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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달 연습했는데 10초 방송, 그걸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

    [생존하셨습니다 ⑨] <흑백요리사2> '사시미 검객' 최규덕 셰프... "인내하는 게 가장 중요"

    등록 2026.09.04 07:16수정 2026.09.0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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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순위를 남깁니다. 출연자의 이미지도 남깁니다. 그 이미지는 때로 한 사람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노출 시간이 짧은 탈락자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방송에서 다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습니다. 제작진과 심사위원의 의견도 기다립니다.
    [기자말]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가이세키 전문 미가키를 운영하고 있는 최규덕 셰프.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가이세키 전문 미가키를 운영하고 있는 최규덕 셰프. 이선필

    '갈고 닦아 빛내다.' 2024년 3월 문을 연 '미가키'라는 상호에 담긴 뜻이다. 올해로 26년 차인 최규덕 셰프가 운영하는 이곳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가이세키(일본 전통 코스 요리) 전문 식당으로, 하루에 정해진 수의 손님만 받는다. "상호의 뜻은 사실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하다"며 "매일 수양하는 마음으로 제철 재료를 사용한 요리를 내어드리려 한다"고 그는 말했다.

    2001년 4월 워커힐 호텔에 입사했을 때 그는 300대1의 경쟁률을 뚫은 실력파였다. 또한 2014년과 2019년엔 일본 농림수산성이 후원하고 일본요리 아카데미(Japanese Culinary Academy)가 주관한 일본요리 컴페티션에 한국 대표로 참여해 입상했다. 한국인 셰프로는 최초 사례다. 화려한 이력에 비해 그의 삶과 요리 철학이 대중에게 깊이 소개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지난 8월 27일 서울 청담동의 미가키에서 만난 최 셰프는 "2014년 수상 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무산됐고, 2019년도 수상 이후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회사에서 홍보 활동을 금지했었다"는 사연부터 전했다.

    "중간 이상 가겠다는 자신감 있었다"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선보인 '복어 사시미의 비상'을 이날 손님에게 내어주는 모습이었다.
    ▲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선보인 '복어 사시미의 비상'을 이날 손님에게 내어주는 모습이었다. 이선필

    그래서 <흑백요리사> 시즌2는 그에게 좋은 기회였다. 제작진 섭외 연락을 받아든 그는 "제가 흑수저인지 백수저인지부터 물어봤다"고. 흑수저라는 대답에 개의치 않고, 녹화 전까지 약 두 달간 연습에 매진했다고 한다. '사시미 검객'이라는 별칭을 받아든 그가 택한 메뉴는 사시미였다. 일본 도예 장인이 만든 접시에 복어회를 한점씩 올려 학을 형상화한 대표 메뉴 중 하나다.

    하지만 결과는 1라운드 탈락이었다. 당시 심사를 맡은 백종원 대표는 "한 폭의 그림 같다"면서도 "먹어보니 그냥 사시미네요"라는 심사평을 남겼다. 두 달 연습의 결과는 단 수 초의 방송 분량이었다. "결과를 받아든 직후 괜히 출연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복어 사시미의 비상'이라는 요리는 약 10초간 공개됐을 뿐이었다.

    "제작진 면접에서도 중간 이상은 가겠다는 자신이 있었다. 시즌1에서도 상당한 경력의 셰프들이 흑수저로 출연했기에 분류 자체는 개의치 않았다. 원래 제가 정한 별명은 '요리사 켄신'(만화 <바람의 검심> 주인공)이었는데 제작진에서 지금의 별명을 제안하셨다. 그에 맞춰 그 역시 사시미를 경연 메뉴로 택했다. 제작진분들은 '너무 예쁜데 심사에서 평이 갈릴 수도 있겠다'는 말씀도 해주시더라. 대한민국에서 이만큼 회를 뜰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심사위원들이 알아보실 걸 믿는다고 답했는데 너무 자만 아니었나 싶다(웃음)."


    내심 현장에서 그는 안성재 셰프가 심사할 것을 기대했다고 한다. 사시미가 코스 요리의 한 부분인 데다, 복어회에 담긴 칼질과 소스의 조화를 안 셰프라면 알아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최 셰프는 자신의 요리를 "평양냉면"에 비유했다.

    "솔직히 안 셰프가 아닌 백 대표가 오시는 걸 보고 탈락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소스나 양념을 강하게 발라놓으면 확실하게 맛을 강조할 수 있거든. 그것과는 거리가 먼 요리라 백 대표에게도 기존 일본요리에 대한 기억을 잠시 지우고 평양냉면을 음미하듯 드셔야 한다고 설명드렸다. 사실 탈락했다는 것보다 짤막한 심사평이 더 속상하더라. 방송 후 후배와 지인들도 '잘하는 요리가 많은데 왜 사시미를 했냐'는 타박도 들었다(웃음)"


    이선필

    이선필

    녹화를 마친 후 나흘간 후폭풍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그는 고백했다. "요리를 완성한 후 10분이 남았었는데 그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있었다. 이어 그는 "시즌3에 팀전으로 나갈지도 직원들과 논의했는데, 제가 나가지 말자고 했다"며 심사방식에 대한 나름의 의견도 전했다.

    "일식과 중식, 한식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요리를 단 두 명이 평가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출전했던 일본요리 대회는 결선 진출자가 14명이었는데 심사위원이 12명이었다. 방송 경연과 전문 요리대회가 같을 수는 없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받을 장치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이런 요리 예능 프로는 더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좋은 셰프가 발굴될 수 있으니까. 혼자 분투하는 분들이 많다. 오락성도 좋지만, 울림을 주는 식으로 각자의 철학과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초반에 탈락한 셰프라도 후반부에 그의 철학과 삶을 다시 조명하는 식의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제가 <흑백요리사> 대기실서 만난 분들도 이미 그런 진심을 가진 분들이었다. 이하성(요리괴물), 신현도(칼마카세), 조경찬(미스터사이공) 셰프 등 말이다."

    탈락의 상처를 다스리는 방식도 결국 요리였다. 돌아보면 그는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칼을 놓기보다 마음부터 다시 다잡아왔다. 최 셰프는 "(방송 이후) 계속 마음을 닦고 있다"며 "몇 초 안 나왔지만 그걸 보시고 찾아주시고 방송에 안 나온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분들도 계셨다. 덕분에 치유받는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파일럿의 꿈을 접고 일식 칼을 잡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가이세키 전문 미가키를 운영하고 있는 최규덕 셰프.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가이세키 전문 미가키를 운영하고 있는 최규덕 셰프. 이선필

     십이간지가 새겨져 있는 술잔을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모습.
    ▲ 십이간지가 새겨져 있는 술잔을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모습. 이선필

    본래 최 셰프의 오랜 꿈은 파일럿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꿨던 꿈을 접게 된 건 다름 아닌 색약이라는 신체적 제약 때문. 그가 마음 수련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런 장애물을 극복해 온 것과 관련 있었다. "마음 잃고 갈피를 잃었던 때 친척의 추천으로 대학교 조리과에 진학한 후 새로운 눈이 열렸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입학 후 첫 여름 방학 때 도쿄에 가서 스시를 먹었는데 한국에서 먹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3박 4일 중 끼니 대부분을 스시로 해결할 정도였다. 그리고 수업 때 한 교수님이 일식에 쓰는 칼을 꺼내시는데 진짜 멋있어 보였다. 송청락 교수님이라고 제 인생을 잡아준 분이다."

    그러나 또 한 번의 방황은 호텔에 입사한 뒤 찾아왔다. 겨우 정한 진로에 노력을 더해 남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직장을 잡았지만, 일본 유학파와 비유학파 사이에서 나름의 간극을 느낀 것. "일어 공부도 틈틈이 했는데 아무래도 현지 경험이 있는 이들에 비해 소외받는 느낌이었다"며 그는 "힘들게 들어간 곳이지만 일본에 갈 생각으로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조리장께서 반려했다. 자기도 비유학파에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저와 다를 게 없다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소설 <대망>을 빌려주셨다. 36권짜리인데 이걸 한 권씩 읽고 일주일에 한 번씩 티타임을 하자면서 말이다. 1년 만에 다 읽었다. 그러니까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잔잔해지더라."

    책을 읽는 과정은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일본에서 공부하지 않고도 일본 음식과 역사를 줄줄 읊는 모습에 유학파로 오해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서 열리는 요리대회에 도전한 것도 제가 쌓아온 지식과 기술을 본토에서 인정받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기무라 아키노리가 쓴 <기적의 사과>라는 책이 있다. 한 농부가 10년에 걸쳐 무농약 사과를 만들어 낸 이야긴데, 9년째에 너무 좌절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얻은 깨달음이 담겨 있다. 그걸 형상화해 계란으로 사과 모양을 만든 요리를 냈다. 또 하난 센노 리큐라는 일본 다도의 정립자가 있는데 그 이야길 하며 요리를 만들었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일본인보다 어떻게 더 역사를 잘 알고 요리했는지 놀랍다'는 평을 하셨다."

    독립해서 지금의 업장을 열기 전까지 그는 부산과 강원 일대를 돌며 재료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도 했다. 일본과 식감이나 제철이 다른 재료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 새벽 시장을 돌고, 어부들에게 물어가며 연구하는 식이었다.

    "같은 도미라도 언제 더 맛있는지 일본과 한국이 다르다. 최고로 치는 무게도 서로 다르고. 그렇게 재료 보는 눈을 기른 게 제겐 또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지금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직접 강원도 경매장에 가서 어떤 생선들이 들어오는지 본다."

    요리에 정점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추구하는 경지를 10점으로 놓았을 때 최 셰프는 현재를 "7점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요리는 그에겐 계속 배워야 할 길인 셈이다.

    "제대로 된 일식을 한국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장 힘들 때가 원하는 식재료가 들어오지 않을 때다. 제철 재료를 선보이는 게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올해 봄에 황복이 귀해져서 일주일밖에 못 해드렸다. 그리고 후진 양성에도 관심이 많다.

    제가 강의할 때도 늘 기본기를 강조하는데 그게 특별한 기술이 아닌 바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거든.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보기까지 인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저는 아직 7점이다. 언젠가 10점에 이르면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요리하고 싶다."

    이선필


    #흑백요리사 #최규덕 #미가키 #백종원 #안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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