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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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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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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필자의 책 <신라의 삼국통일-무열왕과 김유신의 시대>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병합하고, 통일신라의 초석을 다진 7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그 시대의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옛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냄으로써 역사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보다 친절하고 쉽게 다가서고자 했다. 이 책의 내용을 수정-보완해 20회로 연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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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화전쟁 끝낸 문무왕, 신라의 힘 보여준 '문화예술 프로젝트'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13

    전쟁으로 황폐해진 신라는 문무왕 김법민이 삼국통일을 이룬 후 문화예술 부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동궁과 월지는 인공 호수를 파고 왕자를 교육시킬 동궁을 짓고 희귀한 꽃과 짐승을 들여와 왕실의 권위와 국가의 힘을 과시했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감은사를 완공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베트남의 후에 왕궁이나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처럼 왕조의 권위와 국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으며, 오늘날까지 경주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25.06.16 09:40 ㅣ 홍성식(poet6)
  • 12화"죽어서도 백성을 지키는 용이 될 테니, 바다에 장사 지내라"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12

    7세기 신라의 무열왕 김춘추는 탁월한 외교 전략으로 당나라와의 관계를 구축해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당태종으로부터 특별한 신뢰를 얻어 백제 침공을 위한 지원군을 확보했고, 귀한 선물과 함께 성대한 환송을 받았다. 그의 아들 문무왕 김법민은 아버지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삼국통일을 완성했지만, 평생 아버지의 그림자를 넘어야 한다는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문무왕의 '바다에 장사 지내달라'는 유언은 이러한 콤플렉스 극복의 마지막 시도였을 수 있다....
    25.06.14 13:10 ㅣ 홍성식(poet6)
  • 11화 문무왕이 태어나기 전, 외숙부 김유신의 '계획'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11

    문무왕 김법민은 뛰어난 능력과 외모, 정치적 혜택을 갖춘 채 태어났다. 그의 외숙부 김유신은 신라 태대각간이었고, 아버지 김춘추(무열왕)는 신라 통치자였다. 김유신은 자신의 동생 문희를 김춘추와 결혼시키는 '혼맥 형성 프로젝트'를 통해 신라 정통 귀족과 연결되었다. 문무왕은 661년부터 681년까지 신라를 통치하며 백제 부흥세력을 제압하고,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를 병합했으며, 5소경제와 9서당 군사조직을 마련했다. 그러나 위대한 외숙부와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그는 어떤 내적 갈등을 겪었을까?...
    25.06.13 09:23 ㅣ 홍성식(poet6)
  • 10화"전쟁서 차지한 땅, 누구 건가"로 벌어진 신라-당나라 7년 전쟁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10

    무열왕 김춘추, 흥무왕 김유신, 문무왕 김법민은 '삼한일통의 트로이카'로 불릴 만큼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했다. 660년 백제 병합,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신라는 당나라와 영토 문제로 갈등했다.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했고, 신라는 대동강 이남 영토를 차지하려 했다. 결국 7년간의 나당전쟁 끝에 676년 신라는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온전한 삼한일통을 이루었다. 이는 초강대국과 맞서 싸워 승리한 위대한 성과였다....
    25.06.12 10:26 ㅣ 홍성식(poet6)
  • 9화'고구려 절멸' 부른 혈족간의 알력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9

    668년 고구려 멸망과 기원전 207년 진나라 멸망 사이에는 900년의 시차가 있지만 놀라운 유사점이 발견된다. 두 왕조 모두 강력한 통치자(진시황과 연개소문)의 사망 후 간신의 횡포와 형제간 다툼으로 급속히 몰락했다. 진나라에서는 환관 조고가 호해를 조종했고, 고구려에서는 연정토가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형제 사이를 이간질했다. 결국 연남생은 당나라에 도움을 청했고, 668년 신라-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는 멸망했다....
    25.06.10 15:21 ㅣ 홍성식(poet6)
  • 8화고구려 멸망의 진짜 이유, 외세 위협 아닌 '내부 붕괴'였다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8

    고구려 멸망의 진짜 원인은 외세의 위협이 아닌 내부 붕괴였다.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666년 사망한 후, 그의 아들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장남 연남생이 대막리지 벼슬을 이어받았으나, 차남 연남건과 삼남 연남산의 모반으로 권력을 빼앗기고, 결국 당나라에 투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내분으로 약화된 고구려는 668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에 무참히 패배하며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25.06.09 11:59 ㅣ 홍성식(poet6)
  • 7화문무왕, 아버지 넘어서는 괄목할 업적 남겼다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7

    삼국통일의 주역을 논할 때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이 주목받지만, 실질적 통일을 완성한 이는 문무왕 김법민이었다. 무열왕의 적장자이자 김유신의 외손자로 태어난 문무왕은 661년부터 681년까지 재위하며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병합하고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 삼한일통을 완수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내 뼈를 동쪽 바다에 묻어 용이 되어 백성을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현재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해변의 대왕암이 그의 유택으로 추정된다....
    25.06.07 11:37 ㅣ 홍성식(poet6)
  • 6화"살아있다면 당할 치욕을 알기에..." 계백 장군의 비극적 최후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6

    충남 논산시 신풍리에 위치한 '계백 장군 유적지'는 660년 황산벌전투가 벌어진 역사적 현장이다. 이곳에서 신라와 백제는 생사를 건 전투를 벌였고, 최소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패배를 예상한 계백은 전투 전 "살아있다면 치욕과 고통을 알기에"라며 가족을 먼저 죽이고 5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전사했다. 이 전투로 백제는 멸망했고, 신라는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백제 멸망 1년 후 무열왕 김춘추도 세상을 떠났고, 13년 후에는 김유신도 생을 마감했다....
    25.06.04 15:33 ㅣ 홍성식(poet6)
  • 5화신라에 김춘추가 있다면 백제에는 계백이 있다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5

    660년 7월 벌어진 황산벌전투는 신라의 백제 침공 과정에서 발생한 결정적 전투였다. 신라는 의자왕을 무능하고 타락한 군주로 묘사하며 백제 침공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는 승자의 관점에서 쓰인 역사일 가능성이 크다. 백제의 명장 계백은 5천 명의 결사대로 신라의 5만 대군에 맞서 용맹히 싸웠으나 결국 패배했다. 그의 충절은 후대에 높이 평가되어 충남 논산에는 그의 유적지와 '계백로'가 조성되어 있다....
    25.05.31 16:03 ㅣ 홍성식(poet6)
  • 4화하루 2끼 식사로 '쌀 6말, 술 6말, 꿩 10마리'가 기록된 사연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4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원동력은 불교라는 이념, 화랑이라는 조직, 그리고 김유신과 무열왕 김춘추라는 두 인물이었다. 김춘추는 뛰어난 외교술로 당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신라의 입지를 강화했고, 김유신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했다. 두 사람은 혼인으로 맺어진 특이한 관계(처남-제부이자 장인-사위)였으며, 김춘추는 딸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비극도 겪었다. 무열왕 시절 신라는 물산이 풍족했고, 결국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25.05.29 16:11 ㅣ 홍성식(poet6)
  • 3화"제 아들 목을 베십시오" 간청했던 이 남자의 사연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3

    신라 명장 김유신의 화려한 전공 뒤에 숨겨진 비극적 이야기를 조명한다. 열다섯 살에 용화향도를 이끌고 백제·고구려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김유신은 첫사랑 천관과 이별해야 했고, 황산벌전투에서는 조카 반굴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했다. 또한 전투에서 패한 아들 원술에게 "너는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며 냉정하게 대했다.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김유신의 삶에는 이처럼 가슴 아픈 사연들이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25.05.28 16:35 ㅣ 홍성식(poet6)
  • 2화왕이 아니었는데 왕으로 모셔지는 장군이 있었으니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2

    신라의 장군 김유신은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15세에 화랑이 되어 삼국통일의 대업에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 군대까지 물리쳐 한반도 통일국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79세까지 장수하며 태대각간이라는 특별한 벼슬까지 받았고, 사후에는 '순충장렬 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다. 뛰어난 정치적 판단력과 군사적 능력을 갖춘 그는 항복한 적군을 용서하는 덕장의 면모도 보였으나, 반란을 진압할 때는 무자비한 모습도 보였다....
    25.05.25 19:41 ㅣ 홍성식(poet6)
  • 1화'삼한일통의 스타' 김유신과 김춘추의 유택을 찾아

    김유신과 김춘추의 시대를 돌아보다 1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가 신라에 병합되며 삼국통일이 완성됐다. 7세기 한반도는 수많은 전투와 외교 전략이 펼쳐진 드라마틱한 공간이었다. 이 연재기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김유신, 무열왕 김춘추 등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추적한다. 김유신은 화랑정신을 바탕으로 '인(仁)'을 실천한 신라의 대표적 무장이었으며, 김춘추는 뛰어난 외교력으로 국제전의 성격을 띤 통일전쟁에서 신라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들의 흔적을 경주에서 찾아보는 역사 여행을 통해 삼국통일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25.05.23 14:19 ㅣ 홍성식(poe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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