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2일 서울 양천구 종로학원 본원에서 재수생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공동취재]
연합뉴스
몇 해 전, 부산에서 고3 담임을 하던 때의 일이다. 한 학생이 부산에서 누구나 아는 '좋은' 대학에 추가 합격했다. 교육 여건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인정받는 곳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이미 최초 합격해 둔 서울의 한 대학으로 갔다. 서울이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대학 서열 앞자리에는 들지 못하는 학교였다. 결정의 이유에 다른 건 없었다. 서울에 가고 싶어서. 인서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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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정성껏 써 주었고 면접도 함께 준비했다. 합격한 뒤 그 학생은 "선생님이 물어보고 코치해 준 질문이 면접에서 거의 그대로 나왔다"며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마냥 뿌듯하지 못했다. 내가 잘 가르쳐서 아이 하나를 서울로 잘 보낸 것인지, 아니면 이 지역이 비어 가는 일에 한 사람 몫을 보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착잡함은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다.
의대 이야기도 교실 밖에서 여러 번 들었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의대생들이 집단 휴학에 들어갔던 시기, 현장에서 오간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어차피 학교에 안 나가는 김에, 서울 의대로 옮기기 위해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
개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런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런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어떤 구조 안에 있는지를 말해 준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을 지방대의 교육 여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지방 대학의 강의가 어느 날 두 배로 훌륭해진다고 해서 이 흐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보기도 어렵다. 학생들이 떠나는 것은 그 대학에서 배울 것이 없어서라기보다 그 대학을 나온 뒤 그 지역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전할 만한 성적과 생활기록부를 확보하고도 교육과정이나 학과, 학생에 대한 투자 등을 따져 부산에 남으려고 하는 학생을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반면 부산 소재 대학에 진학했으나 재수·N수를 통해 서울로 떠난 사례는 수없이 직접 겪고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은 무엇을 배웠는지를 증명하는 문서라기보다 실질적으로 남들보다 어디쯤 서 있는지 표시하는 번호표로 기능하고 있다. 이 번호표에는 고약한 성질이 있다. 앞자리 수가 정해져 있어서 모두가 더 열심히 해도 앞에 설 수 있는 사람 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
올해도 수십만 명이 같은 줄에 서서 앞사람보다 반걸음이라도 앞서기 위해 1년이란 시간을 더 쓰고 있다(누군가는 N년). 개인에게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사회 전체에는 큰 비용을 남긴다. 우리는 이 구조 안에서 매년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수많은 청춘을 소모하고 있다.
번호표의 앞자리를 정하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노동시장과 지역 인프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격차가 지금처럼 크고 건너기 어려운 한, 그 격차의 어느 쪽에 서는지를 스무 살에 결정해 버리는 시험은 목숨을 걸 만한 시험이 된다.
교육정책의 효과는 사회경제학을 벗어날 수 없다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 시행일인 9월 2일 서울 송파구 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국어 영역 시험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909/IE003669716_STD.jpg)
▲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 시행일인 9월 2일 서울 송파구 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국어 영역 시험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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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제도를 손보는 일만으로는 결코 이 흐름이 멈출 수 없다. 정시와 수시의 비율을 바꾸고, 내신 등급제를 조정하고, 서·논술형 수능을 도입하고, 지역인재전형을 늘려도, 사다리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그대로면 경쟁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꾼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이 실험을 충분히 반복했다. 제도를 바꿀 때마다 사교육 시장은 새 제도에 맞춘 상품을 내놓았고, 학생들은 새 규칙에 맞춰 다시 줄을 섰다.
지역의사제도 마찬가지다. 지방 의대 입학생을 늘리는 것만으로 지역에 의사가 남는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역에 남아 살아갈 이유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지방 입학 → 수도권 재진입'이라는 기존의 유인이 다른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의 상당 부분은 교실 밖 조건이 결정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이를 낳아 기를 만한 곳이 어디인지, 배우자가 경력을 이어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지역 소멸, N수 시장의 팽창, 저출생은 서로 다른 세 개의 문제가 아니다. '괜찮은 삶'의 조건이 한 지역에만 몰려 있다는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세 개의 증상이다. 해법도 교육정책 안에만 머물러서는 찾을 수 없다.
지역에 산업과 일자리를, 병원과 문화시설을, 아이를 맡길 곳과 배우자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한 교육정책이다.
자기가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는 것이 성공의 정의로 통용되는 곳에서, 남는 아이는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실패로 해석하게 된다. 지역의 학교가 학생을 길러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 역할에 갇혀 있는 한, 그 통로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교사가 해 줄 말은 많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평가가 아니라, 여기서 계속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이다. 55만 명이 하나뿐인 사다리 앞에 줄을 서 있다. 사다리를 더 공정하게 만드는 논의는 30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사다리를 여러 개 놓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이미 많이, 정말 많이 늦었다. 그 사다리를 놓을 자리는 학교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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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혐오의 논리를 넘어서 개인의 입장이 모두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현직교사로서 교사노조연맹, 부산교사노조, 중등교사노조의 일원으로서 공교육정상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대의원
-중등교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부산교사노동조합 대변인 겸 부위원장
-부산 기장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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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면 끝'이라는 믿음도 깨졌다, 지방 의대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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