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4 20:23최종 업데이트 25.02.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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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 도중 헛기침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검증 대상] "고소득 R&D 인력의 근무 시간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반도체 연구 인력이 주52시간 근무에 발목 잡힌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 어디에도 없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당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주52시간제 예외'를 포함한 '반도체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권 원내대표는 "연구원도 기업인들도 반드시 주52시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라며 "반도체에는 이념도 정파도 없다. 반도체만큼은 여·야를 떠나 대한민국이 이기는 방법만을 고민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뿐만이 아니라 재계와 보수 언론도 한목소리로 연구·개발(R&D)직 노동자 중 고소득자에 한해서만큼은 근로 시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or Exemtion)' 제도처럼 노동시간 규제에서 예외로 풀어줘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논리이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반도체 연구 인력에 주52시간과 같은 노동 시간 규제를 하는 나라가 아예 없다는 취지이다. 권 원내대표의 주장이 사실인지 <오마이뉴스>가 검증해 보았다.

[검증 내용①] 프랑스·독일·대만·중국, 고소득 전문직도 노동시간 규제

권 원내대표의 주장과 달리,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반도체를 포함한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서도 노동시간 총량을 규제하고 있었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 기업 고위 경영진(Cadres Dirigeants) 등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근로시간 규제를 모든 직군에 동일하게 적용한다. R&D 분야를 포함한 고소득 전문직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노동법(Code du Travail)은 연장 근로를 연간 최대 220시간까지 허용하고 있고, 노사 합의를 통해 단위 기간을 최대 3년까지 늘릴 수 있지만, 동시에 1주 최대 48시간까지만 근무할 수 있고, 연속 12주 동안 주 평균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기본 근로시간 역시 주당 35시간으로 짧으며, 연장 근로를 포함해 하루 최대 노동시간은 10시간이다.

독일 역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고소득 전문직을 포함한 모든 직군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독일 근로시간법(Arbeitszeitgesetz)에 따르면 하루 최대 8시간, 주당 48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하며, 예외적으로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다만, 6개월 또는 24주 평균으로 하루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단체협약(Tarifvertrag)이나 사업장 협약(Betriebsvereinbarung)을 통한 조정 역시 법에서 정한 최대 근로시간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근로시간이 6시간을 넘어갈 경우 최소 30분, 9시간을 초과할 경우 최소 45분의 휴식 시간을 제공해야 하며, 근무가 끝난 후에는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전기연구원(KERI) 차세대 전력반도체 연구개발 현장 ⓒ 한국전기연구원 제공


반도체 강국인 대만의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 하루 8시간)을 규제하고 있으며, 노동조합 또는 노사협의회의 동의를 얻은 경우에 한해, 연장 근로시간을 하루 최대 4시간, 한 주 최대 12시간, 월 최대 46시간으로 정해 놓았다. 또한 4시간 근무 후 최소 30분의 휴식을 제공해야 하며, 교대 근무의 경우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 시간을 보장한다.

일각에서는 TSMC와 같은 대만의 주요 반도체 기업이 주 70~80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해당 기업은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은 탓에 대만 노동부로부터 여러 차례 철퇴를 받았다. 이는 이미 더불어민주당의 '삼성전자 DS 부문 연구개발 인력 근로시간 유연화 주장 검토'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되며 확인된 바 있다.

중국도 비슷하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노동법(中华人民共和国劳动法)'에 따라 근로 시간을 하루 8시간, 주당 44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연장 근로는 하루 최대 3시간, 월간 총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여러 보수 언론들은 중국의 '996(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과 '007(0시~0시, 주 7일)'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허용'하거나 법적 예외로 '인정'한 게 아니다. 명백한 불법임에도 당국의 단속이 미흡해 관행으로 자리잡은 것일 뿐이다. 오히려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인력자원사회보장부는 지난 2021년, '996 근무제'가 노동법 위반임을 명확히 하며 기업들에 경고한 바 있다.

[검증 내용②] 일본·영국, 총량 규제는 없지만 추가 조치 필수

미국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초과근로에 따른 수당 지급 의무는 있지만 근로시간 자체에 대한 총량 규제는 연방법(공정근로기준법)상 존재하지 않는다. 주별로는 다소 상이하나, 기본적으로 초과수당을 통해 '간접 규제'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관리한다. 노동자 개인 혹은 노동조합과 사측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리·행정·전문·IT 등 일부 직종에 한해 ▲임금 근거(주급 684달러 이상) ▲업무 기준(근로시간 50% 이상을 적용 제외 대상 업무에 종사) ▲총임금 수준(10만 7432달러 이상, 약 1억 5000만 원) 등의 기준을 충족할 경우, 초과 수당 지급 의무 역시 적용받지 않을 수 있다. 대신, 미국은 유연근무제가 잘 활성화되어 있고, 재택근무 선택도 자유로운 편이다.

통상적으로 일본의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高度プロフェッショナル制度)'를 이와 유사한 제도로 많이 언급한다. 일본은 노동기준법 제41조의2항에 따라 R&D와 금융 등을 포함한 특정 직군의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연 1075만 엔(약 1억 원) 이상의 소득자라면 근로시간 규제의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제약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소득 전문직이라 하더라도 사업주는 해당 노동자에게 연간 최소 104일 이상의 휴일을 필수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또한, 그 외에도 4가지 선택적 조치 중 최소 1개 이상을 실시해야 한다. 해당 선택적 조치는 ▲근무 간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 보장 및 심야 근로 월 4회 이하 제한 ▲건강 관리 시간(사업장 내 체류시간+사업장 밖 근로시간)의 상한 설정(월 100시간 이내 또는 3개월 240시간 이내) ▲연간 연속 2주간의 휴가 부여(혹은 연속 1주간의 휴가 2회 제공 가능) ▲임시 건강 진단 실시 (한 달에 80시간 초과 근무자 또는 요청 근로자 대상) 등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과로사'가 사회적 타살로 인식되며 2014년부터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이라고 해서 일본이 미국처럼 무제한으로 허용한다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노동 시간이 유연한 영국은 '옵트-아웃(Opt-Out)' 제도에 따라 근로시간 규정(The Working Time Regulations 1998: 주 48시간)의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제도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사업주는 여전히 노동자에게 연속 근무 후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을 보장해야 하며, 7일마다 최소 24시간의 연속 휴식도 제공해야 한다. 특히, 야간 근무의 경우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노동자의 서면 동의(Voluntary Agreement)가 필수이고, 고용주가 이를 강제할 수 없으며, 건강 검진 등의 조치도 요구된다.

[검증 결과] 대체로 거짓

'재벌 특혜 반도체 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서 반도체 특별법에 반대하는 '방진복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유지영


권 원내대표는 21일 "반도체 연구 인력이 주52시간 근무에 발목 잡힌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인 결과, 독일·프랑스·대만 등은 직군에 상관없이 노동시간 총량을 규제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반도체 분야에 불법 관행이 존재하나, 노동시간에 대한 법적 규정 자체는 분명히 있다.

연장근로 상한을 두지 않고 있는 미국 등의 사례가 있지만, 비슷한 제도를 보유한 일본의 경우 사업주에게 별도의 추가 조치를 의무화해 다른 방법으로 노동시간을 관리하고 있다. 영국 또한 휴식권을 보장하고 야간 근무의 시간을 통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오마이뉴스>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반도체 연구 인력이 주52시간 근무에 발목 잡힌 나라는 전 세계에 어디에도 없다"라는 발언을 '대체로 거짓'으로 판정한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에 반론을 요청했으나, 24일 오후까지 회신을 받지 못했다.

“반도체 연구 인력이 주52시간 근무에 발목 잡힌 나라는 전 세계에 어디에도 없다.”

검증 결과 이미지

  • 검증결과
    대체로 거짓
  • 주장일
    2025.02.24
  • 출처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출처링크
  • 근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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