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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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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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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석주(石州) 이상룡(李相龍, 1858~1932) 선생은 붓 대신 무기를 들고 의병활동→애국계몽운동→친일파 송병준ㆍ이용구 등 처단 상소→해외망명에 나섰다. 노마드의 개척정신이 아니고는 실천이 어려운 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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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화3,500명 배출 무장투쟁 지도자로 활동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21] 신흥무관학교는 무장독립운동의 사관을 육성한 요람이었다

    신흥무관학교는 10년 동안 통칭 3,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으로 연구되었다. 1912년 가을에 속성 특과로 11명을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속성과 본과의 졸업자가 1,2백 명 씩이었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매년 졸업자 수는 일정하...
    23.06.02 15:16 ㅣ 김삼웅(solwar)
  • 20화졸업 후에는 신흥학우단으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20] 서간도 우리 독립운동의 핵심체로 성장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졸업생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조직화하는 '신흥학우단'을 결성하였다. 교장 여준, 교감 윤기섭과 제1회 졸업생 김석, 강일수, 이근호 등이 발기하여 조직한 것으로 교직원과 졸업생은 정단원이 되고 재학생은 준단원이 되...
    23.06.01 15:27 ㅣ 김삼웅(solwar)
  • 19화추위와 혹한에도 학도들 의기충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9] 신흥무관학교에서는 '애국가'를 비롯하여 각종 군가를 우렁차게 불렀다

    무엇이,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신흥무관학교의 청년들과 교관들에게 이같은 열정과 투지를 갖게 하였을까.조국 독립의 대명제와 더불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지도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그 생명력이 ...
    23.05.31 15:31 ㅣ 김삼웅(solwar)
  • 18화병기 구하지 못해 이론 교육으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8] 군사교련의 실시에는 비용 관계로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신흥무관학교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유능한 독립군관을 양성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군사학술교련에 중점을 두었다. 중등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본과와 무관훈련을 시키는 군사과로 나뉘었지만, 본과에서도 군사교련에 비중을 두고 학생을 ...
    23.05.30 15:20 ㅣ 김삼웅(solwar)
  • 17화신흥무관학교 교장 맡아 경영 책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7] 교사 신축 공사는 학생·교사들과 동포 주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교사 신축 공사는 학생·교사들과 동포 주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초가을부터 내린 눈이 계속 쌓여 3월 하순까지 녹지 않고 꽁꽁 언 땅을 파고 볏짚을 섞어 토담을 쌓는 기초 공사였다. 공사는 7월에야 끝낼 수 있었다. 1912...
    23.05.29 18:33 ㅣ 김삼웅(solwar)
  • 16화신흥무관학교 창설, 주지사 허가 받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6] 중국정부의 양해로 당당하게 독립군 양성의 군관학교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꿈은 무관학교를 세워 대일전쟁을 통해 왜적이 점령한 국토와 국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신민회 계열 인사들의 열망은 한층 강렬했다. 자신들이 그곳으로 망명한 기본 이유였기 때문이다. 이상룡 역시 더하면 ...
    23.05.28 17:49 ㅣ 김삼웅(solwar)
  • 15화이주동포 많아지자 활력 '만주기사' 짓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5] 그는 뒷날 이 시기를 <만주에서 겪은 일(滿洲紀事)>에서 시로 엮었다

    매년 봄 가을로 만주 동삼성 방방곡곡에 널린 한인부락에 수십 호씩의 이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의가 단봇짐에 짚신 몇 켤레, 바가지 하나 대롱대롱 차고 오는 행각이었다. 이들이 자리 잡히면 또 불러오곤 해서 만주땅은 우리 한인들...
    23.05.27 15:30 ㅣ 김삼웅(solwar)
  • 14화일제의 토지 수탈, 만주이민 급속 증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4] 소작농들은 고율의 소작료와 각종 세금으로 이중 삼중의 수탈을 당해야 했다

    일제는 병탄과 함께 가장 먼저 토지수탈작업에 착수하였다.조선총독부는 1910년 8월 30일 제령(制令) 제2호로 토지조사령을 발표하여 전국적인 토지조사사업을 벌였다. 토지조사령 제4조는 '토지소유자는 조선총독이 지정하는 기간 ...
    23.05.26 15:24 ㅣ 김삼웅(solwar)
  • 13화중국 정부 당국에 공한 보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3] 지방정부에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이상룡은 부민단을 이주 한일들의 자치·신흥기관으로, 종국적으로는 무장독립군 양성소로 만들고자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위안스카이의 도움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나 지방정부에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
    23.05.25 15:15 ㅣ 김삼웅(solwar)
  • 12화부여 옛 땅에 후예들이 <부민단> 창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2] 만주의 허허벌판은 흰옷 입은 우리 민족들로 하얗게 덮여갔다

    경술국치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만주로 옮겨왔다. 왜적의 종살이를 거부하는 우국충정의 이주민들이 있었고, 그냥 먹고살기 위해 떠나온 유랑민들도 있었다. 다달이 다르게 이주동포 숫자가 늘어나면서 곳곳에 한인촌이 생겼다. 허은 여사의 기록이...
    23.05.24 15:41 ㅣ 김삼웅(solwar)
  • 11화광업사에 이어 자신계 조직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1] 수전 개간을 통한 동포들의 농업 발전을 도모해

    이상룡은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치한 데 이어 광업사(廣業社)를 조직하여 수전(水田) 개간을 통한 동포사회의 농업발전의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문제는 토지는 물론 황무지라도 한인 이주민이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다. 향후 독립...
    23.05.23 15:36 ㅣ 김삼웅(solwar)
  • 10화경학사 부설 신흥강습소 설립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10] 한 주민의 옥수수 창고를 임시로 빌려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이상룡과 민족지도자들은 경학사의 운영이 어려운 중에도 경학사 부설로 신흥강습소를 설립하여 동포자녀들의 군사교육을 서둘렀다. 경학사가 민단적인 성격을 띤 자치기관이었다면 신흥강습소는 독립군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
    23.05.22 15:24 ㅣ 김삼웅(solwar)
  • 9화척박한 환경, 경학사 중심의 한인사회 구축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9] 척박한 이국땅에서 경학사의 운영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경학사를 중심으로 뭉친 한인들은 척박한 만주의 땅을 개간하여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국내에서 애국정신을 가진 동포들을 더욱 불러들이며 한인사회의 기반을 일구어 나갔다. 경학사 회원들의 노력으로 이후 삼원포에는 많은 애국동포...
    23.05.21 16:47 ㅣ 김삼웅(solwar)
  • 8화만주에서 자치기관 경학사 설립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8] <경학사 취지서>를 발표하여 조국광복의 방략을 내외에 반포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구축하려는 것은 지리적으로 국내와 가깝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고대로부터 한민족의 강역이었다는 '고토(古土)의식'도 크게 작용했다. "만주는 단군 성조의 영토이며 고구려의 강역이라, 비록 ...
    23.05.20 17:22 ㅣ 김삼웅(solwar)
  • 7화만주 횡도천에 망명 짐 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7] 가족이 아닌 척 일행을 분산시켜 차디찬 겨울 밤 압록강을 건넜다

    경술국치라는 미증유의 국난 속에서 이상룡은 단호했다.많은 지식인과 민중들이 역사의 격변을 맞아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할 때 그는 추진해온 대로 해외 망명을 결행했다. 그동안 집안 일을 해온 머슴들을 모두 해방시키고 ...
    23.05.19 15:26 ㅣ 김삼웅(solwar)
  • 6화국치로 절망, 해외망명길 찾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6] "어찌 속수무책의 희망 없는 귀신이 될 수 있겠는가?"

    일본은 1876년 불평등한 강화도조약 이래 조선침략의 야욕을 품고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였다. 동학혁명을 무차별 학살하고 궁궐을 침범하여 왕비를 죽였다. 그리고 제물포조약(1882년), 한성조약(1884년), 한일의정서(1904년), 을사늑...
    23.05.18 15:24 ㅣ 김삼웅(solwar)
  • 5화 의병 지원에서 계몽운동으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5] 국난기를 맞아 역사의식에 눈이 트인 이상룡

    국난기를 맞아 역사의식에 눈이 트인 이상룡은 고향 안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초기에는 가야산을 무대로 하는 의병기지 건설이었다. 이상룡은 경남 거창군 가조(加祚)의 의병장인 차성충과 연락하며 가야산에...
    23.05.17 15:21 ㅣ 김삼웅(solwar)
  • 4화대한협회 안동지회조직, 일제에 구속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 보수 유림의 비난과 일제의 감시로 난관에 부딪혀

    1894년은 국내외적으로 격변의 해였다.동학농민혁명에 이어 일본군이 수원 부근 풍도에서 청국군함을 선제공격함으로써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정부의 갑오개혁, 동학군 2차봉기 등이 계속되었다. 이땅의 남반부에서는 일본군에 의해 ...
    23.05.16 15:29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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