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듣기
  • 시험대 오른 이 대통령... 4월에 직접 쓴 글을 잊지 마세요

    [박태훈의 청년 오늘] 노무현이 말한 "파병 거절해도 되는 시대", 바로 지금이다

    등록 2026.09.11 11:57수정 2026.09.11 11:57
    5
    원고료로 응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언젠가는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이다>에 남긴 문장이다. 그는 2003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외교부가 올린 초안에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표현을 지웠다. "나는 이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훗날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썼다. 그 문장에는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자기 손으로 결재해야 했던 회한이 담겨 있다. 그는 그 회한을 후대에 유산으로 남겼다. 자신은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나는 지금 그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23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대가 정말로 왔는지를 판정할 사람은 트럼프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이다.

    지난 4월 나는 한 칼럼에 이렇게 썼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국제 정치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낼 거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실리 외교'라는 프레임 안에서 팔레스타인 편에 서는 것의 실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그가 지난 4월 10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의 시신을 지붕에서 던지는 영상을 인용하며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X에 썼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칼럼에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왔기에 더욱 빛나는 결단"이라고 썼다.

    지난 8월 19일,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를 돕는 데 관심이 없다고 했을 때 나는 불쾌했다" "한국은 원유의 60퍼센트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져온다"라고 주장했다. 이틀 전 이재명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군함 파견 요청이 거절된 뒤에 나온 말이었다.

    지난 4일에는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우리는 여전히 한국이 중동 지역에 자원을 전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청와대는 "전투와 비전투 등 다양한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진척된 것은 없다"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지금 국방부 조사단이 아랍에미리트 알다프라 기지에서 해상초계기 운용 환경을 점검하고 있다.

    대통령 고민 이해하지만, 헌법은 '침략적 전쟁' 부인한다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초계기, 군수지원함 등 군사적 자산을 파병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취역식 당시 소양함 모습.
    ▲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해상초계기, 군수지원함 등 군사적 자산을 파병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취역식 당시 소양함 모습. 연합뉴스

    나는 지난 4월 X(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이 '발언의 특권'을 가진 나라라고 썼다. 홀로코스트의 가해자가 아니고,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며, 중동 석유 이해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나라. 그 조합이 대한민국에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도덕적 발언권을 준다고 썼다. 그리고 그 글을 대통령이 재게시했다.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한다.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4월에 이스라엘의 학살을 홀로코스트와 '위안부' 피해에 견주어 비판한 대통령이, 9월에 그 학살을 벌이는 나라와 함께 시작한 전쟁의 뒷수습에 대한민국 군함을 보낸다면, 그때의 글은 무엇이 되는가?


    트럼프가 이란을 폭격하고 하메네이를 죽인 전쟁은 미 의회의 승인도, 유엔 안보리의 결의도 없이 시작됐다. 이란 정권이 자국 시위대를 학살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나는 그 정권을 지금도 규탄한다. 그러나 이란 정권이 나쁘다는 것과 이란을 폭격한 전쟁이 옳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명제다.

    우리 헌법 제5조 1항은 이렇게 쓰여 있다.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헌법 전문은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이 나라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로 못 박았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한다.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나라가 침략적 전쟁이 만든 봉쇄를 뚫으러 군을 보낸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라 헌법 위반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3월부터 파병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이란 전쟁이 터지고 호르무즈가 막히자마자 장동혁 대표는 "국익과 한미동맹 차원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항행과 글로벌 안보 기여를 선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선 파병을 밀어붙이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8일 KBS1 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한 같은 당 성일종 의원은 파병에 대한 입장을 묻자 "야당이 입장을 미리 정할 필요가 어디 있나"라고 답했다. 정작 파병의 가부를 묻자 대답을 피한 셈이다.

    파병을 찬성하는 일각의 논리는 미국의 환심을 사고, 그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얻겠다는 사대주의의 계산법이나 다름없다. 1964년 베트남 파병이 산업화의 종잣돈이 됐다는 서사. 국민의힘이 말하는 파병론은 그 서사의 재연일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식 거래론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거래 상대가 트럼프라는 것이다. 부시는 적어도 거래를 지켰다. 트럼프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말과 행동을 바꾸는 사람이다. 관세를 약속하고 뒤집고, 동맹을 치켜세우고 조롱한다. 군함을 보내고 나서 관세가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난 2년 동안 국제 뉴스를 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헌법을 방패로 들라고 말하고 싶다.

    헌법 제60조 2항은 국군의 외국 파견에 대한 동의권을 국회에 부여한다. 이것은 대통령을 묶는 족쇄처럼 보이지만, 트럼프 앞에서는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다. "우리 헌법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고, 파병은 국회가 결정한다"는 말은 어느 나라 정상도 반박하기 어려운 언어다. 트럼프는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헌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결단할 수 있다.

    비전투 자산으로 기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이다. 전투는 하지 않으니 괜찮다는 논리다. 그러나 초계기가 찾아낸 좌표로 미군의 미사일이 날아간다면, 그 초계기는 비전투 자산이 아니라 '전쟁의 눈'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헌법 앞에서 전투와 비전투의 구분은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2020년 청해부대의 작전 구역을 호르무즈 인근까지 넓힐 때 정부는 국회 동의를 우회하는 편법을 썼다. 그때도 명분은 국민 보호였고 실제로는 미국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 전례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은 호르무즈 사태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 늦었다고 비판한다. 나는 반대로 말하고 싶다. 6개월을 버틴 것은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6개월을 버티고 나서 무엇을 말하느냐다. "고민하고 있다"는 말은 버티는 동안에는 필요한 말이지만, 그 끝에 오는 말은 분명해야 한다. 옳지 않은 전쟁에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어야 한다.

    2026년의 대한민국은 2003년과는 달라야 한다

     인권·노동·종교·평화·민중 등 601개 시민사회단체와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군사적 기여 압박을 규탄하며 이재명 정부에 한국군 파병 검토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인권·노동·종교·평화·민중 등 601개 시민사회단체와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군사적 기여 압박을 규탄하며 이재명 정부에 한국군 파병 검토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나는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에 와야 할 이름이 '자주화'라고 생각한다. 남이 정한 것에서 빠져나와 내가 정하는 것, 나라의 일에서도 청년이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자주가 시대정신이다.

    청년들은 이미 '자주화'라는 이름을 삶에서 실천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자기 루틴을 지키는 갓생, 남이 정한 속도가 아니라 자기 페이스로 뛰는 러닝, 알고리즘이 골라준 것 대신 자기가 고른 책을 읽는 텍스트힙. 겉보기에 제각각인 이 흐름의 공통점은 하나다. 남이 정한 것에서 빠져나와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호르무즈 파병은 시험대다. 미국이 부르면 어디든 따라나서는 나라에서는, 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어렵다. 국가가 남이 정한 전쟁에 끌려가는 동안, 개인은 남이 정한 유가와 남이 정한 물가와 남이 정한 징집 순서 앞에 서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거절하지 못했다. 그 시대의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선택지가 부족했다. 북핵 위기가 눈앞에 있었고,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있었고, 미국이 없으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공포가 컸다. 그는 그 공포 앞에서 결재하고, 평생 회한을 안았다. 그리고 언젠가 거절해도 자연스러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썼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때와 다르다. 한반도는 전쟁 위기가 닥친 것도 아니고, 경제는 파병하지 않아서 무너질 상황이 아니며, 유럽의 동맹국들조차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4월에 대통령의 트윗이 세계에 읽힌 것은 대한민국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지위의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다린 시대는 이미 왔다. 그 시대가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헌법이 시키는 대로, 파병을 거절하는 것이다.
    #호르무즈파병 #파병 #이재명대통령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청년오늘연구소 소장, 일베폐쇄 서포터즈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보당에서 부대변인으로 활동했었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신입 환경미화원 월급 580만 원...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신입 환경미화원 월급 580만 원...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2. 2 '유해진 북한상'이 표현의 자유라면 1923년 '조센징상'은? '유해진 북한상'이 표현의 자유라면 1923년 '조센징상'은?
    3. 3 한국 아파트가 무너지기 쉬운 이유... 충격적인 국토부 문서 한국 아파트가 무너지기 쉬운 이유... 충격적인 국토부 문서
    4. 4 이 대통령님, '대국민 사기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대통령님, '대국민 사기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5. 5 금메달 들고 웃으며 "군대 안 간다"는 선수들 욕하기 전에 금메달 들고 웃으며 "군대 안 간다"는 선수들 욕하기 전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