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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만8천원 김밥이 불티나게 팔리는 곳... 한국말 조심하세요

    [장소영의 숨쉬는 뉴욕] 한국 음식·문화의 힘 체감하는 일 많아져

    등록 2026.09.15 07:22수정 2026.09.1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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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역사를 온몸에 품고 있는 뉴욕. 누군가 살아냈고, 누군가 살아가는 빌딩 숲 사이사이의 이야기를 하나씩 담아 보려 합니다.[기자말]
    US 오픈 테니스 대회가 열리고 있는 뉴욕 빌리 진 국립 테니스 센터 본격적인 대회가 열리기 전 '팬 위크(Fan Week)' 한 주 동안 수많은 테니스 팬이 빌리진 테니스 센터를 방문해 이벤트와 경기를 즐기고 있다.
    ▲US 오픈 테니스 대회가 열리고 있는 뉴욕 빌리 진 국립 테니스 센터 본격적인 대회가 열리기 전 '팬 위크(Fan Week)' 한 주 동안 수많은 테니스 팬이 빌리진 테니스 센터를 방문해 이벤트와 경기를 즐기고 있다. 장소영

    지난 14일 US 오픈 테니스 대회가 끝났다.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마지막 대회이기도 하고, 미국 선수들의 좋은 경기력 덕에 더욱 열기가 높았던 대회였다.

    매년 본격적인 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테니스 팬들을 위한 'US 오픈 Fan Week(팬 위크)'가 열리는데, 가을학기 개학 전 딸과 여름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지난 8월 말 '팬 위크' 현장을 찾았다.


    US 오픈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빌리 진 국립 테니스 센터(USTA Billie Jean King National Tennis Center)는 맨해튼뿐 아니라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롱아일랜드에서도 기차나 지하철로 편리하게 찾아갈 수 있다.

    날이 뜨거운 데도 많은 팬들이 테니스 센터를 찾아 이벤트에 참여하고 연습 경기나 예선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우리 모녀도 연습 경기를 한참 관람했다. SNS를 통해 이곳에 있는 김밥 가게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터라, 시원한 음료수도 마실 겸 푸드 코트 쪽으로 가보았다.

    '닭'을 발음할 줄 아는 미국 소년

    푸드 코트에 걸린 한글 표지판 US 오픈 테니스 경기가 열리고 있는 빌리진 국립 테니스 센터 푸드 코트에 한글로 '닭'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걸렸다.
    ▲푸드 코트에 걸린 한글 표지판 US 오픈 테니스 경기가 열리고 있는 빌리진 국립 테니스 센터 푸드 코트에 한글로 '닭'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걸렸다. 장소영

    "저건 닥! 닥이라고 읽어요. 치킨이란 뜻이에요! 진짜예요. 내가 알아요!"

    푸드 코트에서 한 소년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게 표지판에 적힌 '닭'이라는 한글을 읽고는 엄마에게 알렸는데, 엄마는 그저 '그래? 확실해?'라고 할 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당황한 소년이 " 닥 맞아요" 하며 머뭇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 '닥(닭)' 맞아. 읽기 어려운 단어 중의 하나인데 정말 잘 읽네. 한글(자음)이 여러 개 붙어 있어서 읽기 어려운 단어거든!"

    내 말에 그제야 엄마도 관심을 보이며, '장식인 줄 알았는데 한글이었구나!'하고 아들에게 큰 미소를 지었다. 소년도 웃음을 찾았다. 어디서 한글을 배웠는지,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인파에 밀려 그대로 헤어지고 말았다.


    기꺼이 3만 8천 원짜리 김밥을 사는 뉴요커들

    KIMBOP US 오픈 대회장 내 푸드 코트의 김밥 스토어 'KIMBOP'에서 사람들이 주문하는 모습.
    ▲KIMBOP US 오픈 대회장 내 푸드 코트의 김밥 스토어 'KIMBOP'에서 사람들이 주문하는 모습. 장소영

    김밥 가게는 경기장에 가까운 쪽의 푸드 코트에 있었다. 심심하면 김밥을 만들어 먹는 우리 같은 한국계 가정에는 한 줄에 28달러(약 3만 8천 원)인 김밥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줄을 서 있던 미국인 가족이 "어떤 김밥을 먹을 거냐", "당연히 불고기 김밥이지", "김치를 주는 걸까" "아닌 것 같아" 이런 내용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만 웃음이 나왔다. 내 곁에 있는 대학생 딸이 중학생일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한국 유산의 밤 (KOREA Heritage Night) 뉴욕의 메이저리그 야구팀 뉴욕 메츠가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 유산의 밤' 행사를 열었다. 메츠팬들에게 한국 문화가 한 걸음 더 다가선 시간이었다.
    ▲한국 유산의 밤 (KOREA Heritage Night) 뉴욕의 메이저리그 야구팀 뉴욕 메츠가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 유산의 밤' 행사를 열었다. 메츠팬들에게 한국 문화가 한 걸음 더 다가선 시간이었다. MLB닷컴 캡처

    US 오픈 테니스 대회가 열리고 있는 빌리진 테니스 센터 길 건너에는 시티 필드 야구장(Citi Field Stadium)이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팀 뉴욕 메츠(New York Mets)의 홈구장으로, BTS가 공연을 하기도 했다.

    지난 8월 15일, 시티 필드 야구장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광복절을 맞아 '한국 유산의 밤' 행사가 열린 것이다. 홈페이지에 영어와 한글로 행사가 소개되었고, 시티 필드를 찾은 팬들에게는 (티켓을 구매한 경우) 한글이 적힌 기념 운동복과 K-뷰티 제품으로 이뤄진 기프트백 등이 제공되었다.

    이날 행사에서 불티나게 팔린 김밥은 TBD 김밥이다. TBD 김밥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출신의 이지한 셰프가 맨해튼에 오픈해 인기를 끈 김밥 가게다. 우리 동네 주민 게시판에선 '(그간 먹었던 냉동 김밥도 나쁘지 않았지만) 시티 필드에서 진짜를 만나고 왔다'는 메츠 팬의 재밌는 후기를 읽기도 했다.

    뉴욕에 완전히 정착한 '한국 문화'

    벚꽃 동산 포스터 9월 16일부터 26일까지 파크에비뉴아모리에서 한국의 전도연, 박해수 배우 주연의 <벚꽃 동산> 연극이 공연된다. 영어 자막도 제공된다.
    ▲벚꽃 동산 포스터 9월 16일부터 26일까지 파크에비뉴아모리에서 한국의 전도연, 박해수 배우 주연의 <벚꽃 동산> 연극이 공연된다. 영어 자막도 제공된다. 장소영

    지난 7월,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파크 에비뉴 아모리(Park Avenue Armory)에 들렀다. 7월에는 작곡가 출신의 설치예술가 부르시에-무주노(Céleste Boursier-Mougenot)의 <CLINAMEN(클리나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딸과 함께 미리 예매해 둔 티켓을 수령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CLINAMEN(클리나멘)> 포스터 옆에 연극 <벚꽃 동산> 홍보 포스터가 보였다. 오는 9월 16일부터 26일까지 배우 전도연, 박해수 주연의 연극 <벚꽃 동산>을 파크 에비뉴 아모리에서 공연한다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포스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나이 지긋하신 멋쟁이 할머니가 질문이 있다며 말을 걸어 왔다. 한국계 연기자들의 영어 공연인지, 한국에서 건너온 배우들이 한국어로 하는 공연인지 물었다.

    "한국에서 오는 한국 배우들의 공연이지만, 영어 자막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씀드린 후 "칸 영화제 아시냐, 주연 여배우가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말했더니 할머니가 관심을 보였다. 남자 배우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주연이었다고 말했는데, 내가 서툴게 설명하는 바람에 주변에 있던 몇 분의 젊은 관람객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할머니는 <오징어 게임>을 몰랐다. 그중 한 관람객도 "영어 공연이냐"라며 할머니와 같은 질문을 했다. 포스터에 주연 배우들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조금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니, 뉴욕 사람들이 포스터에 적힌 한글을 알아보고 한국 공연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푸드 코트에서 '닭'을 읽고, 메이저리그 경기장에서 김밥을 먹으며,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뮤지컬<어쩌다 해피엔딩>)과 한국의 뮤지컬 배우(<시카고>에 출연 중인 가수 아이비)의 공연을 보는 뉴요커가 이젠 더 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글로벌 화장품 체인인 세포라(SEPHORA)의 미국 내 580개 매장에 한국의 올리브영 코너가 생기고, 화장품 브랜드 '독도', '조선미녀'쯤은 쉽게 읽는 고객을 매대 앞에서 보게 된다. 온라인에서는 한국 제품의 진품과 짝퉁을 구별하는 법을 소개하는 쇼츠도 눈에 많이 띈다.

    미국에서 한국말로 떠들 때 조심해야겠다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한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물론 뉴욕 밖을 나서면 아직 한국에 대해 낯설어하는 동네도 있지만, 확실히 한국 음식이나 문화의 힘이 전과는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다민족 사회 미국에서도 특정 민족의 문화가 여러 부문에 걸쳐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 내 중국계·인도계 인구가 각각 400만 명이 넘는데 비해 한국계는 절반인 20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미국 내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K문화가 또 어떤 산업과 트렌드를 주도하게 될까. 맨해튼으로 외출할 때마다 얻는 즐거운 경험들이 K문화의 다음을 더 기대하게 만든다.
    #김밥 #USOPEN #뉴욕메츠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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