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트

  • 오마이뉴스
  • 오마이스타
  • 오마이TV
  • 오마이포토
  • 10만인클럽
  • 오마이뉴스APP

공유하기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 메일
  • URL복사 https://omn.kr/2h7mw

오마이뉴스

시리즈
  • 검색 닫기
  • 연재발행
  • 이용안내
  • |
  • 로그인/회원가입

검색

시리즈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공유하기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은 많이 지체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새삼 역사의 준엄함을 인식하게 되면서, 청년세대와 함께 우리 근현대사의 정맥인 ‘동학농민혁명’의 사력을 찾고자 한다. 횃불→촛불→응원봉으로 이어지는 동학농민혁명의 사력을 찾는 길에 뜻 있는 분들의 동반을 기대한다.

더보기
  • 사회
  • 연재 중
  • 기사90
  • 구독4
  • 김삼웅
  • 공유

참여기자 :

  • 10만인클럽 프로필사진
    10만인클럽 회원 김삼웅 (solwar) 내방
  • OhmyNews
  • 검색 닫기
  • 로그인/회원가입
  • 시리즈
  • 연재
    • 전체연재
    • 프리미엄연재
    • 분야별 보기닫기
    • 사는이야기
    • 사회
    • 경제
    • 정치
    • 문화
    • 민족·국제
    • 교육
    • 책동네
    • 여행
    • 미디어
    • 여성
    • 스타
  • 연재기사
    • 전체 연재기사
    • 인기 연재기사
  • 추천 연재기자
  • 리스트형
  • 카드형
  • 최신순
  • 과거순
  • 90화 민족사의 정맥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서훈해야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90] 동학혁명이 없었다면 3·1혁명이 가능했겠는가

    전근대의 철벽에서 근대의 문을 연 횃불이고, 신분해방을 천명한 권리장전이고, 반외세의 기치를 든 주권선언이었다. △ 불살생 △ 제세안민 △ 왜병축출 △ 탐관오리 소탕의 4대강령과 △ 노비문서소각 △ 문벌타파 △ 토지균등분배 등 12...
    26.05.30 20:44 ㅣ 김삼웅(solwar)
  • 89화 동학농민혁명, 프랑스혁명과 비교하면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9] 동학농민혁명의 에너지가 작동해

    인류역사에서 사회과학적인 가장 큰 변혁운동으로 프랑스혁명을 든다.자유·평등·박애의 3가지를 내세웠다. 그때까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이나 황제·군주 등 최상위자를 '하늘이 낸' 인물로 떠받들고 아무리 자손이 못났어도 세습시...
    26.05.29 15:24 ㅣ 김삼웅(solwar)
  • 88화 헌사 '키작고 눈빛 형형한' 아, 그 사람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8] 사형대에 올라서도 의연히 조선의 혼맥을 지킨 대장부

    '백성'이라고 하기에는 근대의식이 깨어있고 '민중'이라기에는 전근대의식에 젖어있는, 그래서 '군집群集'이라 불러야 할 수십 만 무리를 이끌고 봉기한 레지스탕스.오랜 세월 깊고도 질긴 압제의 철통을 깨부수고자 분연히 일어선 비범(...
    26.05.28 15:30 ㅣ 김삼웅(solwar)
  • 87화 '궁을사상'과 동학군의 '궁궁을을 주문'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7] 궁을사상은 한국전통사상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수운 최제우의 동학에는 궁을사상(弓乙思想)이 한 축을 이룬다. 동학농민혁명군은 〈궁궁을을(弓弓乙乙)〉이란 부적을 가슴에 품거나 주문(呪文)을 외우면서 전투에 나섰다.궁을사상은 한국전통사상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궁을이라고...
    26.05.27 15:13 ㅣ 김삼웅(solwar)
  • 86화 '새타령'과 '농부가'에 담긴 뜻은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6] 은어를 통해 노래를 부르며 힘든 농사일을 하고 항일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울 때 의병들이 분연히 궐기하여 일제와 싸웠다. 동학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의병들은 일제의 현대식 병기에 죽창으로 맞서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의병들이 일제와 싸울 때 민중들은 방방곡곡에서 〈새...
    26.05.26 15:28 ㅣ 김삼웅(solwar)
  • 85화 '가보세' 에 담긴 뜻은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5] 더 지체하다가는 실패할지 모르니 모든 민중이 일어나 동학농민혁명군에 가담할 것을 권려하는 내용

    삼남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을 전개하던 동학농민군은 정부와 맺은 전주화약이 깨지면서 재차 기의(起義)하여 서울로 북진을 기도한다. 이 무렵에 불린 것은 〈가보세〉의 참요이다.가보세 가보세을미적 을미적병신되면 못 가보리....
    26.05.25 22:10 ㅣ 김삼웅(solwar)
  • 84화 동학혁명시기의 참요와 판소리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4] 전봉준을 녹두장군이라 불렀다. '녹두'는 크기가 작고 딴딴하여 전봉준의 상징처럼 인식 되었다

    국난기나 혁명기 또는 역성혁명 때이면 어김없이 각종 민요와 참요, 그리고 판소리 등 '민중의 소리'가 나타난다. 대부분 노랫가사의 형태를 띠고, 그 가사와 의미에는 각별한 뜻이 담긴다. 명확한 작사자, 작곡자도 없이 민중의 입을 통해 ...
    26.05.25 11:34 ㅣ 김삼웅(solwar)
  • 83화 김개남, 재판없이 즉결 처형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3] 사람들이 마치 호랑이처럼 두려워하였다.

    전봉준과 손화중 등 동학혁명 지도자들은 형식적이나마 사법절차에 따른 재판을 받았고 공초록(供招錄)이라는 판결문 등을 남겼으나, 김개남의 경우는 한양 압송 도중에 즉결 처형되었다.그가 압송되어 가는 길목마다 관헌들의 제지에도 ...
    26.05.23 20:10 ㅣ 김삼웅(solwar)
  • 82화 억울하고 분통한 김개남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2] "남조선을 개벽한다"는 뜻이 담긴다.

    좌절된 혁명가 치고 억울하고 분통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동학혁명기의 김개남(金開南, 1853~1894) 장군과 같은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동학혁명은 전봉준·김개남·손화중의 3대 지도자에 의해 전개되었다. 여기에 김덕명과 ...
    26.05.22 15:05 ㅣ 김삼웅(solwar)
  • 81화 전봉준, 의연한 혁명가의 기상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1] "올바른 도(道)를 위해 죽는 것은 조금도 원통하지 않으나 오직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는 것이 원통하다."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영사관은 31일 동안 전후 다섯 차례에 걸쳐 이른바 심문을 하였다.심문의 총 문항은 275개였고, 일본영사가 단독으로 심문하기도 하였다. 제1차는 1895년 2월 9일(음), 제2차는 2월 11일, 제3차는 2월 19일, 제4차는...
    26.05.21 15:02 ㅣ 김삼웅(solwar)
  • 80화 전봉준, 일본군이 서울로 압송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0] "너희는 외적을 이용하여 자국을 해하는 무리이다. 그 죄 가장 중대하거늘 나를 죄인이라 이르느랴."

    전봉준은 1894년 1월 고부에서 봉기하여 혁명을 시도한 지 1년 여 만에 허무하게 붙잡히고 말았다.붙잡히는 과정에서 발목·허리 등 온몸이 망가질 정도로 폭행을 당했다. 장정들은 그가 붙잡힌 뒤에도 사나운 몽둥이질을 하여 초주검을 ...
    26.05.20 15:03 ㅣ 김삼웅(solwar)
  • 79화 거액의 전봉준 현상금에 농민들 현혹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9] '불세출의 영웅 전봉준'은 하찮은 부하의 밀고와 무지몽매한 장정들의 손에 잡히고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일본군은 관군을 앞세우고 집요하게 추격하면서 전봉준에게 거액의 현상금과 군수직을 주겠다고 농민들을 현혹했다. 일본군은 닥치는대로 동학농민군을 학살하였다.전봉준은 일단 피신하기로 작정했다. 태인에서 ...
    26.05.19 15:22 ㅣ 김삼웅(solwar)
  • 78화 개혁에 실패한 역사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8]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패한 혁명가의 말로는 비참하다

    우리 역사에는 시대마다 걸출한 개혁주도의 인물이 있었다. 이들 중 몇 번 만이라도 성공하였다면 우리 역사의 전개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들은 그때마다 국정개혁과 만인평등을 주장하고 대외적인 민족자주와 혁신정책을 내세웠다....
    26.05.18 15:34 ㅣ 김삼웅(solwar)
  • 77화 각 지역 전투에서 동학농민군 밀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7] 오직 의기 하나로 뭉친 오합지졸의 동학농민군이었다

    오직 의기 하나로 뭉친 오합지졸의 동학농민군이었다. 정확한 정보와 우세한 무기·장비를 갖춘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일본군의 용병처럼, 관군 역시 크게 증원되고 일본군으로부터 무기와 장비를 지원받...
    26.05.17 19:50 ㅣ 김삼웅(solwar)
  • 76화 동학군 의기잃지 않고 세성산전투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6] 관군과 일본군이 지키고 있는 공주성을 점령하고 곧장 서울로 쳐 들어갈 계획이었다.

    우금치에서 패배한 동학군은 10월 중순 논산에 집결하여 일부의 병력을 후방에 배치하여 적의 침략에 대비하고, 주력 부대는 관군과 일본군이 지키고 있는 공주성을 점령하고 곧장 서울로 쳐 들어갈 계획이었다.비록 전투에는 패배하고 많...
    26.05.16 22:47 ㅣ 김삼웅(solwar)
  • 75화 관군과는 상전 피하고자 했으나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5] 동학군의 시산혈해를 이룬 참담한 패배였다.

    나 여기 왔노라. 잠든 땅 울리며시퍼런 죽창 두 손에 거머쥐고김제만경 큰 들 건너 떠나왔으니그 어찌 살아서 돌아가겠느냐?나 여기 왔노라. 어둠의 한가운데비로소 올바로 죽기 위하여해묵은 분노 위에 불을 지르고이제는 가슴의 피...
    26.05.15 15:09 ㅣ 김삼웅(solwar)
  • 74화 통한의 우금치전투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4] "총부리를 왜놈들에게 겨누어라. 왜 동족을 살상하느냐"

    이인리에서 공주읍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우금치고개다.고개가 험해서 소를 몰고는 넘을 수가 없는 고개, 즉 '우금치(牛禁峙)'의 금(禁)자가 금(金)자로 바뀐 것이라고도 하고, 이 고개에 금광맥이 묻혀 있어 소(牛)만한 금덩어리가 들어있...
    26.05.14 15:41 ㅣ 김삼웅(solwar)
  • 73화 일본군 앞잡이 노릇한 부류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3] 동학농민군의 진압을 계기로 일본군은 조선에 똬리를 틀고, 친일정권이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박은식은 <조선독립운동지혈사>에서 "동학당은 호미와 곰방메와 가시나무총을 들고 밭고랑에서 분기하여 우리의 관군과 일병을 상대하여 교전한지 9개월 만에 드디어 항복하였다. 이 변란통에 사망자가 30여 만 명이나 되었으니 미증유한 유...
    26.05.13 15:39 ㅣ 김삼웅(solwar)
  •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Copyright ©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