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이간지가 새겨져 있는 술잔을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모습.
이선필
본래 최 셰프의 오랜 꿈은 파일럿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꿨던 꿈을 접게 된 건 다름 아닌 색약이라는 신체적 제약 때문. 그가 마음 수련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런 장애물을 극복해 온 것과 관련 있었다. "마음 잃고 갈피를 잃었던 때 친척의 추천으로 대학교 조리과에 진학한 후 새로운 눈이 열렸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입학 후 첫 여름 방학 때 도쿄에 가서 스시를 먹었는데 한국에서 먹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3박 4일 중 끼니 대부분을 스시로 해결할 정도였다. 그리고 수업 때 한 교수님이 일식에 쓰는 칼을 꺼내시는데 진짜 멋있어 보였다. 송청락 교수님이라고 제 인생을 잡아준 분이다."
그러나 또 한 번의 방황은 호텔에 입사한 뒤 찾아왔다. 겨우 정한 진로에 노력을 더해 남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직장을 잡았지만, 일본 유학파와 비유학파 사이에서 나름의 간극을 느낀 것. "일어 공부도 틈틈이 했는데 아무래도 현지 경험이 있는 이들에 비해 소외받는 느낌이었다"며 그는 "힘들게 들어간 곳이지만 일본에 갈 생각으로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조리장께서 반려했다. 자기도 비유학파에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저와 다를 게 없다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소설 <대망>을 빌려주셨다. 36권짜리인데 이걸 한 권씩 읽고 일주일에 한 번씩 티타임을 하자면서 말이다. 1년 만에 다 읽었다. 그러니까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잔잔해지더라."
책을 읽는 과정은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일본에서 공부하지 않고도 일본 음식과 역사를 줄줄 읊는 모습에 유학파로 오해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서 열리는 요리대회에 도전한 것도 제가 쌓아온 지식과 기술을 본토에서 인정받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기무라 아키노리가 쓴 <기적의 사과>라는 책이 있다. 한 농부가 10년에 걸쳐 무농약 사과를 만들어 낸 이야긴데, 9년째에 너무 좌절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얻은 깨달음이 담겨 있다. 그걸 형상화해 계란으로 사과 모양을 만든 요리를 냈다. 또 하난 센노 리큐라는 일본 다도의 정립자가 있는데 그 이야길 하며 요리를 만들었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일본인보다 어떻게 더 역사를 잘 알고 요리했는지 놀랍다'는 평을 하셨다."
독립해서 지금의 업장을 열기 전까지 그는 부산과 강원 일대를 돌며 재료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도 했다. 일본과 식감이나 제철이 다른 재료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 새벽 시장을 돌고, 어부들에게 물어가며 연구하는 식이었다.
"같은 도미라도 언제 더 맛있는지 일본과 한국이 다르다. 최고로 치는 무게도 서로 다르고. 그렇게 재료 보는 눈을 기른 게 제겐 또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지금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직접 강원도 경매장에 가서 어떤 생선들이 들어오는지 본다."
요리에 정점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추구하는 경지를 10점으로 놓았을 때 최 셰프는 현재를 "7점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요리는 그에겐 계속 배워야 할 길인 셈이다.
"제대로 된 일식을 한국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장 힘들 때가 원하는 식재료가 들어오지 않을 때다. 제철 재료를 선보이는 게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올해 봄에 황복이 귀해져서 일주일밖에 못 해드렸다. 그리고 후진 양성에도 관심이 많다.
제가 강의할 때도 늘 기본기를 강조하는데 그게 특별한 기술이 아닌 바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거든.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보기까지 인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저는 아직 7점이다. 언젠가 10점에 이르면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요리하고 싶다."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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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연습했는데 10초 방송, 그걸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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