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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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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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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석주(石州) 이상룡(李相龍, 1858~1932) 선생은 붓 대신 무기를 들고 의병활동→애국계몽운동→친일파 송병준ㆍ이용구 등 처단 상소→해외망명에 나섰다. 노마드의 개척정신이 아니고는 실천이 어려운 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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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화 3등급 훈격에 재심 신청했으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50] 공적에 비해 너무 낫다는 평이 따랐다

    정부는 1962년 석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공적에 비해 너무 낫다는 평이 따랐다. 선생의 유해는 순국 60년 만인 1990년 고국으로 돌아와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가 서울 국립현충원 임시정부 요인 묘역으로 이장하였다.&n...
    23.07.01 14:23 ㅣ 김삼웅(solwar)
  • 49화 유고와 손부가 쓴 운명의 모습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9] "한국땅이 되기 전에는 유해를 고향으로 가져가지 말라."

    석주 선생은 참으로 다양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큰 테두리로 나누어, 문인인가 하면 무인이다. <석주유고>에 담긴 수 백편의 시와 각종 산문은 웬만한 문인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1913년 저술한 <대동역사>는...
    23.06.30 15:53 ㅣ 김삼웅(solwar)
  • 48화 풍채 의젓하고 도량은 크고 두터워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8] 석주 선생의 <행장>을 쓴 권상규의 기록이다

    석주 선생의 아들 준형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아버지를 모시면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석주유고>를 포함한 그의 유고는 아들의 노력으로 보존·집합되었다. 곁에서 지켜본 부친의 모습이다.부군은 풍채가 의젓하고 기국(器局)이...
    23.06.29 15:30 ㅣ 김삼웅(solwar)
  • 47화 가족·일가친족의 항일투쟁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7] 석주 이상룡 선생은 선각자였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선각자였다. 기득권을 버린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안동 지역의 뿌리 깊은 보수유림의 고루한 외투를 벗어던지고 맨 먼저 혁신유림의 기치를 들었다. 시대의 징후를 예감한 파격의 의식세계 쇄신이...
    23.06.28 15:46 ㅣ 김삼웅(solwar)
  • 46화 75세 서거, '국토회복되기 전에는 이곳에 묻어라'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6]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터럭 만큼이나 가볍기도 하다."

    만주의 한인 독립운동지도자들은 이 시기 이중삼중의 곤경에 놓여 있었다. 일제 외에도 '미쓰야 협정'으로 중국 관리들이 독립운동가를 검거하고, 중국 민간인들은 현상금이 탐을 냈다. 이상룡은 여러 차례 거처를 옮겨야 했다. 손자 병...
    23.06.27 16:37 ㅣ 김삼웅(solwar)
  • 45화 고향에서 동생이 모시러 왔으나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5] "일을 이렇게 벌여 놓고 나만 들어갈 수 없다"

    53세의 늦은 나이에 망명하여 그야말로 풍찬노숙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70고개에 다달았다. 날이 갈수록 포악성이 더해가는 일제의 포위망은 드넓은 만주땅을 종횡하며 압박하였다. 위기감을 느낀 후배 독립운동가들이 안전을 위해 더 깊...
    23.06.26 16:09 ㅣ 김삼웅(solwar)
  • 44화 남만주로 돌아왔으나 체력 약화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4] 이상룡은 가족이 있는 남만주 반석현 호란으로 돌아왔다

    이상룡은 가족이 있는 남만주 반석현 호란으로 돌아왔다.상하이를 다녀온 후 체력이 크게 약화되어 거의 외부출입이 어려웠다. 이즈음 중국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1925년 6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三矢)가 중...
    23.06.25 15:09 ㅣ 김삼웅(solwar)
  • 43화 국무령 사임하고 다시 서간도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3] 김구가 선출되는 곡절을 겪으면서 임시정부는 겨우 정상화되었다

    이상룡의 조각은 실패했다. 각료에 지명된 인사들이 하나같이 취임을 사양(거부)한 것이다. 상하이 쪽 인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여 주로 만주의 무장독립운동가들을 기용했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이상룡은 만주지역에서 ...
    23.06.24 18:04 ㅣ 김삼웅(solwar)
  • 42화 상하이 삼일당에서 초대 국무령 취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2] "국민 전체가 온전히 대동단결의 조직선에서 함께 분투하여야 하겠으며"

    이상룡은 상하이로 떠나기 전 연락이 가능한 만주의 여러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두루 만났다. 간도참변 이후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통의부→의군부→참의부→정의부 등으로 이합을 거듭하면서 통합된 무장단체를 조직하고자 하였다.&nb...
    23.06.23 15:37 ㅣ 김삼웅(solwar)
  • 41화 박은식 대통령 하야, 이상룡 천거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1] 하야를 천명한 박은식으로부터 서한을 받았다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들은 박은식이 하야하면서 후임자를 물색하였다. 개헌을 통해 바뀌게 된 내각책임제의 수반이다. 권력은 많이 분산되었으나 정부수반의 위상인 것이다. 비록 외국 조계의 일우에 자리잡은 초라한 모습이지만 한민족...
    23.06.22 15:45 ㅣ 김삼웅(solwar)
  • 40화 대통령추대 거부, 만주로 귀환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40] 독립운동 진영이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거치다

    베이징에서 군사통일회의를 주도한 인사들은 상하이의 임시정부를 불신하고 있었다. 불신의 대상은 이승만이었다. 그의 위임통치론은 절대독립을 위해 투쟁해온 독립운동가들에게는 공존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또 하나는 무장...
    23.06.21 15:42 ㅣ 김삼웅(solwar)
  • 39화 '조선공화정부' 이상룡을 대통령 추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9] 조선공화정부는 조직은 되었지만, 제대로 수립되지 못하였다

    이상룡이 만주 화전현에서 재기를 도모하고 있을 즈음 어느 날 서로군정서의 헌병대장이었던 성준용이 찾아왔다. 미국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준비하다가 이승만과 대립, 중국으로 온 박용만이 신숙 등과 함께 베이징에서 '군사통일회의'를 ...
    23.06.20 15:34 ㅣ 김삼웅(solwar)
  • 38화 박은식, 고별사에서 '이상룡 협조요망'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8] 박은식은 성격이나 체질적으로 관직에 연연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이승만과 국민대표회의 등으로 어지러워진 임시정부의 혼란수습에 나섰다. 임시의정원은 1925년 3월 21일 이승만 탄핵 심판위원회의 심판서를 접수하고 "임시대통령 이승만을 면직함"이라는 '주문(主文)'을 발표함과 ...
    23.06.19 15:27 ㅣ 김삼웅(solwar)
  • 37화 결렬, 그러나 의미 있는 국민대표회의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7] 독립운동사에 차지하는 그 의미는 적지 않았다.?

    이승만의 탄핵을 전후하여 임시정부는 큰 혼란에 빠졌다.지도력의 공백상태에다 파벌대립이 심화되었다. 이에 안창호 등이 독립운동 진영을 하나로 묶는 데는 국민대표회의 외에 달리 길이 없다고 믿고 여기에 전력을 쏟았다. 임시정부측으로...
    23.06.18 16:20 ㅣ 김삼웅(solwar)
  • 36화 임시정부 의정원, 이승만 대통령 탄핵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6] 정부수립 3년여 만에 임시대통령 불신임안이 채택돼

    이승만의 독선적인 정부 운영과 무대책에 실망한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의정원의원들은 국민대회를 준비하면서 지도체제를 대통령중심제에서 국무위원중심제 즉 일종의 내각책임제로 바꾸는 개헌작업을 시도하였다. 이승만이 이에 반대...
    23.06.17 13:55 ㅣ 김삼웅(solwar)
  • 35화 이승만의 위임통치론 극력 반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5]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1920년을 전후하여 임시정부 안팎의 독립운동가들의 주장은 대체로 첫째,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과 같은 외교적 활동론.둘째, 안창호 등의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배양하고 준비하자는 실력양성론.셋째, 이동휘·박용만 등 ...
    23.06.16 16:26 ㅣ 김삼웅(solwar)
  • 34화 목에는 거액 현상금, 보복전에서 재기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4] 재기하여 반드시 민족적인 한을 풀어내겠다고 다짐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참패한 일제는 잔인무도한 보복전에 나섰다. 인근은 물론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인 마을까지 덮쳐 닥치는대로 살상하고 불지르고 약탈했다. 독립군을 도왔다. 그리고 한인이라는 이유였다. 실제로 이들의 도움으...
    23.06.15 15:41 ㅣ 김삼웅(solwar)
  • 33화 봉오·청산대첩의 역사적 평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33] 국치 10년 만에 최초의 항일전에서 승리한 전승

    독립군 연합부대가 참전하여 이룬 봉오동과 청산리대첩의 역사적 의미와 평가를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국치 10년 만에 최초의 항일전에서 승리한 전승이었다. 국난·국치·국망의 과정에서 수많은 의열·의병투쟁이 있었지만 ...
    23.06.14 15:24 ㅣ 김삼웅(so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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