ‘동학농민혁명’의 사력을 찾고자 한다. 횃불→촛불→응원봉으로 이어지는 동학농민혁명의 사력을 찾는 길에 뜻 있는 분들의 동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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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화'동경대전' 등 경전 간행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6] 동학교단의 재정비 작업은 쉽지 않았다

    동학교단의 재정비 작업은 쉽지 않았다.교조가 참형당할 때 체포된 인사 중 박명여(朴明汝)와 성명 미상의 박씨가 옥사를 하였고, 백사길·강원보·이내겸·최병철·이경화·성일구·박상빈 형제·박명중 숙질·성명 미상의 정(丁)생 등이...
    26.03.17 15:06 ㅣ 김삼웅(solwar)
  • 15화은거 중 이필재의 '영해봉기'로 수배 강화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5] "꾸준히 하느님을 모시면 언젠가는 반드시 오만 년의 후천개벽이 올 것입니다."

    최시형은 은신처가 마련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은밀히 각지에 사람을 보내, 흩어진 도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동학체제의 정비를 서둘렀다.갑자년 이후로부터 도인이라는 사람들은 혹 죽고 혹은 살아남은 사람도 있으며, 혹...
    26.03.16 15:18 ㅣ 김삼웅(solwar)
  • 14화최시형, 35년 쫓기며 동학 포교활동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4] 관의 추적을 피해 산간마을에 은신하면서 포교활동을 계속하였다.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가 대구감영에서 사형당하기 한 해 전인 1863년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조대비에 의해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고종)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맡게 되었다. 대원군의 시대가...
    26.03.15 21:54 ㅣ 김삼웅(solwar)
  • 13화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3] 최시형은 동학을 이끌면서 기본을 '사람 섬기기'에 두었다

    최시형의 생애는 최제우와 떼어놓고는 상상할 수 없다.스승의 뜻에 따라 산간마을에서 포교활동 중에 스승과 제자 23명이 체포되었다. 박씨부인과 맏아들 세정(世貞)까지 포박되어 경주부에 끌려갔다. 스승은 불원간에 포교들이 들이닥칠 ...
    26.03.14 23:59 ㅣ 김삼웅(solwar)
  • 12화최시형, 도통을 이어받아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2] 최시형의 동학 입도 경위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기득권층은 개혁·진보·혁신세력을 적대시한다. 조선후기의 양반 사대부들도 다르지 않았다. 거듭하여 관청에 최제우를 발고하고, 관에서는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것을 불온시하면서 감시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이와 같은 ...
    26.03.13 15:24 ㅣ 김삼웅(solwar)
  • 11화한국근대민족주의 원류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1] 이 불꽃은 의병->3·1혁명->독립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졌다.

    수운이 남긴 한국사상 중에 대표적인 줄기는 민족주의사상이다. 민족을 혈연·역사·언어·풍속의 운명공동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면, 한민족은 오랜 역사에서 늘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아온 관계로 한말에 민족의식이 강화되고 그 ...
    26.03.12 15:18 ㅣ 김삼웅(solwar)
  • 10화수운이 뿌린 '보국안민'의 씨앗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0] 수운으로 인하여 근대적 민족주의사상이 움트게 된 것이다

    수운이 동학을 창도한 1860년은 대한제국이 1910년 국치를 당하기 반세기 전이다. 그가 사형당한 지 2년 후 (1866년) 병인양요, 7년 후 (1871년) 신미양요, 11년 후 (1874년) 운요호사건과 이듬해(1875년) 강화도조약으로 개문납적(開門納賊...
    26.03.11 15:10 ㅣ 김삼웅(solwar)
  • 9화동학창도 4년만에 효수형으로 순교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9] 갑자년(1864) 3월 10일 41세의 나이로 순도함으로써 동학(천도교)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정부가 최제우에게 내린 법규는 '좌도난정률(左道亂正律)'이었다. 좌도란 유교의 종지(宗旨)에 어긋나는 다른 종교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왕조는 주자학 이외의 모든 학문과 사상, 종교는 '좌도'로 몰았다. 그러니까 좌도를 통해 국가를 어...
    26.03.10 15:10 ㅣ 김삼웅(solwar)
  • 8화경상감사 장계 '토색하는 일은 없었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 한국근대사의 '관문'이 된 <장계>의 일부를 소개한다

    최제우를 죽이고 이후 동학의 교조신원운동 ⟶ 복합상소 ⟶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지는, 한국근대사의 '관문'이 된 <장계>의 일부를 소개한다.경상감사 서헌순이 장계로써 경주 동학 죄인 최복술(최제우의 아명) 등의 본말을 따져 경...
    26.03.09 15:39 ㅣ 김삼웅(solwar)
  • 7화대구감영에서 남긴 유시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 최제우와 제자들을 불시에 체포한 관졸들은 이들을 역적처럼 취급하였다

    최제우와 제자들을 불시에 체포한 관졸들은 이들을 역적처럼 취급하였다. 모진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이들을 끌고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전시'했다. 동학을 하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용이었다. 이때의 참상을 전해들은 천도교인 김...
    26.03.08 20:53 ㅣ 김삼웅(solwar)
  • 6화엉뚱하게 '서학죄인'으로 몰아 체포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 세계 종교창도자와 종교개혁가들은 체포·소환될 때 어떤 상황이었을까

    최제우는 포덕 4년 째인 1864년 12월 10일 조정의 선전관 정운구의 지휘 아래 중앙관졸과 경주부졸 30여 명에 의해 체포되었다. 41세 때이다. 조정에서 그에게 씌운 죄목은 유학 즉 공자의 학(學)을 문란시킨 사문난적과, 서학이라는 사술로...
    26.03.07 23:58 ㅣ 김삼웅(solwar)
  • 5화민족사의 정맥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서훈해야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 동학혁명이 없었다면 3·1혁명이 가능했겠는가.

    동학농민혁명은 전근대의 철벽에서 근대의 문을 연 횃불이고, 신분해방을 천명한 권리장전이고, 반외세의 기치를 든 자주선언이었다. △불살생 △제세안민 △왜병축출 △탐관오리 소탕의 4대강령과 △ 노비문서소각 △문벌타파 △토지균등분...
    26.03.06 15:09 ㅣ 김삼웅(solwar)
  • 4화 동학 창도의 <역사성>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4] 전근대의 철문을 깨고, 만민평등·척왜척양의 동학혁명을 일으키고...

    수운 최제우 선생이 1861년 창도한 동학(東學)은 흔히 서세동점의 물결에 따라 밀려온 서학(西學)의 대칭개념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동학의 '동(東)'은 지정학적 대칭 용어가 아닌 우리나라 고대 국호처럼 불려진데서 기원한다.예부터 ...
    26.03.05 15:53 ㅣ 김삼웅(solwar)
  • 3화동학혁명 성공했다면 아시아 선진 주도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3] 동학농민혁명군이 들었던 횃불이 촛불로, 다시 '빛의 혁명'으로 승화된 것이다.

    최제우의 사상이 일차적으로 현실화된 1894년의 동학혁명은 비록 현대 병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으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우리의 개화사상과 의병운동, 민주화운동의 정맥으로서 면면히 이어졌다. 동학농민혁명군이 들...
    26.03.04 15:25 ㅣ 김삼웅(solwar)
  • 2화한국 근현대사와 동학농민혁명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2] 최제우의 개벽사상은 사회개혁의 수준을 뛰어 넘는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동학농민혁명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관련 책도 여러 권 썼다. 배움이 깊지 못하여 언저리만 맴돌고 있지만, 그 시대에 동학농민혁명이 있었기에 우리도 낡은 봉건의 철문을 닫고 근대의 광장에 나설 수 ...
    26.03.03 20:50 ㅣ 김삼웅(solwar)
  • 1화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현재진행형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1] 머리말

    동학농민혁명은 조선왕조 말기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집단이라는 내적 모순과 일본을 비롯 서구열강의 침탈이라는 외적 모순이 겹쳐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빠져들 때 '보국안민'을 위해 일어났다. 지배층은 국정의 개혁·경장 대신에 외세에 ...
    26.03.02 19:46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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