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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룻배 타고 투기하던 시절, '강남 불패' 환상의 시작

    [서울의 기억을 찾아서] 영동1지구 착공으로 시작된 강남 개발

    등록 2026.09.06 18:37수정 2026.09.0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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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을 펴고 땅을 다지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서울. 그 이면에 쌓인 시간과 욕망의 변주곡을 따라 잊힌 '서울의 기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기자말]
    우리에게 강남은 무엇인가? 화두다. 동경과 비판이 공존하는, 바벨탑 같은 욕망의 상징이다. 공고한 계급 세습의 카르텔이 작동한다.

    한강 남쪽, 경기도 광주와 시흥의 빈 땅을 권력은 늘 주시하고 있었다. 강북은 불안했을까. 통치 기반을 강남으로 옮겨, 한강을 방패 삼아 전쟁 등 유사시를 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삽을 뜬 계기는 그러나 전혀 뜻밖이다.


    1967년 12월 15일, 영등포 동쪽이라는 '영동1지구(양재·우면·사당·방배·서초·반포·잠원)'가 착공한다. 그날, 과연 이런 공간이 펼쳐지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모두가 조국 근대화의 미몽에 내몰리던 시절이다. 땅은 그렇게 파헤쳐졌다. 지난 3일, 이 일대를 답사했다.

    영동지구 항공사진(1969) 한창 공사 중인 경부고속도로가 직선으로 뻗었다. 관악산과 대모산 사이 양재천이 보이고, 그 옆으로 구불구불한 탄천이 섬인 잠실 옆 한강으로 흘러든다. 반포 본동은 아직 매립되지 않았고, 압구정 쪽 한강은 사진에서 벗어나 있다.
    ▲영동지구 항공사진(1969) 한창 공사 중인 경부고속도로가 직선으로 뻗었다. 관악산과 대모산 사이 양재천이 보이고, 그 옆으로 구불구불한 탄천이 섬인 잠실 옆 한강으로 흘러든다. 반포 본동은 아직 매립되지 않았고, 압구정 쪽 한강은 사진에서 벗어나 있다. 국토정보플랫폼

    첫 삽을 뜬 그때 권력의 속내까지 헤아릴 재주가 내겐 없다. 분명 창대했으리라. 인구 분산이 최우선이었을까? 나중 억지스러운 각종 유인책으로 미루어, 이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경부고속도로 보상비가 최우선이었을까?

    강북은 터져 나갈 지경이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서울은 만원'이었다. 1967년 대선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격렬한 찬반 이슈로 떠오른다. 모든 시선이 고속도로와 인구 문제에 집중된다. 나라는 쓸 돈이 절대 부족했다. 1지구는 인허가보다 삽부터 뜨고 봤다. 인허가는 '경부고속도로용지 무상 확보' 조건으로 1968년 1월 8일에 이뤄진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가져다 쓴다. 환지(목적에 맞게 변경한 토지를 원 소유주에게 돌려줌) 후 체비지(사업 비용 충당용으로 사업 시행자가 취득하는 토지) 매각으로 투자비를 손쉽게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부고속도로 용지를 손쉽게 무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 날갯짓이 기형적 대가구(大街區, Super-block)로 이어져 지금도 공간을 옥죄고 있다.

    1966, 난무하는 계획들


    계획이 난무한다. 1966년 1월 '남서울계획'이 발표된다. 제3한강교(한남대교) 건설 합리화의 법적 수단이라는 지적과, 친일 갑부인 화신 박흥식이 1962년 발표한 30만 명 전원도시 구상을 그대로 베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제3한강교는 오로지 군사 목적이었다. 나중 서울의 관문 교량으로 위상이 높아진 건 영동지구 개발과 경부고속도로 시점이라는 기능 때문이다.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 부임 4개월 만인 그해 8월 '새서울백지계획'을 발표한다. 백지상태에서 서울을 새 수도로 건설하겠다는 장대한 계획이다. 일명 '무궁화도시계획'으로, 4000만 평에 100만~150만 인을 수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새서울백지계획(1966) 서울을 새로운 수도로 만들겠다는 구상 스케치 본. 나중 정밀하게 설계된다. 가운데 정사각형 변의 길이가 6km이다. 사각형 위가 대통령궁, 사각형 3시부터 6시, 9시 방향에 각각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배치하고, 도시 외곽을 고속도로가 빙 둘러싼 계획이다. 지금의 강남땅을 염두에 두고 구상되었다.
    ▲새서울백지계획(1966) 서울을 새로운 수도로 만들겠다는 구상 스케치 본. 나중 정밀하게 설계된다. 가운데 정사각형 변의 길이가 6km이다. 사각형 위가 대통령궁, 사각형 3시부터 6시, 9시 방향에 각각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배치하고, 도시 외곽을 고속도로가 빙 둘러싼 계획이다. 지금의 강남땅을 염두에 두고 구상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_보도자료

    무궁화 모양 평면에 대통령궁과 입법·사법·행정부를 분산 배치하고, 외곽을 고속도로로 빙 둘렀다. 르코르뷔지에의 '300만 인의 도시'나 미국 워싱턴을 모방했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이 계획도 전적으로 강남을 염두에 둔 것이다.

    동시에 '서울도시기본계획66'이 발표된다. 1963년 서울로 편입된 지역이 대상이었다. 지금 서울의 도시 골격이 대체로 여기서 비롯된다. 동서울(뚝섬, 창동, 망우)과 남서울(천호, 송파, 강남), 서서울(불광, 성산, 시흥, 강서)의 광활한 면적이다. 상업·업무가 배치된 3개 부도심 중 하나로 강남이 포함되었다.

    구도심의 기능 분산과 더불어 정부 배치가 특이하다. 세종로는 대통령 거처와 집무실, 남서울엔 입법부, 영등포에 사법부, 행정부는 용산에 둔다는 계획이다. 잠실 섬이 살아 있고, 반포나 압구정 매립도 계획이 없다. 여하간 이 기본 계획이 영동지구 개발의 법적 배경이다.

    영동지구 사업현황 영동 1지구와 2지구의 허가 후 도면으로 추정(도면 상단에 한자로 '영동지구 허가사항'이라 쓰여 있다.)한다.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대가구에 가로망 계획이 촘촘하다. 이 중 많은 곳이 1975년에 '아파트지구'로 지정되어, 엄청난 계획 변경이 뒤따른다.
    ▲영동지구 사업현황 영동 1지구와 2지구의 허가 후 도면으로 추정(도면 상단에 한자로 '영동지구 허가사항'이라 쓰여 있다.)한다.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대가구에 가로망 계획이 촘촘하다. 이 중 많은 곳이 1975년에 '아파트지구'로 지정되어, 엄청난 계획 변경이 뒤따른다. 서울역사박물관

    그 무렵, 또 다른 도면이 시청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영동 1지구에 이어 2지구(압구정·청담·삼성·논현·도곡·대치·학동) 개발 계획이 숨도 쉬지 않고 신문 지면을 채운다. 나중 면적이 부분 조정되나, 1966년 12월 28일 영동 1지구 1273만 7800㎡, 2지구 1307만 1900㎡가 동시 지정된다. 엄청난 면적에 엄청난 속도다.

    시장 부임 초부터 역점을 둔 '교통난 완화 정책'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도로 확장, 육교, 지하도와 주요 간선 도로 등이 외곽으로 우후죽순 뻗어가고 있었다. 서울이 온통 공사판이다.

    고속도로와 체비지

    한강 건너 영동지구에 닿는 교량 하나 없었다. 복부인들이 나룻배 타고 투기에 나서던 아슬아슬한 시절이다. 토지구획 정리를 적용한 영동지구는 선 투입비 회수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서초동 향나무(1960년대) 1968년 제55호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서초동 향나무. 영동 1지구 착공 당시 이 나무를 보존한 덕분에 지금도 볼 수 있다. 수령 약 9백 년으로 '천년향'으로도 불린다.
    ▲서초동 향나무(1960년대) 1968년 제55호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된 서초동 향나무. 영동 1지구 착공 당시 이 나무를 보존한 덕분에 지금도 볼 수 있다. 수령 약 9백 년으로 '천년향'으로도 불린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초동 향나무(2026) 2024년 겨울, 폭설로 큰 가지가 잘려 애당초 모습을 잃었으나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다. 강남개발로 강북에서 이전해 온 법원과 검찰청을 좌우로 거느린 모습이, 이 터의 터줏대감처럼 당당하다.
    ▲서초동 향나무(2026) 2024년 겨울, 폭설로 큰 가지가 잘려 애당초 모습을 잃었으나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다. 강남개발로 강북에서 이전해 온 법원과 검찰청을 좌우로 거느린 모습이, 이 터의 터줏대감처럼 당당하다. 이영천

    불도저가 1지구에서 구릉과 야산을 깎아내는 동안, 경부고속도로 수원까지의 노선이 결정된다. 이에 따라 1지구 계획이 전면 수정된다. 고속도로를 계획에 반영시키려는 조치다. 1지구 인허가 직후인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가 착공하나, 공사비 조달이 관건이다.

    1지구에 포함된 제3한강교~양재까지 고속도로 보상비가 무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경부고속도로 대전까지와 제3한강교 완공(1969년 12월) 때까지, 1지구의 세부 설계와 환지 계획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1·2지구의 환지 처분 공고는 1981∼1985년, 2지구 환지 처분이 1991년에서야 완료된다.

    경부고속도로가 차지한 면적만큼 공공용지, 특히 도로 면적을 대폭 줄여야 했다. 감보율(공공용지 및 공공시설의 공사비 충당 비율. 토지 소유자가 토지로 부담)을 낮추려는 고육책이다. 체비지 확보가 관건이던 2지구도 1지구 감보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 반포1동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지나는 경부고속도로. 직선으로 쭉 뻗은 노선이 1960년대의 꿈과 이상을 대변하는 듯하다.
    ▲경부고속도로 반포1동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지나는 경부고속도로. 직선으로 쭉 뻗은 노선이 1960년대의 꿈과 이상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영천

    감보율을 낮추려다 보니, 기형적인 대가구가 불가피해졌다. 그 바람에 강남 도로망 체계가 균형을 잃고 말았다. 간선-보조간선-집산-국지도로대로 체계가 어긋났다. 교과서적 도시 계획 기법의 대가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간선도로가 보조간선이 아닌 집산이나 국지도로와 직결되어, 교통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대로에서 접어들어 곧장 좁은 이면도로와 만날 수밖에 없게 된 연유다. 경부고속도로의 날갯짓이다.

    일부 대로변은 소위 '노선상업지역'이라는 용적률 혜택을 톡톡히 누린다. 강남대로와 테헤란로, 영동대로가 대표적 수혜 지역이다. 이곳이 강남의 상징처럼 선형(線形)의 중심상업·업무지역으로 발달하게 된 이유다.

    땅에 새겨진 욕망

    가로와 도시 공간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도시 환경을 지배한다. 그만큼 '계획'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1지구 공사가 한창일 때, 2지구도 영동대교와 같은 날(1970년 8월 13일) 착공한다. 그러나 2지구 시행인가(1971년 8월) 때까지 이렇다 할 인구 분산책은 시행되지 않았다. 무계획의 돌격이다. 논현동 공무원 아파트(1971년 12월)가 첫 분산책이다.

    대규모 아파트지구(1975년)로 인구를 유인한다. 이로써 계획이 대대적으로 수정된다. 강남 아파트의 서막이다. 환지를 통해 원소유주에게 합당한 소유권이 보장되었음에도, 아파트 지구에 속한 땅은 아파트 외 다른 건축물은 절대 짓지 못했다. 지구에 묶인 땅들이 빼앗기다시피 매각되었다.

    강남종합버스터미널(1978) 낮은 터미널 대합실과 대조적으로 사거리에 건물이 높게 솟고 있다. 저 건물은 현존한다. 고가차도와 공사 중인 도로와 아파트 등 사방이 공사판이다. 밭의 모습도 같이 보인다. 1970년대 강남의 얼굴이다. 터미널에 정차 중인 고속버스가 듬성듬성하다. 멀리 '반포3단지 주공아파트'가 보인다.
    ▲강남종합버스터미널(1978) 낮은 터미널 대합실과 대조적으로 사거리에 건물이 높게 솟고 있다. 저 건물은 현존한다. 고가차도와 공사 중인 도로와 아파트 등 사방이 공사판이다. 밭의 모습도 같이 보인다. 1970년대 강남의 얼굴이다. 터미널에 정차 중인 고속버스가 듬성듬성하다. 멀리 '반포3단지 주공아파트'가 보인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고속버스터미널(2026) 상전벽해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주변. 멀리 1978년 당시 솟아오르던 노란색 건물이 무척 낮아 보인다. 저 건물보다 높아진 다른 건물의 높이만큼, 우리 삶과 격조도 같이 높아졌을까?
    ▲서울고속버스터미널(2026) 상전벽해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주변. 멀리 1978년 당시 솟아오르던 노란색 건물이 무척 낮아 보인다. 저 건물보다 높아진 다른 건물의 높이만큼, 우리 삶과 격조도 같이 높아졌을까? 이영천

    강북에서 집객 시설은 신축은 물론 증개축마저 금지된다. 팽배하는 건축 수요를 철저히 강남으로 밀어낸다. 각종 세제 혜택에 법원·검찰 등 공공 기관과 한전 등 정부 투자 기관 이전이 속속 단행된다. 강북에 흩어져 있던 고속버스 터미널을 모아 강남으로 옮긴다. 빈 땅에 중과세하는 '공한지세'도 강남 개발을 촉진한다.

    그도 모자라 강북의 명문 고등학교를 채찍과 당근으로 이전 시킨다. 흙먼지 휑한 강남으로 떠밀리다시피 등교한다. 1980년대 이르러서야 백화점 등 기반 시설이 탄탄해진다. 다시 투기 바람이 일고, 중산층의 대거 이주가 이뤄진다. 이로써 강남이 신흥 중심으로 떠오른다.

    부동산 투기는 강남 개발의 여실한 후과이자 진행형이다. 복부인은 차라리 순진했다. 당시 정부가 투기에 나섰다는 명증한 증언이 있다. 이후의 자산 증식도, 강남 불패라는 맹신적 투기에 기댔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강남역 사거리 강남역 사거리의 공공공지에 서 있는 시설물. 강남스타일을 재료로 삼았다. 노선 상업지역으로 용적률에서 엄청난 혜택을 입은 대로 변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기세다.
    ▲강남역 사거리 강남역 사거리의 공공공지에 서 있는 시설물. 강남스타일을 재료로 삼았다. 노선 상업지역으로 용적률에서 엄청난 혜택을 입은 대로 변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기세다. 이영천

    어느 가수가 노래한 '강남스타일'에 철저히 갇혀버렸다. 강남을 중심으로 경제와 문화, 사회 담론이 생산, 소비된다. 이는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취득하는가 경쟁 다름 아니다. 최소한의 공정은 기대할 수조차 없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욕망 뿐이다.

    노동 가치가 휘발하고, 땀이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착실하게 일해 부를 쌓는 삶이 희화화했다. 모두가 일확천금을 노린다. 이 비극의 씨앗이 영동 개발에서, 그것도 나라에 의해서 뿌려졌다는 사실이다. '대대로 영향을 끼칠, 쿠데타보다 더한 죄악'이라는 어느 학자의 지적이, 그래서 뼈아프다.
    덧붙이는 글 참고 문헌 : <서울도시계획사> 2권/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 손정목/ <강남의 탄생>. 한종수, 강희용/ <한홍구의 한국현대사 이야기 특강>. 한홍구
    #영동개발 #강남 #토지구획정리사업 #경부고속도로 #인구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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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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