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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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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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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춘암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치밀하고 치열하게 대처하였다. 일제는 조선근세사에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독립혁명의 뿌리에 동학이 존재함을 꿰고 있었다. 동학혁명 당시 무라타소총 등 현대식 병기로 25~30만 명을 학살한 것이나, 3.1혁명 당시 비무장 시위의 한국인 7.509명을 죽이고 15.961명의 부상, 피검자는 46.948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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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화 춘암 박인호선생 약력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9]

    •1855 - 2월 1일 충남 덕산군 막동리(예산군 삽교읍 하포리)에서 출생•1833(29) - 3월 18일 동학 입도. 해월신사와 의암성사와의 첫 만남. 가섭사 49일 기도식. 10년 독공과 연성 수련•1893(39) - 복합상소 신원운동에 참가•18...
    24.07.06 09:32 ㅣ 김삼웅(solwar)
  • 38화 덧붙이는 말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8] 평생을 동학과 천도교의 역사와 함께한 인물

    춘암 박인호 선생의 장례는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다. 연고도 없는 경기도 포천시 소월읍에 묻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뒤늦은 1990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2009년 천안 독립기념관에 건립된 애국지사 어록비에는 고인의 '멸...
    24.07.05 13:30 ㅣ 김삼웅(solwar)
  • 37화 〈춘암상사 박인호 유허비〉 비문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7]

    1985년 5월 7일 선생의 출생지인 충남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 1구에 각계 인사와 주민·교인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춘암상사 박인호 유허비〉가 제막되었다. 비문이다.근세 조선의 기운이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조를 지...
    24.07.04 13:43 ㅣ 김삼웅(solwar)
  • 36화 측근이 본 '춘암상사 어록'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6] 춘암의 곁에서 지켜보았던 생생한 기록

    천도교 종법사 이종해는 춘암의 서거 50주기를 맞아 <춘암 상사의 어록>을 기고했다. 나이 7세 때부터 21세 때까지 춘암의 곁에서 지켜보았던 생생한 기록이다. 일부를 소개한다. 교인은 거짓말을 말아야 한다. 거짓말 하...
    24.07.03 13:14 ㅣ 김삼웅(solwar)
  • 35화 1천여 조객 참석한 영결식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5] "진실로 춘암상사는 성현이시다."

    4월 7일 상오 9시에 내수동에서 정광조의 집례로 성복식을 거행한 후에 운구가 발인되어 10시에 중앙대교당에서 영결식을 거행하였다.영결식은 박완의 사회로 주악 속에 개식하여 심고와 주문 병송이 있고. 장의 위원장 권동진의 식...
    24.07.02 13:33 ㅣ 김삼웅(solwar)
  • 34화 1940년 4월, 86세로 순교·순국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4] 역사상 보기 힘든 격변과 암흑기

    춘암이 살았던 시기는 우리 역사상 보기 힘든 격변과 암흑기였다.태어나 성장, 중년기는 한말 봉건체제의 반상질서에서 구성원 대부분이 천부인권과 생존권이 제한되었으며, 56세 때에 나라를 잃은 망국노의 처지로서 식민지 백성이 ...
    24.07.01 14:45 ㅣ 김삼웅(solwar)
  • 33화 청빈한 사생활, 자식들도 항일전선에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3] 원래 가난한 살림인데다

    춘암은 남씨 부인과의 사이에 박래원·박래철·박래천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여기에 종숙인 박상호의 아들 박래홍이 사자(嗣子)로 수양되었다. 아들들도 모두 동학·천도교에 입도하여 치열하게 항일투쟁을 벌였다. 원래 가난한 살림인데...
    24.06.30 11:53 ㅣ 김삼웅(solwar)
  • 32화 '멸왜기도' 실시 왜국패망 시도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2] 사회변혁을 외치다 희생당한 순교

    춘암의 장엄하고 통렬한 항일투쟁의 마무리 사업은 1936년 8월 14일 상경한 교회지도자들에게 도인들로 하여금 극비리에 식사 때마다 일제의 멸망을 재촉하는 기도 즉 '멸왜(滅倭)기도'를 지시한 일이다. 일제는 중국 침략전쟁을 앞두고 ...
    24.06.29 12:06 ㅣ 김삼웅(solwar)
  • 31화 카리스마 대신 공덕심의 리더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1] 소수파의 리더로서 천도교를 이끌고 지켰다

    춘암이 '멸왜기도'를 시도할 때는 이미 80이 넘은 고령이었다. 타고나기를 건강체질인 데다 생애를 온통 동학과 천도교의 맨 앞줄에서 활동하느라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다. 이 무렵 일제는 조선농지령을 선포하면서 농민들을 더욱 옭...
    24.06.28 14:01 ㅣ 김삼웅(solwar)
  • 30화 신간회 창립에 천도교 큰 역할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30] 신간회는 일종의 정당구실을 하였다

    3.1혁명 후 춘암이 주도하는 천도교는 주요 항일민족운동에 참여하였다. 동학농민혁명과 3.1혁명을 주도한 민족주의 DNA가 여전히 동인(動因)으로 작동한 것이다. 춘암은 천도교 수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간부·아들·조카...
    24.06.27 13:41 ㅣ 김삼웅(solwar)
  • 29화 민족세력과 연대 6.10만세운동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29] 항일민족정신이 이를 계기로 분출해

    3·1혁명이 좌절되면서 우리 독립운동은 한동안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만주의 무장 독립투쟁 진영도 일제의 경신참변 등 교포학살로 근거지를 잃고 연해주 방면으로 밀려났다. 러시아에서는 자유시참변사건으로 독립운동 진영끼리 엄청난...
    24.06.26 13:25 ㅣ 김삼웅(solwar)
  • 28화 천도교 청년당활동, 아들 피살 당해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28] 청년동맹 대표이던 춘암의 아들 박래홍이 피살되는 참극 겪어

    어느 시대나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조직·단체에는 이견과 이해관계에 따라 분파현상이 나타난다. 천도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병희 서거 후 파벌현상이 심화되었다. 뒷날이지만 1933년 총독부 경무국 자료는 당시 천도교 각파의 정치적...
    24.06.25 13:44 ㅣ 김삼웅(solwar)
  • 27화 여성잡지 발행과 '여성동맹' 발족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27] "문명을 취하고 개조를 해임할 때"

    천도교의 기본정신에는 여성해방의 가치가 큰 몫을 차지한다. 이것은 동학창도자 수운으로부터 역대 교주로 이어지는 천도교의 정맥이다. 수운은 '사인천(侍人天)' 사상을 중심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면서 유교의 여성 억압적 ...
    24.06.24 13:58 ㅣ 김삼웅(solwar)
  • 26화 '개벽' 등 민족문화운동 지원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26] 선배들의 유훈을 되새기며 문화사업을 벌였다

    일제가 3.1혁명의 거센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긴 했으나 조선민중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깊어졌다. 해서 통치의 전략전술을 바꿨다. 더 이상 헌병경찰의 힘만으로는 조선민중을 다스리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문화정치'...
    24.06.23 13:49 ㅣ 김삼웅(solwar)
  • 25화 뿌리 깊은 내분, 김연국의 이탈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25] 교주직을 사임하시었다

    천도교의 내분은 뿌리가 깊었다. 해월의 수제자 3인, 즉 의암 손병희, 송암 손천민, 구암 김연국을 삼암(三菴)이라 불렀다. 손천민은 동학혁명 과정에서 관군에 붙잡혀 처형되고, 김연국은 손병희가 3세 교주(대도주)가 된 ...
    24.06.22 11:24 ㅣ 김삼웅(solwar)
  • 24화 손병희 서거 후 내부분열 심화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24] 박인호의 교주 활동은 순탄치 못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그랬듯이 1919년 3.1혁명 역시 일제의 무력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혔다. 3.1혁명은 시종 비폭력 평화적인 시위였는데도 일제는 포악무도하게 한국인을 살상하고 투옥하였다. 춘암은 경성복심원(최종심)에서 2년형을...
    24.06.21 14:16 ㅣ 김삼웅(solwar)
  • 23화 민족대표들과 함께 일제법정에 서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23] 박인호 선생 취조서

    춘암은 손병희가 3·1혁명으로 피체된다면 천도교의 운영이 어려워질 거란 고심 끝에 그를 민족대표 33인의 명단에서 제외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독립운동 기금 모금 혐의로 3월 10일 그를 구속하였고, 민족대표 48인 중 1인으로 재판에 ...
    24.06.20 13:31 ㅣ 김삼웅(solwar)
  • 22화 3.1혁명, 민족대표 48인으로 구속돼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 22]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지 9년 만이다

    천도교는 일제에 대대적인 항거를 통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코자 은밀히 그리고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하였다. 이승훈을 통해 기독교, 한용운을 통해 불교계의 동조를 받아냈다. 1919년 3월 1일 거사가 예정되고, 천도교에서 15인, 기...
    24.06.19 13:26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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