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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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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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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박영효가 일본에 있는 김옥균 묘비문에서 절묘하게 요약한 것처럼, 격동기 변혁을 주도했던 선각자 김옥균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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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화 실패한 혁명이 뿌린 근대의 싹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9] 마지막회

    김옥균ㅡ그는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그의 사후 130여 년이 되는 지금까지 고균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우리 근대 인물 중 그처럼 포폄이 갈리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의 죽엄(죽임)이 보여주듯이 능지처사로 하여 시신이 안...
    23.08.15 07:38 ㅣ 김삼웅(solwar)
  • 38화 '치도약론'의 논설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8]

    김옥균은 험난했던 생애로 인해 글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그 중에 『한성순보』1884년 5월 11일자에 쓴 「치도약론(治道略論)」은 그 시기 개화파 지식인의 대표적 논설로 읽힌다. 고종의 위임장을 갖고 일본을 몇 차례 다녀온 후에 쓴 글이다. 당...
    23.08.14 07:25 ㅣ 김삼웅(solwar)
  • 37화 '매화 한 잎 지다' 중편소설 남겨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7]

    그의 다양한 재능은 문학부문에도 족적을 남겼다. 암살(1894) 당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알려진〈매화(梅花)한잎지다〉라는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이어령이 주간이던『문학사상』에서 발굴하여 1977년 4월호에 전문을 게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3.08.10 16:01 ㅣ 김삼웅(solwar)
  • 36화 위난 속에서도 호기 보여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6]

    김옥균은 다방면에 조예가 깊고 사교성이 넘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33세에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실패, 역적의 꼬리표를 달고 일본에 망명하여 10여 년 힘겨운 생을 유지했다. 그리고 중국 상하이에서 암살당했다. 일화가 많고 비화도 ...
    23.08.09 15:56 ㅣ 김삼웅(solwar)
  • 35화 일본에서 장례식 묘비 세워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혁명가는 암살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다.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다르지 않다. 성공하면 동지간에 또는 외세에 의해, 실패하면 상대측에 의해 죽음(죽임)이 따라 다닌다. 대표적인 사례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와 쿠바 혁명...
    23.08.08 21:21 ㅣ 김삼웅(solwar)
  • 34화 '대역부도' 죄명, 암살범은 승승장구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4]

    김옥균의 시신은 이홍장의 지시에 따라 중국 군함 위에징호에 실려 4월 12일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1884년 10월 인천항을 떠나 일본 우편선으로 고국을 떠난 지 10여 년 만에 고인이 되어 그곳으로 돌아왔다. 이 배에는 암살범...
    23.08.07 21:49 ㅣ 김삼웅(solwar)
  • 33화 냉대·감시했던 일본의 호들갑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3] 청국과 일본의 국제적 현안이 되었다

    큰 나무는 쓰러진 다음에 그 크기를 알 수 있다고 했다.김옥균의 암살은 조선은 물론 청국과 일본의 국제적 현안이 되었다. 청국의 북양대신 이홍장은 "김옥균은 조선에서 반란을 꾀한 수범(首犯)으로 이제 조선인에 의해 상하이 조계지에서 피...
    23.08.07 09:45 ㅣ 김삼웅(solwar)
  • 32화 암살범, 김옥균에 3발의 총탄 발사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2] '풍운아' 김옥균은 한 조각의 운석(隕石)처럼 볼품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김옥균과 수행원들은 3월 27일 오후 상하이에 도착했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미국조계지 내티에마로 소재의 동화양행(東和洋行)에 여장을 풀었다. 홍종우의 김옥균 암살 관련 연구자 조재곤이 '재구성한 김옥균 암살사건'의 약사이다.1. 김옥균 ...
    23.08.04 07:28 ㅣ 김삼웅(solwar)
  • 31화 위장한 암살범 홍종우와 함께 청국행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1] 홍종우는 누구이고, 왜 청국행의 동행자가 되었는가

    한 인물이 조·중·일 삼국의 '국책사업'으로 제거의 대상이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김옥균이 처음이다. 조선에서는 반역의 수괴로, 일본에서는 조·중과의 외교분쟁의 요인으로, 청국에서는 친일반청주의자로 각각 낙인하고 있었다. 일...
    23.08.03 07:30 ㅣ 김삼웅(solwar)
  • 30화 '삼화주의(三和主義)' 구상하며 청국행 준비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30] 청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동양평화를 유지하고자 행동에 나섰다

    도쿄에 돌아와서는 어느 정도 감시가 느슨해졌다. 각계 인사들과도 만날 수 있고 신문·잡지도 접하게 되었다. 동북아 정세가 크게 우려되었다. 진원지는 일본의 침략주의 사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서이다. 김옥균은 '...
    23.08.02 07:22 ㅣ 김삼웅(solwar)
  • 29화 홋카이도 거쳐 도쿄로 돌아와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9] 김옥균은 '삼화주의(三和主義)'를 구상하였다

    김옥균의 혁명가적 기질은 아무리 험난한 고초와 시련에도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딴 섬에 갇혀서도 계속하여 일본 정부에 그 부당성을 항의하고 언론에 폭로하였다.구미자본주의 열강과의 '조약개정' 문제와 관련...
    23.07.31 13:39 ㅣ 김삼웅(solwar)
  • 28화 외딴섬 오지에 억류시켜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8] 일본 정부의 악독한 박해책동

    불우한 시기에 '불온'한 신념을 갖고 살아온 김옥균에게 잇속만을 추구하는 일본에서의 망명생활은 고달팠다. 여기에 고국에서는 끊임없이 자객을 보내고, 청국은 반청노선의 그를 언제까지 살려두고 싶지 않았다. 고립무원 - 이런 상태...
    23.07.29 17:31 ㅣ 김삼웅(solwar)
  • 27화 고종에게 보낸 상소문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7] 민가 일당을 축출하고 개화파를 등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해

    조선 정부는 1886년 5월 자객 장갑복과 지운영에게 임금의 위임장을 주어 일본으로 보내 김옥균을 살해하고자 했다. 이런 정보를 알게 된 김옥균은 함께 망명한 측근 유혁로 등에게 그들과 접촉하여 모해의 의도와 방법을 캐내도록 하였...
    23.07.28 15:48 ㅣ 김삼웅(solwar)
  • 26화 '갑신일록'의 배경과 내용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6] 김옥균은 이들의 처사에 배신감을 드러내고...

    김옥균은 1885년 겨울에 <갑신일록(甲申日錄)>을 저술했다. 지극히 어려운 시기에 갑신정변(갑신혁명 또는 갑신쿠데타)의 내용을 스스로 기록한 데서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연구자의 분석이다.그러면 김옥균은 어떠한 동기...
    23.07.27 15:29 ㅣ 김삼웅(solwar)
  • 25화 망명지의 고난과 치욕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5] 김옥균은 생명을 부지하기도 힘겨운 상황이 되었다

    갑신정변 후 조선의 수구세력은 비열하고 일본 정부는 교활했다. 김옥균은 일본에서 비참한 망명생활을 하면서 신문보도나 사적인 채널을 통해 들은 두 나라의 처사에 긴 한숨을 쓸어내릴 수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그리고 거사에 실패한...
    23.07.26 15:28 ㅣ 김삼웅(solwar)
  • 24화 '돌밭경작'의 심경으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4]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적대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은 일반에게 우선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일본식 이름을 지었다. 이와작(岩田周作)이다. 이를 두고 딱딱한 돌밭을 경작하는 것처럼, 노력은 하지만 공이 없는 즉 노이무공(勞而無功)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따랐...
    23.07.25 15:58 ㅣ 김삼웅(solwar)
  • 23화 33세, 망명객의 신세되어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3] 일본 망명길도 쉽지 않았다

    일본 망명길도 쉽지 않았다. 일본의 이중성 때문이다. 김옥균과 그의 동지들은 인천에서 일본의 우편선 치토세마루(千歲丸)에 승선하였다. 일본공사 타께조에도 함께 탔다. 그런데 청나라의 앞잡이 뭴렌도르프가 수명의 청군을 대동하고 ...
    23.07.24 15:44 ㅣ 김삼웅(solwar)
  • 22화 일본공사관으로 피신, 가족은 멸문지화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22] 정변의 실패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김옥균이 어릴 때에 지었다는 "달은 비록 작지만 온천하를 비춘다"는 원대한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이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역적'이란 죄명이 붙고 더 이상 국내에서는 생존이 어려워 일본으로 피신하고자 했다. 망명객의 신세가 ...
    23.07.23 15:49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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