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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로 찾아가는 우리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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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로 찾아가는 우리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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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로 찾아가는 우리 읍성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고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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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화부산진성을 점령한 왜군이 남긴 몹쓸 유산

    부산 왜관의 시작과 부산진성의 기억 그리고 도시의기원

    부산은 전통의 중심 '동래'와 근대에 성장한 '부산'으로 갈려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1490년 증산에 쌓은 부산진성은 왜구 침략 방비와 왜관 관리를 담당했다. 1592년 임진왜란 첫 격전지가 된 부산진성은 정발 장군의 장렬한 전사에도 함락되었다. 왜군은 이곳에 왜성을 쌓았고, 전쟁 후 조선은 출성을 활용해 부산진성을 재건했다. 현재 자성대로 불리는 이곳은 임진왜란의 상흔을 간직한 역사적 유산이다....
    25.12.01 10:55 ㅣ 이영천(shrenrhw)
  • 49화웅천왜성 가는 길에 보이는 바다, 그곳에 이순신이 있었다

    경남 창원 웅천읍성과 제포, 웅포 해전의 바다를 찾아

    웅산과 불모산 사이에 자리한 웅천은 '곰메'라 불리던 바위에서 이름을 얻었다. 세종대왕은 1437년 왜구 통제를 위해 웅천읍성을 쌓았고, 제포와 웅포는 조선의 중요한 무역항이자 방어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1593년 웅포 해전에서 뛰어난 전술로 왜군을 격파하며 남해안 제해권을 굳건히 했다. 이 승리는 단순한 화력의 승리가 아닌 바다와 조류를 읽는 지혜의 승리였다. 오늘날 제포와 웅천은 많이 메워지고 도시화되었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살아있다....
    25.11.23 14:29 ㅣ 이영천(shrenrhw)
  • 48화압도적인 통영 건축물, 이름 뜻부터 남다릅니다

    한산도부터 세병관, 피랑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발자취를 찾아

    임진왜란 중 한산도대첩 승리 후 이순신이 초대 통제사로 임명되어 1592년 삼도수군통제영이 임시로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한산도에 위치했으나, 1604년 방어에 유리한 현재의 통영으로 공식 이전했다. 통제영은 성곽과 세병관, 포루 등을 갖춘 군사요새였으며, 백성 중심의 통치철학을 담았다. 특히 '피랑'으로 불리는 언덕은 통제영 시절부터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2000년대 들어 철거 위기에서 벽화마을로 재탄생하며 통영의 역사적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다....
    25.11.16 11:31 ㅣ 이영천(shrenrhw)
  • 47화인도까지 뻗어간 철의 왕국이 한눈에 보이는 곳

    가락국의 숨결이 깃든 김해읍성과 분산성

    김해 분산성은 가락국 왕성을 지키던 호위무사였다. 분산성에 오르면 천년의 시간이 한꺼번에 다가오며, 가락국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금관가야 왕성은 현재 봉황대 일대에 위치했으며,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다. 철기 생산으로 유명했던 가락국은 신라에 점령되었지만, 수로왕의 후손들은 김해 김씨로 2천년을 이어왔다. 조선시대 박위 장군이 1387년 분산성을 고쳐 쌓았으며, 왜구 소탕에 힘썼다....
    25.11.08 19:45 ㅣ 이영천(shrenrhw)
  • 46화왜군이 허물고 남은 성벽의 흔적, 견뎌주어 고맙다

    부산 죽성왜성과 어사암 그리고 기장읍성

    겨우내 얼었던 바람이 풀려 코끝을 간질이면, 대변항에선 멸치잡이가 한창이다. 대변항은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를 줄여 부른 이름으로, 조선 후기 민고(民庫)가 있던 항구다. 기장의 진성이 두모포에서 부산으로 옮겨진 후에도 창고는 같은 자리를 지켰다. 1884년 이도재가 젊은 시절 경험한 곡식 침몰 사건과 어사암 이야기,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축조된 죽성왜성의 흔적이 이 지역에 남아있다. 특히 1595년에 훼철된 기장읍성이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흔적으로 남아, 나라와 백성을 지켜내고자 했던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25.11.02 11:39 ㅣ 이영천(shrenrhw)
  • 45화"밀양사람 김원봉" 그 기개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아름다운 영남루를 품은 밀양읍성... 더할 나위 없이 푸른 고장, 그 풍광이 눈을 사로잡는다

    밀양은 '농밀한 햇볕'이란 뜻처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품은 도시다. 경주에서 발원한 동창천이 청도천과 합해 밀양강이 되고, 이 강이 삼문동과 가곡동 사이에 섬을 만들어 도시가 형성됐다. 영남루와 능파각 등 아름다운 누각이 강변에 자리하고, 네모난 성곽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1989년 시로 승격했으나, 1965년 21.5만이던 인구가 2025년 10만으로 줄어드는 지역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25.10.19 11:59 ㅣ 이영천(shrenrhw)
  • 44화'반달' 품은 APEC 도시, 모든 왕조가 떠받든 까닭

    시대를 살아 낸 꿋꿋한 경주읍성

    함월산이 품은 알천(북천)이 명활산성을 휘감아 돈다. 마립간 시대부터 고구려의 간섭을 견제하고자 부득이 이 산성에 웅거했던 신라는 이후 서라벌을 격자형 가로망을 갖춘 대도시로 발전시켰다. 고려는 경주를 동경유수관으로 지정하고 1378년 읍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했으며, 조선도 경주부로서 상당한 위상을 부여했다. 임진왜란으로 함락되었으나 비격진천뢰로 되찾은 경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성벽이 훼손되었으나, 최근 시민들의 노력으로 성곽 복원이 진행되며 도시 재생과 정체성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25.10.12 16:07 ㅣ 이영천(shrenrhw)
  • 43화센트럴파크에 뒤지랴, 한국 '네모' 읍성 가보셨나요?

    도심 한가운데서 생태계를 지키는 언양읍성

    울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언양읍성은 조선시대 평지형 읍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과학적으로 축조된 성벽과 해자는 방어 기능뿐 아니라 생태적 가치도 지닌다. 언양천의 맑은 물은 여전히 미나리 농사의 터전이 되고, 주변이 도시화로 빼곡해도 독립적인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도시 속 자연환경을 보존한 언양읍성은 현대 도시개발이 배워야 할 조상들의 지혜를 담고 있다....
    25.10.11 13:53 ㅣ 이영천(shrenrhw)
  • 42화쓸모 없는 것의 큰 쓰임, 하늘에서 보니 알겠네

    호미곶의 중심이었던, 포항 장기읍성

    장기읍성은 영일만을 통한 경주 방어의 핵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좁은 골짜기와 급경사 산지에 위치한 이 읍성은 겉보기에 쓸모없어 보이지만, 경주를 지키는 막둥이 역할을 했다. 또한 유배지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는데, 정약용 같은 인물이 이곳에서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다. 성곽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동문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풍경이 아름다우며, 지금도 성안에 주민들이 살고 있어 보존과 변화의 실마리로서 의미가 깊다....
    25.09.28 19:36 ㅣ 이영천(shrenrhw)
  • 41화300년 전 옛 냉장고, 전기 없이 돌린 조상들의 지혜

    석빙고를 따라 걷는, 맑은 눈망울의 우직한 소를 닮은 네모진 청도읍성

    이 글은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 첫째, 소싸움(소씨움)이라는 전통 민속경기에 대한 재고찰로, 과거 가족처럼 여겨지던 소가 경기의 대상이 된 문화적 배경과 현대적 관점에서의 동물복지 문제를 제기한다. 둘째, 청도석빙고의 과학적 원리와 가치를 소개하며, 300년 전 자연 냉장고의 지혜를 담은 이 문화유산과 함께 청도읍성의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가치를 조명한다....
    25.09.25 10:48 ㅣ 이영천(shrenrhw)
  • 40화갑자기 죽어나간 소년들, 사람들이 찾은 방법은 '숲'이었다

    왜군이 실록을 불살라도, 사드로 격랑에 휩싸여도... 중심을 잃지 않는 성주읍성

    참외 향기 가득한 성주는 조선시대 세종 때부터 사고(史庫)를 두어 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역사적 고장이다. 임진왜란 때도 의병들이 성주읍성을 지켜냈던 이곳에 2016년 7월,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가 배치되었다. 500년 수령의 왕버들이 우거진 성밖숲처럼, 성주는 오랜 역사와 지혜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로 들어선 사드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와 지역 경제에 타격을 주며 성주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25.09.14 12:12 ㅣ 이영천(shrenrhw)
  • 39화정조가 꿈틀거리는 용의 몸통으로 여긴 곳

    [수원 화성 ②] 10개년 계획으로 쌓은 성... 탄복할 만한 왕의 혜안

    화성은 정조가 구상한 10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된 신도시다. 4대 문루와 행궁을 갖춘 도성으로, 팔달산을 활용한 산성 기능을 겸한 최첨단 방어체계를 갖추었다. 정조는 애민정신으로 적정한 노임을 주어 자발성을 유도해 예상 공기 10년을 2년 9개월로 단축했다. 동북공심돈, 방화수류정, 화홍문 등 복합 기능을 수행하는 건축물들은 과학과 기술, 토목과 건축이 융복합된 도시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이러한 화성의 가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25.09.07 15:09 ㅣ 이영천(shrenrhw)
  • 38화"민가 철거는 안 돼" 정조의 뚝심이 만든 뭉클한 결과물

    [수원화성 ①] 성곽 둘레가 넓어진 이유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며 화성 축성을 계획했다. 다산 정약용이 설계한 화성은 버들잎 모양의 성곽 구조로, 남북으로 길고 동쪽으로 벗은 형태를 갖게 되었다. 성벽은 대포의 파괴력에 대비해 두터워졌고, 용도와 치성 등 방어시설을 갖추었다. 행궁이 동향인 것은 삼남대로의 방향을 꺾지 않으려는 실용적 배려였다. 화성은 군사도시이자 교통도시로, 팔달문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했다. 18세기 최첨단 기술과 과학을 망라한 신도시로 정조의 백성 사랑을 담았다....
    25.08.30 11:44 ㅣ 이영천(shrenrhw)
  • 37화'폐하' 글자 넣자 빼자, 한심한 싸움에 백성은 죽어 나가고

    역사상 가장 춥고 어두웠던 그 겨울의 기록, 남한산성 병자호란

    1971년 광주 대단지 항쟁처럼 처절한 도시빈민 항쟁이 있었으나 권력은 언론을 강압해 은폐했다. 남한산성은 한양을 지키는 동쪽 방어성으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6일간 갇혔던 곳이다. 성안에서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군사들이 죽어갔고, 홍이포 공포가 더해졌다. 주전파는 항복을 굴욕으로 보고 싸우다 죽는 것이 명예롭다 여겼으며, 주화파는 살아남아 위기를 넘기자고 주장했다. 이 역사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현대에도 던진다....
    25.08.23 19:43 ㅣ 이영천(shrenrhw)
  • 36화북한산과 남한산 딱 중간, 여길 차지한 세력이 한반도 지배했다

    '북한산성' 명문 기와가 신라의 성임을 보여 준 아차산성

    힘겹게 서울에 다다른 한강이, 마지막 힘을 다해 이 산에 머리를 세게 부딪는다. 아차산이다. 그리곤 곧장 몸통을 비틀어 휘어나가며, 멀리서부터 싣고 온 고운 흙을 맞은편 벌판에 차곡히 쌓아 올린다.감입곡류하천이 만들어낸 충적평야다. 백제...
    25.08.18 20:29 ㅣ 이영천(shrenrhw)
  • 35화천문학적 비용 들더라도, 무조건 보존해야 할 '땅 속 고대도시'

    1500년의 비밀을 간직한 풍납토성

    풍납토성은 1925년 대홍수로 서쪽 성벽이 무너지며 1500년 비밀이 드러난 한성백제 도읍지다. 1963년 첫 유적조사 이후 백제문화면과 풍납리식무문토기 등이 발견되었으나, 성벽만 사적으로 지정되고 성안은 문화재보호구역에서 제외되었다. 1997년 한 역사학자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백제 유물을 발견했으나, 결국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경당 연립과 미래 마을 재건축 과정에서 신전 추정 건물지와 우물, 도로 흔적 등이 발견되었다. 성벽은 3차례 이상 증축되어 최종 11m 높이로, 80만㎥의 흙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5.08.10 15:21 ㅣ 이영천(shrenrhw)
  • 34화강남 주택가 한복판에 돌로 쌓은 피라미드형 고분이?

    1500년의 꿈을 간직한몽촌토성과 석촌, 방이의 고분군

    몽촌토성은 한성백제의 도성인 하남위례성의 실체다. 한강 남쪽에 위치한 이 토성은 북쪽으로 한강, 동쪽으로 남한산, 서쪽으로 낮은 평지를 두고 자연지형을 활용해 지어진 천혜의 요새였다. 475년 가을, 고구려 장수왕의 3만 대군이 침공해 7일간의 공방 끝에 함락되었고, 개로왕은 도망치다 살해되었다. 토성 남쪽 송파와 삼전, 방이동 일대에는 300여 기의 백제 고분군이 있었으나, 도로 공사와 개발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되었다....
    25.08.03 14:04 ㅣ 이영천(shrenrhw)
  • 33화하루에 총 7번 공격한 왜군, 이걸 다 막아낸 장군

    행주산성, 흔적마저 희미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위용... 벽제관 전투와 행주대첩의 권율

    한강변 덕양산에 자리한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9천 명의 병력으로 3만 왜군을 물리친 행주대첩의 현장이다. 1593년 2월 12일 일곱 차례에 걸친 왜군의 공격을 조선군의 필사적 저항으로 막아냈으며,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 함께 싸운 '행주치마'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낮은 토성만 남아있지만, 유유한 한강과 함께 그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25.07.28 18:38 ㅣ 이영천(shrenr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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