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5·18' 왜곡, 조롱... 프랑스는 어땠나

[최경식 기자의 히스토리 10] 역사 왜곡 원인과 프랑스의 교훈

등록 2026.09.07 15:00수정 2026.09.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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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히스토리텔러'입니다. 국내와 해외의 주요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기자말]
최근 '5.18 왜곡' 논란이 재발하고 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3일 뉴라이트 성향 단체와 함께 5·18 민주화 운동을 재조명하는 포럼을 개최했다. 여기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소요 사태" 등의 발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역사 쿠데타", "시민항쟁 모독"이라면서 비판했다. 나아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이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해당 결의안 상정에 반대해 표결에 앞서 퇴장했다. 이 의원은 "이렇게 5.18 성역화가 완성되는가"라며 공개 반발했다.

이에 앞서 스타벅스와 배재고 사태도 있었다. 스타벅스는 5.18 민주화 운동 46주년 기념일 이벤트에서 '탱크데이'라는 문구를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뒤이어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은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광주제일고와의 1회전 도중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내용의 응원가를 반복적으로 불렀다. 이 과정에서 한 학생은 "탱크데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지체되고 불완전한 과거사 청산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에 휩싸인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 민주유공자 심사 절차를 강화하고 유공자 명단과 공적을 공개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에 휩싸인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 민주유공자 심사 절차를 강화하고 유공자 명단과 공적을 공개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유성호

5.18 민주화 운동은 단순한 지역적 시위 사건이 아니라, 시민들을 겨냥한 국가 권력의 폭력과 민주주의 및 헌정질서의 문제였다. 광주 시민들은 정의를 위해 분연히 들고일어났고, 무시무시한 공수부대 앞에서 영웅적으로 투쟁하다가 장렬히 산화했다. 마땅히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5.18을 겨냥한 왜곡과 조롱은 46년 간 지속되고 있다.

이의 원인으로서 사건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는 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처음부터 진상규명 자체가 어려웠다. 국가가 사건을 통제하고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오랫동안 5·18은 '폭동', '좌경세력의 소요', '북한 개입' 등의 프레임으로 설명됐다. 국가가 제공한 서사가 상당 기간 (사건과 관련한) 진실한 기억을 덮어버렸다.

이처럼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왜곡된 서사와 통제로 인해 진상규명이 지연되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기억의 분열이 발생했다. 추후에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 상이한 역사 서사가 등장했고, 이것이 온라인을 통해 재생산되면서 젊은 세대 등에게 5.18은 '논쟁적인 역사'로 인식됐다. 사건이 발생한 뒤 곧바로 진상규명 및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면, 오늘날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과거사 청산이 완전하게 이뤄지지 못한 점도 문제의 원인으로 꼽힌다. 5·18에 대한 법적·제도적 청산은 상당히 진행됐지만, 사회적·정서적·역사적 청산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과거사 청산은 단순히 전두환을 처벌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진실규명, 책임규명, 피해회복, 명예회복, 기록 보존, 교육, 사회적 합의까지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과정이 길어질수록 빈틈이 생기고, 그 빈틈을 왜곡된 서사가 파고드는 것이다.


프랑스의 교훈

'5.18'의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수록, 프랑스의 교훈을 돌아보게 된다. 프랑스는 4년간 나치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이 와중에 독일에 협조하는 수많은 민족반역자가 나타났다. 1944년, 프랑스가 해방된 후 드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프랑스 정부는 신속하게 과거사 청산에 나섰다. 이들은 특별법원 등을 설치한 뒤 사회 각 분야에서 암약하는 민족반역자를 숙청해 나갔다.


최우선으로 언론인, 작가들을 숙청했다. 이들이 여론을 움직이는 만큼, 혹시 모를 부정적인 여론(비시정부 동정론, 관용론 등) 조성을 막고 효과적으로 숙청을 단행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상징적인 의미도 더해졌다. 추후 드골은 회고록에서 "언론인들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대에 올려 가차 없이 처단했다"라고 밝혔다. 반역죄로 재판받고 처형된 대표적인 언론인 겸 작가는 조르주 쉬아레즈, 로베르 브라지야크 등이었다.

언론인, 작가에 이어 경찰 숙청이 두드러졌다. 기실 드골은 1943년 알제리 망명 시절부터 파리 해방 후 숙청할 경찰관 명단을 작성했었다. 경시총감은 물론 경찰서장, 형사부장급까지도 숙청 대상에 올랐다.

군부에 대한 숙청도 진행됐다. 앞서 드골은 알제리 시절에 훈령을 통해 비시정부와 연관됐거나 독일에 협력한 군인들 및 군 조직 모두를 처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드골은 "그들을 모두 감옥에 처넣어라"는 말로 군부 숙청 의지를 대놓고 드러냈다. 대기업 등 경제계도 숙청의 칼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각에서 국가의 경제 문제를 감안하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드골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계도 가혹하게 숙청했다. 반민족행위를 한 기업인을 처벌하는 것은 물론 소유주의 자산을 몰수하고 해당 기업 자체를 국가의 손에 넘겨버렸다.

나치 독일의 꼭두각시 정부였던 비시정부 관련자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수장인 필리프 페탱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드골에 의해 종신형으로 감형됐지만, 말년에 격한 비난을 받으며 감옥에서 비참하게 지냈다. 비시정부의 악질 총리였던 피에르 라발은 총살됐다. 드골은 군대 선배였던 페탱과 달리 일찌감치 라발을 '죽은 사람' 취급했다. 이밖에 수많은 비시정부 인사들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당대에 '매우 신속하고 완전하게' 전개됐다. 지나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프랑스에서 청산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명한 작가였던 모리악을 중심으로 '관용론'이 적잖게 제기되기도 했다. 이것은 나름의 명분과 타당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드골과 프랑스는 관용론을 단호하게 배격했다. 어설픈 관용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를 지금 당장, 완전한 수준으로 청산해 '정의'를 세워야 내일의 범죄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그랬다. 현대 프랑스 사회에서는 드골 시대의 숙청 기억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정의로움을 말하고 부정한 것을 거부하는 기풍이 생겼다. 프랑스가 또다시 외세에 지배를 당하더라도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자들이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올바른 '역사적 경험'의 힘이었다. 당대에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오늘날까지 커다란 홍역을 치르는 우리나라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소설 '이방인', '페스트' 등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독일 점령기에는 지하로 들어가 저항운동을 주도했다. 그가 파리 해방 직후 저항신문인 '콩바'지에 게재한 사설은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커다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하는가. 칼은 칼에 의해서만 이길 수 있고, 무기를 잡아야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됐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최경식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518 #광주 #이진숙 #민주당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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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겸 기자. 저서로 [소련의 서기장들], [전쟁의 역사], [정변의 역사], [암살의 역사], [숙청의 역사-세계사편], [숙청의 역사-한국사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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